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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저런

차마 못볼꼴을 두번이나

내 세대가 거개 그렇듯이 나 역시 중고교 때 라디오로 이른바 팝송을 접하고는 그에 열광했으니, 

그 시대 최고 스타는 마이클 잭슨이었다. 

그 시대 디스코텍은 온통 문워크moon walk였다. 


그때 걸출한 두 DJ가 있었으니 김기덕과 김광한이었다. 김기덕이 텁텁했다면, 김광한은 조근조근했다. 

매주 일요일인지 토요일은 특집 방송이라, 그 주 빌모드 차트 100위까지 순위를 알려주며 주요한 곡들을 틀어주었으니, 대략 1~10위권 노래는 거의 다 틀어줬다고 기억한다. 

 

빌보드 차트는 우리한테는 꿈이었다. 

그건 토르가 태어나고 자란 아스가르드였다. 

달나라는 이미 밟았으니 미지가 아니었으되, 아스가르드는 시간 공간 저밖에 존재하는 그 무엇이었다. 

빌보드는 우리한테는 이데아였다. 


빌보드를 세번이나 침공한 BTS



한데 내가 이 꼴을 보다니. 

것도 1년 사이에 거푸 세 번이나 보다니. 

것도 한국어 노래가

것도 한국 아해들이 


그랬다. 

어디서 나타났는지, 혜성 같이 나타난 방탄소년단이라는 아해들이 내가 문화부장으로 재직한 지난 1년 남짓한 기간에 세 번이나 거푸 빌보드 차트를 씹어돌리더라. 


차마 못 볼 꼴을 본 첫 번째였다. 


방탄이랑 여느 유명한 코쟁이 가수랑



1987년, 제44회 베네치아국제영화제에서 강수연이 여우주연상을 탔다 해서 나라 전체가 들썩였다. 

월드컵 축구를 우리가 우승한 것인양 나라 전체가 들썩였다. 


이후 전도연이 칸영화제에서인가 여우주연상을 한번 더 타자 또 나라 전체가 흔들렸다. 


내가 문화부 기자로 칸영화제를 지켜보기는 21년째

황금종려상을 꿈꾼지 나로서도 21년째




비록 중간에 해고되어 3년가량 문화부를 떠나있긴 했지만 황금종려상은 내가 떠나도 언제나 한국을 외면했다.


그런 황금종려상이 21년째가 되던 해에 떡 하니 인천공항을 통해 오늘 한국에 들어왔다.


내가 부장으로 재직한 1년1개월간 나는 못 볼 꼴 두번을 봤다. 


종려나무 잎사귀가 뭐라고...암튼 뭔가 큰 일을 내려면 더벅머리는 기본인 듯


살다보니 별꼴 다 본다더니 

내가 그 별꼴을 두번이나 볼 줄이야? 


노벨 문학상은 후배 부장들한테 물려준다. 

지들도 먹고 살아야겠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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