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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조선시대 후기 토지대장인 양안量案이다.
그 목적은 말할 것도 없이 경계의 확정과 이를 통한 삥뜯기인 세금 부과를 위함이었다.
소재지 지번 지형 등급 면적 소유주를 빠짐없이 기재해 빈틈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문제는 경계였다.
오만분지일 정도 되는 지도가 첨부되어야 하지만 지도가 없다.
지도가 없다 함은 경계가 빗금이란 뜻이다.
왜 이랬는가?
측량술이 없어서였다.
측량을 하지 못하니 그 경계는 언제나 빗금이었고 그 빗금 자리에서는 언제나 분쟁이 일어났다.
산송이니 뭐니 하는 망국병의 근원이었다.
근대는 저 빗금을 없애야 했다.
빗금은 선으로 바꿔야 했다.
토지조사사업, 그건 단군조선 이래 한국사의 혁명이었다.
저 빗금이 선으로 교체되는 과정에서 적지 않은 유류 토지가 발생했다.
남는 땅이었다.
이 남는 땅을 어찌할 것인가?
국유화 공유화할 수밖에 없었다.
바로 여기서 택도 없는 토지수탈론이 배태한다.
일제가 토지수탈을 목적으로 토지조사사업을 해?
지랄도 유분수라 그 권력이 통감부건 총독부건 대한제국이건 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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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금에서 선으로, 근대의 탄생
유길준의 측량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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