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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고학 발굴과 그에 따른 이른바 문화재 보존정비 이전 청주 정북동토성은 이랬다.
방형 성벽을 따라 방풍림이 들어서고 그 안에는 절반가량이 마을이고 나머지 절반은 논이었다.
어디 유럽 중세도시 부럽지 않은 경관이었다.
현장엔 무엇이 남았는가?
이곳이 열라 중요함을 역설하는 문화재안내 입간판 몇개랑 황량 황폐만 남았다.
인적은 다 사라지고 벌개벗은 맨살만 앙상이 드러내고는 이것이 문화재 보존이라는 구호만 남았다.
어느 때부턴가 그런 황량한 들판이 낙조가 볼 만한 곳으로 꼽혀 그것을 구경하러 오는 사람이 더러 있을 뿐이다.
묻는다.
낙조 명소 만드려고 저리 깨끗이 밀었나? 낙조가 문화재보호랑 무슨 관계란 말인가?
또 묻는다.
그 낙조는 방풍림 있고 동네마을이 있었으면 불가능했을 경관인가?
내 보기엔 있었으면 외려 훨씬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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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보존을 앞세운 소개주의는 또 다른 폭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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