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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S & MISCELLANIES

연락처 저장 관리의 변화

by taeshik.kim 2023. 9.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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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가 변하기 마련이다. 

그 옛날이야 수첩에 적어서 했다. 이 경우 문제는 검색이 되지 않는다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 처음에야 가나다 순서로 하지만, 사람이 늘어나면서 뒤죽박죽이 된다. 오로지 기억에 의존해 그 사람이 있는 곳을 찾아야 한다. 

수첩은 분실 위험이 크다. 이후 파일 형태로 저장했다. 검색이라는 장점에서 왔따다. 

이 연락처 파일이 내 컴터 어딘가에는 저장되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역시 용도폐기되었다. 

스마트폰이 상용화하면서 모든 연락처는 그 차지가 되었다. 한데 이것도 지금 생각하면 곡절이 많았다. 

나는 줄곧 갤럭시만 썼다. 초창기 폰 교체 때 황당한 일이 있었다. 연락처가 다 옮겨진 줄 알고 밀었더니 누락된 이름이 제법 되었다. 

나아가 지금도 그런지 모르겠는데 대개 입력할 때 
"김태식 연합뉴스" 이런 식으로 뛰어쓰기 한 연락처가 "김태식"으로만 재저장되기도 했다. 

그러다 폰 분실하면 연락처 전체가 날아갔고...그러다가 이것이 무슨 다른 시스템, 예컨대 카톡 페북 메시지 등등과 연동하면서 이중 삼중의 보안장치를 거는 시대로 와서 현재에 이른다. 

그만큼 족쇄가 되는 것일 수도 있다. 한데 이리되니 문제가 발생했다. 

나는 문화재 담당 기자 생활을 오래했으니, 이쪽 분야 사람들은 웬만한 이는 다 저장했다. 그러다가 어느날 그 자리서 짤렸다. 

후임 기자가 와서 출입처 연락처를 넘겨달라는데 거기에는 취재와 직접 관련된 사람 기관만이 아니라 옛날 애인 지금 애인 미래 애인까지 공사석이 구분되지 않는 각종 연락처로 범벅인 상태라 도저히 넘겨줄 수가 없는 상태였다. 

골라서 주면 된다지만 어느 세월에 골라내겠는가? 가뜩이나 짤렸으니, 더 신경질 나지 않겠는가?

할 수 없이 

"문화재청 대변인실, 국립박물관 홍보담당관한테 연락해서 연락처 받어" 하고 말았다. 

하지만 연락처 저장 시스템 변화에서 가장 신경질이 난 사건은 010 통일이었다. 011 016 017 019가 어느 시점에 010으로 통합되었다. 

문제는 이 썩을 놈들이 앞대가리만 단순히 바꾼 것만이 아니라 뒷자리도 바꾸는 일이 대부분이었다. 물론 1년 동안인가 자동 연결을 해주었지만 그 1년 생각보다 순식간에 간다.  

한동안은 입력한 번호 교정한다고 신경질 꽤나 냈다. 지금도 저 번호로 입력된 것들은 90%가 효능이 없다. (2016. 9. 28 )

***
 
나는 연락처 관리를 잘 하는 편이다. 

기자질이라는 습성이 몸에 밴 까닭인지는 모르겠지만, 기자 중에서도 나맹키로 연락처 관리 잘 하는 사람 별로 못 봤다. 

나는 대개 명함을 받는 족족 전화번호부에 입력하는 편이다. 

무슨 명함 자동 인식 기능인가 뭔가 있어 명함을 촬영해 보관하는 형식이 편리한 듯해서 이걸 조금 이용해 봤더니, 심각한 문제가 발생했다. 메모리 용량을 너무 많이 까먹더라. 

그래서 할 수 없이 원시적인 방식으로 돌아가 그 사람 이름과 연락처와 이메일과 직책 주소까지 대개 손으로 입력해 저장한다. 이렇게 해 놓으니, 온 사방에서 날더러 연락처를 묻는 이가 살도殺到한다. 

젤로 이상한 사람이 같은 사람 번호를 매번 물어오는 경우다. 
제발 입력 좀 시켜 놓으라고 그리 핀잔을 주는데도 안 시키는 모양이다. (2016. 9. 28 )

 
***
 
삼국사기 고려사 조선왕조실록 그 어디를 뒤져봐도 하루 세 끼 먹는다는 말이 없다. 왜? 너무나 일상이어서 특기할 가치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고려사에도 그 서두를 보면 일상적인 것은 기록하지 아니하고 개중에서도 특기할 만한 일만 기록한다 했다. 그래서 왕이 으레 절에 행차하는 일은 기록하지 않았지만, 그러면서 반승飯僧이라 해서 만 명 이상 되는 스님 모아놓고 대대적인 연찬회 열 때 정도만 특필했다. 

저 연락처 관리 변화도 마찬가지라, 이 시대 누구나 공유하는 경험이나, 누군가는 기록을 해야 후세에 이 시대를 연구하는 문화사 자료라도 쓰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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