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자가 생긴 후로 지금까지 우주가 무너지고 생명이 도탄에 빠지며 몸으로 망하고 나라를 패망시킨 경우가 이보다 심했던 적은 없었다."
위징은 수 양제 양광의 죽음에 즈음해 평론 형식으로 이렇게 적었다.
수서隋書 본기에 해당하는 제기帝紀를 끝냈다. 워낙 단명한 왕조에다 황제라고는 실상 창업주 문제와 2대 양제가 전부이며, 마지막 당 왕조 문을 열어준 공제야 있는둥마는둥한 허수아비였으니 워낙 짧을 수밖에 없다.
역자들이 양제가 고구려 정벌에 나섰다가 개박살나고 마침내 왕조가 해체되는 과정에서 희열을 느꼈다 했지만, 모든 흥성은 환희와 희열로 가득하고 모든 몰락은 애잔할 수밖에 없는 법이다.
왜 양제가 이리도 가엾은지 모르겠다.
형을 밀어내고 대권을 잡은 그가 왜 저리했는지 나는 무진 이해하려 해 봤다. 꼭 이번이 아니었다 해도, 이 대목이 몹시도 궁금했다.
그 의문은 이제는 조금은 풀 듯하다. 물론 현재 주어진 그 답이라는 것도 또 시간이 지나면 의문으로 돌아가고, 또 다른 답을 찾았다며 유레카를 외칠지 모르지만,
나는 주커버거와 머스크를 보면서 그 답을 찾았다고 생각한다.
허망함이다. 가진 걸 다 가져 더는 가질 것이 없는 듯한 주커버와 머스크가 뭐가 답답해서 서로를 못잡아먹어 환장하고 마침내 격투까지 벌여야겠는가?
나는 허함이라 본다. 그 허함, 공허함에 대한 격렬한 저항의식이라고 본다.
저들은 그 허함 공허, 철학적으로는 무 혹은 무상이라 할 만한 것들을 끊임없이 저항해야 한다.
저들이 세상 모든 권력 부를 쥔다한들, 그렇다고 저들이 그래 이제 그만 하고 저들이 은퇴할 것 같은가?
인간이란 그렇다. 권력에의 욕망
그 욕망은 끝이 없으며, 그 욕망이 쇠해질까봐 언제나 두려운 법이다.
그 집권 과정이 어떻든 양광은 창업주한테서 너무 많은 것을 안정으로 물려받았다. 태평성대라 하기는 힘들지만 그가 물려받은 그의 제국에서 그가 할 일은 없었다.
사회는 오직 수성守城만을 요구했지만, 비단 그가 아니라 해도 욕망으로 드글드글하는 인간 본능을 황제라고 제어할 수는 없었다.
그 태평성대에서 그가 스스로한테 부여한 사명은 국토개조였다. 국토를 개조하자!! 이것만이 내가 역사에 이름을 남기는 일이다.
그래서 주구장창 파고 무너뜨리고 했다. 물경 백만을 동원해 만리장성을 쌓고, 다시 그만한 인력을 툭하면 동원해 그의 제국 곳곳을 운하로 뚫었다.
그 유산의 혜택은 현재까지 후손들이 받는다는 역설이 놀랍지 아니한가? 하다 못해 세계유산까지 됐잖은가? 그의 유산은 진정으로 대단하지 아니한가?
그걸로도 만족할 수 없어, 그 에너지를 외부로 분출함으로써 대외에 힘을 과시하려 했으니, 그런 그의 시험대에 재수없이 걸려든 게 고구려였다. 그를 정벌하고자 군대만 113만을 끌어모았고, 그 수송대는 두배였으니, 그들이 출발하는 데만도 몇달이 걸렸다.
하지만 이 전쟁에서 무참히 패배했다.
빈손으로 시신들을 끌고 허망하게 귀환한 그를 기다리는 것은 곳곳의 반란이었다. 태평성대? 그건 허울에 지나지 아니해서 이때를 숨죽이며 기다린 저항들이 봇물 터지듯했으니,
이런 사태에 아무 것도 할 수 없던 양광은 그 자신이 제3의 수도로 구상했을지도 모르는 강도로 내려가 그곳에서 자포자기로 지내다가 암살당하며 그리하여 마침내 수백 년 중국 대륙 분열을 끝낸 수 제국은 형적도 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죽어가는 모든 것이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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