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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S & MISCELLANIES

한 장소를 명소로 만든 한 장면, 로마의 휴일과 오드리 햅번, 그리고 로마 스페인광장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23. 10.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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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의 휴일 이라는 번역으로 정착한 이 영화는 영어 원제가 Roman Holiday라, 이런 제목은 말할 것도 없이 의도적이라, Roma에다가 romance를 쑤셔박고자 한 것이다.

물론 영어권에서는 Roma가 Rome으로 둔갑하나, 그 형용사형은 묘하게도 로망스가 되니, 그래 로마에 오래 머물다 보면 다 로맨틱해지나 보다. 

참고로 낭만浪漫 이라는 말도 본래 동아시아 한자문화권에서는 없던 말이라, 로망 roman 이라는 말이 물건너 오면서 주로 일본 쪽에서 그걸 발음나는 그대로 적는 바람에 랑만이 된 것이니, 이렇거나 저렇거나 로마는 낭만으로 치환하나 보다. 




저 영화는 찾아보니 개봉 시점이 1953년이라, 당시 이 한반도에서는 3년을 끈 포성이 비로소 정전협정을 통해 멈춘 때이니, 감독은 윌리엄 와일러 William Wyler, 주연은 상상 속의 어느 나라 공주로 분한 그 유명 깜찍녀 오드리 햅번 Audrey Hepburn 과 그를 꼬셔서 특종 하나 하고자 혈안이 된 미국 기레기 그레고리 펙 Gregory Peck 이라

이들 주연 배우를 바라보는 관점은 다 달라 남성들한테는 저 오드리가 영원한 노스탤지어로 남았고(뭐 저런 마누라 얻어봤자 6개월 지나면 뺑덕어멈이 되지만), 여성들한테는 이상형 남친 혹은 남편 외모로 펙을 고정케 했으니, 그 점에서 저 영화는 현실에서는 낙담할 수밖에 없는 무수한 좌절을 직시케 했다 하겠다. 

내 세대가 저 영화를 소비하는 양태는 거개 비슷했을 것으로 보는데, 저 영화 개봉 시점에 잉태조차 되지 아니한 내가 무삼 저런 영화를 개봉 당대에 호흡했겠는가?

당시엔 주말의 명화라 해서 KBS인가 매주말 주로 헐리우드 영화들을 한 편씩 틀어주었으니, 그때야 모조리 성우를 쓸 때라, 자막 서비스를 하는 지금과는 왕청나게 다른 시절이었으니

저 프로를 통해 이른바 명화라 할 만한 것들은 다 접했으니, 오케이 목장의 결투가 특히 기억에 남는다. 

저 오드리 펙 조합 로마의 휴일은 그 옛날 기억이 하도 가물가물해 몇년 전 각 잡고 유튜브로 전편을 시청했는데, 영 오글거려서 혼났지만, 그래도 기레기 세상 일면을 다룬다는 점에서 나로선 무척이나 흥미롭게 지켜본 일이 있다.

덧붙여 그때 내가 그리한 까닭은 거푸 로마를 디뎠기 때문이니, 내가 볼, 그리고 내가 본 로마랑, 70년 전 로마를 비교하는 재미도 쏠쏠했다고 기억한다. 

놀라운 점은 1953년 개봉작 그 영화 배경으로 등장하는 로마 곳곳이 내가 본 그것과 비교하니 큰 변화는 감지되지 않는다는 점이니, 적어도 외양으로만 보면 동시대 급격한 변화를 겪은 서울과 달리 로마는 적어도 저 영화를 기점으로 삼을 때는 70년 동안 변화를 멈춘 셈이다. 

배운 게 도둑질이라 나한텐 저 영화 자체는 위대한 무형유산이요 오드리랑 펙은 그 기예능 보유자이며 저에 등장하는 로마 장면 하나하나는 모두가 문화유산이다.

무엇보다 나는 대중매체가 문화유산을 구축하는 데 수행한 여러 역할에 관심이 많거니와 첨부한 저 영화 한 장면만 해도 저것이 없었던들 그 무대가 되는 스페인광장을 소비하는 양태는 지금과는 사뭇 달라졌을 것으로 본다.

누구나 그 광장 전면 분수대를 보며, 또 둘이 수작하며 오르내린 그 계단을 보며 생기기는 일용 아버지요 강부자인 선남선녀도 부지불식하건 의식하건 모두가 햅번이요 펙이 아니겠는가?
 

이 진실의 아가리 역시 저 둘이 개수작하는 장면에 등장해서 소비 패턴이 바뀌었다.



마침 저 영국 땅 어디에서 저 영화나 마찬가지로 애국주의 민족주의 열풍을 일으키며 메가히트한 1991년 케빈 코스트너 주연 로빈후드 도둑놈들의 왕자 촬영 무대가 된 하드리안 방벽 플라타나스 노거수가 누군가에 의해 한밤중에 8.18 도끼만행에 견줄 만한 방식으로 자끈동 둥치가 전기톱으로 잘려나가는 사건이 있어 영국을 충격으로 몰아넣는 일이 있었거니와 이래저래 저런 일에 괜히 내가 괜시리 싱숭생숭한 까닭이 무엇인지 모르겠다.

그 텍사스 전기톱 나무 살해 현장을 여러 사진 영상으로 접하다 보니 내가 그 현장을 직접 목도해 봤음 하는 욕망도 주체치 못하겠다.

가을이라선가? 잡념이 쇠죽 끓듯 한다. 소 역시 하루 세끼를 먹어야 하며 무던히도 딩겨 섞어 짚풀로 말아든 죽은 끓여 대접했더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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