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발간된 모 역사관련 학회 기관지에 투고한 모씨의 논문은 신라 관부官部 중 유독 정체가 아리숑숑한 내성內省을 다루는지라,
이 내성은 익히 알려졌듯이 진평왕 7년에 대궁大宮 량궁梁宮 사량궁沙梁宮의 세 궁에다가 각기 1명씩 사신私臣이라는 최고 장관직을 두었다가 같은왕 44년에 그 장관을 통합해 이찬 룡수龍樹로 통합했으니
이를 다루는 와중에 그 필자인 모씨가 용수를 논급하면서 그 주석에다가 이르기를
"위작논란이 있는 화랑세기에는 삼국사기와 달리 룡수龍樹와 룡춘龍春을 구별하고 있지만 삼국사기의 기록을 따른다"
했거니와 왜 한국 고대사학계가 유독 이 모양 이 꼴인가를 다시금 확인케 하니, 사료조차 어처구니없이 오독하는데 무삼 새로운 말을 하리오?
삼국사기 어디에서 룡수와 용춘을 같은 사람으로 기록했단 말인가?
삼국사기건 삼국유사건 그 어디에서도 龍樹와 龍春이 같은 사람에 대한 다른 표기 혹은 이칭이라 한 적은 없다!
삼국사기에서도 그렇고 삼국유사에서도 그렇고, 두 표기는 각기 다른 이름이다. 이 다른 이름을 지금의 역사학도라는 놈들이 구별하지 못하고 같은 사람에 대한 두 가지 표기로 오독誤讀한 것이다.
이 문제는 내가 그토록 여러 번 말했듯이, 그리고 이미 이종욱 이강래 두 선생이 지적했듯이 삼국사기, 그리고 삼국유사 자체에서 다른 인물로 기록한 것이며, 그것을 지금의 역사학도들을 어처구니없게도 같은 사람에 대한 다른 표기라고 오독한 것이다.
용수와 룡춘 문제는 화랑세기랑 관계없다! 화랑세기가 없어도 다른 사람이다!
입은 삐뚤어져도 말은 바로 해야한다. 화랑세기가 그리 무서운가?
'READING HISTORY' 카테고리의 다른 글
화랑 관련 창설을 둘러싼 착란, 봄눈 녹듯 사라지는 모든 착간錯簡 (1) | 2022.04.05 |
---|---|
금동신발 자체가 등선登仙의 의미 (1) | 2022.03.24 |
도봉서원기로 보는 창건기 도봉서원 레이아웃 (0) | 2021.09.13 |
<초점> 샌프란시스코평화조약과 독도 분쟁(2005. 05. 04) (0) | 2021.08.10 |
진흥왕이 확보한 함경도 동해안을 이후 신라가 상실했다는 개소리에 대하여 (1) | 2021.07.26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