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운령이 우리 역사에서 상당히 장기간 동안 경계선 역할을 했으며
이는 신라 시대 (진흥왕순수비), 고려시대 (윤관 북벌) 등 사건에서 반복적으로 확인할수 있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이번 글에서는 이런 흐름이 상당히 오래전까지 소급가능하다는 이야기를 쓰려 한다.
세형동검이 유행하던 시기-.
우리나라 세형동검 분포는 다음과 같다. 조진선 선생 단행본에서 취한 그림이다.
위 그림이 우리나라 세형동검 분포도다.
이전에는 이를 "청천강 이남"이라고 했었다.
세형동검 분포도를 보면, 여러 개 권역으로 나뉘는데 그 중 동해안쪽으로는 동북부지역권이 있다.
이 지역이 바로 고조선시대 임둔, 그리고 한군현 시대 임둔군이 되는 지역으로 세형동검 집중 분포지 중 하나다.
이 지역 안에 점이 찍힌 모습이 보일 것이다.
그리고 그 세형동검 분포는 대략 마운령쯤에서 뚝 끊기고 더 안 보인다.
청동기시대에도 마운령은 경계선으로 작용하고 있었다는 소리다.
그것이 지리적 이유이건, 종족적 이유이건 간에.
그런데 이 그림을 조금 더 확대해 보면 매우 흥미로운 부분이 있다.
실제로는 이 지역은 이렇다. 50번이 동해안을 따라 올라갈 때 함흥시 청해토성이 있는 곳이다.
청해토성은 마운령 바로 아래다. 초기철기시대 세형동검도 마운령을 경계로 더 북상 못하고 끊기는 것이다.
그런데 재미있는것은 밀집해서 나타나던 세형동검이 그 다음에는 바닷가를 따라 청진시에서 하나, 그리고 연해주에서 발견된다.
이 지역 세형동검은 숫자가 많지 않고 청해토성에서 상당히 먼 거리라 해로를 타고 퍼져나갔을 가능성도 있다.
각설하고-.
이 그림에서 볼 수 있듯이 마운령은 초기철기시대에도 일종의 경계선과 같은 역할을 하고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
세형동검시대에도 여전히 마운령은 북쪽으로 돌파하기 어려운 지대였던 셈이다.
이렇게 장기간 지리적 장벽으로 작용하고 있던 마운령이 무너지고 함경도 지역이 한국사 영토로 완전히 들어오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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