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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 이모저모

[해남 읍호리 고분과 훼기毁器] (3) 고의성을 탑재한 박살내기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24. 3.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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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저 무덤방 바닥에 그릇 쪼가리들을 동강내서 깐 일은 우연인가? 다시 말해 마침 적당한 건축 자재가 없어 옆에 보이는 휴대용 아궁이를 비롯한 부엌 가구 세트들을 깨뜨려서 바닥에다 잔뜩 깔아 시신 자리로 썼을까? 

이 물음에 우리는 아무래도 고개를 저을 수밖에 없다. 기왕 바닥에 깔 것이라면 저런 질그릇 쪼가리 아니어도 얼마든 대체제가 있다.

자갈이나 깬돌을 깔아도 된다. 실제 이런 식으로 깔아서 관 받침으로 활용한 데는 많다.

나아가 그렇게 깨뜨려 넣은 것들이 공교롭게도 일정한 흐름을 지닌다?

다시 말해 저 조각들을 조사단이 다시 찡가 맞춰 봤더니 아궁이를 비롯해 부엌 가재도구 일색이라는 점은 아무래도 의도가 개입했다 보지 않을 수 없다. 

같은 질그릇이라 해도 이 또한 얼마든 대체제가 있을 텐데 하필 부엌 가재도구였으리오?

저 사진을 보면 대옹 급 비스무리한 축에 속하는 큰 항아리도 있는데 저건 왜 가만 두었을까? 
 

 
이렇게 복원한 세트를 딱 보면, 첫째 저것들이 본래 멀쩡하다 가정했을 때 실제 아궁이랑 시루로 사용했을까? 

난 이게 몹시도 궁금하기 짝이 없다. 저 상태로 그대로 쓰기엔 아무래도 힘들지 않을까 싶거니와, 설혹 실용으로 썼다 해도 대세엔 지장이 없다. 

이 경우엔 중요한 대목은 오직 저것들을 일부러 깨뜨려 바닥재로 썼다는 오직 그것만이 중요한 시점이니깐. 

이때 중요한 것이 바로 훼기요 명기明器다. 저것은 명백히 훼기이며, 그런 까닭에 저 질그릇 도구류는 명백히 명기다. 

명기로 쓰는 그릇은 깨뜨리기는 하지만, 보통은 일부 부분만 깨뜨린다.

항아리 같은 질그릇은 주둥이를 톡톡 따는 일이 많고, 유공소호有空小壺라는 친구는 일부러 몸통에다 구멍을 내 버리며, 삼족기니 해서 받침이 있는 것들은 그 받침만 똑 따버린다. 

동경은 보통 몇 조각을 내는 전면 파쇄 방식을 선택하거나, 아니면 이른바 방제경이라 해서 미니어처를 만들어 넣는다.

순장이 사라지면서는 사람이나 말도 미니어처로 제작해 실용품 희생이라는 난점을 피해나가기도 한다. 

또 뚜껑이 있는 그릇은 뚜껑 혹은 몸체만 넣기도 하니, 이건 본래 뚜껑과 몸체가 세트인 것을 그것을 분리해 버림으로써 실생활에서 사용하는 것과는 다르다는 의미를 담는다.

한데 이 읍호리는 아예 세트 자체를 다 완전 파쇄하고는 그에서 나온 쪼가리들을 마치 메밀 씨 뿌리듯이 바닥에 좍 깔아버렸다.
 

이걸 개박살 내서 무덤 건축자재로 썼다.

 
완전 파쇄라는 점에서 동경을 파쇄하는 방식과 엇비슷하기는 하지만, 이건 그렇게 파쇄한 것을 무덤을 구성하는 건축 자재로 썼다는 점에서 이례성이 있다 하겠지만, 훼기라는 특성에서는 같다. 

훼기란 무엇인가?

또 이야기하지만 간단히 말해 이승과 저승은 영역이 다름을 표시하는 상징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 다름을 표시하고자 하는 표상이 바로 훼기다. 

왜 훼기하는지도 모르고, 헛소리만 찍찍 늘어놓은 고고학도들이 한심하기 짝이 없어 몇 마디 긁적거려 둔다.

지가 모르는 것을 남들도 모르는 줄로 알며, 지가 모르는 것을 남들도 모르니 우리는 모두 모른다는 말로 그 책임을 면탈하려는 그 얍쌉함을 쥐어박고 싶다. 

일단 읍호리 이야기를 마무리하기 전에 저 세트가 실생활에서 사용한 것이라면, 장송 의식에 쓰고서 그것을 저런 방식으로 매장한 것으로 봐야 한다.

장송에 쓴 물품을 저런 방식으로 처리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그 비일비재함을 오직 고고학도들만 모르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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