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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S & MISCELLANIES

왜 논문을 읽지 말아야는가?

by taeshik.kim 2020. 9.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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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언제나 논문을 읽지 말라고 한다. 남들 논문 읽어, 그것을 소화한다 해서 좋은 논문 나오는 법 결코 없다. 내 열 손가락 다 지져도 좋다.




이를 탈피하지 못하니 매양 논문이라는 것들을 보면 남들 무슨 얘기했다 잔뜩 나열 정리하고는 그에 대한 비판이랍시며, 지 말 한두마디 보태고는 그걸 논문이랍시며 제출하곤 한다.

논문이 논문을 쓴다는 말은 이렇게 해서 언제나 적어도 국내 학계에서는 정당하다.

그런 까닭에 제아무리 뛰어난 논문이라 해도, 그 전체 중 음미할 만한 곳은 10%도 되지 않는다. 걸러내고 나면 남은 대목이 없다.




좋은 글, 좋은 논문은 나는 그 어느 것 하나 버릴 것이 없어야 한다고 본다. 특히나 그 첫 문장과 마지막 문장은 강렬해야 한다.

언제나 지적했듯이, 지금 우리네 글쓰기 논문쓰기를 보면 무한반복 ocn이다. 언제나 성탄절을 장식하는 《나홀로 집에》다.

것도 같은 말의 무한 반복이다. 국문초록 영문초록이 같은 말이요, 국문초록과 서문이 같은 말이요, 국문초록과 서문과 결론이 같은 말이요, 국문초록과 서문과 결론과 요약이 같은 말이다.

내가 생각하는 잘쓴 글이란 이 네 가지가 모두 달라야 한다.
그 요지는 같다 해도, 그 표현이 달라야 하고, 그 전거가 달라야 하고 그 문체가 달라야 한다.




논리 전개도 달라져야 한다. A라는 주제에 대해 이전 어떤 선행 연구자가 B라고 말하고 C가 D라고 말하고 E가 F라고 말했다고 하는 논리 전개 구조도 혁파해야 한다.

논문을 읽지 말아야 하는 까닭은 그에 얽매여서는 결코 좋은 글이 나올 수 없기 때문이다. 이는 우라까이에 지나지 않는다. 제 아무리 그 글이 훌륭해도 언제나 선행 연구자의 따라지가 되는데 지나지 않는다.

선생이라는 자들도 개중 소위 열린 자들이 매양 하는 말이 나를 밟고 지나가라는 것이거니와, 이 말이 언뜻 보면 훌륭하기 짝이 없는 듯하지만, 그 속내를 따져보고, 실제로 요구하는 글쓰기 스타일도 자신의 연구를 토대로 해서 그 한계를 뛰어넘으라는 데 지나지 않는다.


논문을 내친 자리에 갖다 놓아야 할 것들



이는 누군가 서양 철학사를 갈파한 말을 빌린다면 영원한 각주달기에 지나지 않는다. 각주를 쓸 것인가 새로운 원전을 쓸 것인가 그건 글쓰는 이의 자세에 달려있다.

그 어떤 경우에도 나는 각주달기는 싫었다.

내가 할 일이 없어 이기백 논문 각주나 쓰겠는가?

(2017. 9. 14)

***

화이트헤드는 서양철학사 2천년은 플라톤 각주달기에 지나지 않는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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