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근 불일폭포와 더불어 명승 지정이 확정된 하동 쌍계사다.
이르기를 이곳은 신라 성덕왕 23년(723) 의상義湘 제자 삼법三法이 옥천사玉泉寺라는 이름으로 창건했다가 문성왕 2년(840)에 진감眞鑑이 크게 중창하고 정강왕 때에 이르러 지금의 이름으로 사액해서 간판을 바꿔 달았다 한다.
임진왜란 때 소실되자 승려 벽암碧巖이 조선 인조 10년(1632)에 중건하면서 오늘날 저 모습의 토대를 닦게 된다.
이곳에는 중창주인 진감의 행적을 정리한 진감선사탑비가 있다.
고건축학도를 중심으로 흔히 가람을 논하면서 정연한 가람배치니 하는 말이 걸핏하면 회자하고, 그 일환으로 일탑일금당이니, 일탑삼금당이니 하는 말이 버젓이 한국 가람 배치의 원형 혹은 전형을 말하는 것으로 논하기도 하지만, 모조리 음미할 가치도 없다.
그네가 말하는 정연한 가람배치니 하는 말은 모조리 창건기를 염두에 둔 것이며, 나아가 그것을 원형이라는 말로 치환해서 이해하며 그렇게 사기를 치지만 원형이 어딨단 말인가?
누누이 말하지만 문화재 현장에서 원형은 일고一考할 가치도 없는 허상이다. 창건기? 그것이 원형이라고? 어떤 놈이 이 따위 망발을 일삼는단 말인가?
사람으로 치환하면 어찌하여 태어날 때 그 모습이 원형이란 말인가? 그렇다면 수정하기 전 난자와 정자를 원형이라 해야지 않겠는가? 그것이 아니라면 그것을 만든 생물학적 엄마 아버지가 원형 아니겠는가?
그렇게 배태한 수정란이 마침내 사람으로 태어나고 자라는 생성변화를 거듭하다가 종국에는 흙으로 돌아간다.
이런 존재에 우리는 임시방편으로 혹은 오로지 구별을 위해 그 이상도 이하도 이름을 부여한다. 그리하여 오늘을 기준으로 볼 적에 나를 예로 들면 지금의 김태식이 이르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오십중반을 넘어서기 시작한 지금의 김태식을 오직 태어날 무렵 그 태아기 모습만을 떼어내 그것이 김태식 원형이란 말인가?
그것은 한 순간 김태식의 모습에 지나지 아니하며, 김태식이라고 할 적에는 그것을 필두로 현재에 이르는 켜켜한 세월의 집합이 김태식인 것이다.
다시 쌍계사로 돌아가 저 쌍계사가 옥천사라는 모습으로 출현할 적 모습을 우리는 전연 짐작조차 하지 못한다. 설혹 저 건물들 다 걷어내어 버리고 발굴조사를 통해 그 원형으로 짐작하는 모습을 찾는다한들 그것은 거죽데기에 지나지 아니해서 건축물 바닥 흔적 편린에 지나지 않는다.
정연한 가람배치? 그래 저걸 애초 지을 적에 어떤 디자인이 있었을 것임은 불문해도 가지하다. 하지만 오늘에 이르는 쌍계사를 논할 적에 어찌하여 그것이 원형이 된단 말인가? 오늘에 이르기까지 천수백년 장구한 쌍계사 역사에서 한줌 흙에 지나지 않을 뿐이다.
함에도 어찌하여 그 한 순간을 떼어내 그것이 원형이라 하는가?
쌍계사는 그 무수한 세월이 인고한 누층이며 집합이며 총합이다.
정연한 가람배치? 그딴 게 어딨어? 필요할 때마다 부수어 버리고 필요할 때마다 지었을 뿐이며, 그것의 현재적 모습이 저것에 지나지 않는다.
역사 혹은 문화는 태동 이래 현재에 이르는 그 무수한 충적이다. 존재하지도 않고 존재할 수도 없는 원형 타령을 일삼으며 정연한 가람배치는 운위하는 사기는 집어쳐야 한다.
나아가 저기가 훗날 교회가 되지 말란 법 있는가? 모스크가 되지 말란 법이 있는가? 누군가의 별장이 되지 말란 법 있는가?
그런 역사까지 포함하고 포괄하는 문화재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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