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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훈과 함께하는 paleopathology

유럽 철기시대의 사형수들 (6) 타키투스가 말하는 두 가지 유형

신동훈 (서울의대 생물인류학 및 고병리학 연구실)



전 회에서 이야기한 타키투스 저작에는 흥미롭게도 늪지 미라=Bog body 에 대한 기술이 있다. 


게르만인 풍습을 이야기한 유럽판 삼국지 위서 동이전-. 《게르마니아》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는 것이다. 


"교수형에 처한 (게르만인) 반역자와 배신자들, 겁장이들이나 동성애자들은 늪지 바닥에 던져 가라앉혀 죽어서도 떠오르지 못하게 한다." 


학자들은 타키투스가 기술한 이 부분이 늪지미라의 죽음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본다. 



교수형 당한 늪지 미라. 타키투스 기술에 의하면 그는 철기시대 유럽 문명의 범죄자-사형수이다. 


이 시각 대로라면 오늘날 발견되는 많은 늪지미라에서 보이는 예리한 칼질 흔적이나 목에 걸린 밧줄 등은 그가 처형당한 흔적인 셈이다. 



늪지미라-. 덴마크에서 발견된 Tollund Man 목주위에 걸린 밧줄. 교수형의 흔적일까? 



만약 그렇다면 Tollund Man의 이 평안한 얼굴은 사형수 얼굴인 셈이다. 


앞에서 우리는 타키투스는 게르만의 강건하고도 윤리적 기풍을 찬탄했다고 했다. 타키투스가 기술한 범죄자 유형, 반역자, 겁장이 (아마 전쟁에서 용맹성을 보여주지 못한 경우일 듯), 그리고 동성애자들-. 이들은 게르만 사회가 용납 못할 부류의 사람이었던 셈이다. 


전통사회의 겁장이나 반역자에 대한 증오는 꼭 게르만 사회에서만 보이는 것은 아니다. 


《당서唐書》에 보이는 고구려 모습을 보면 타키투스가 묘사한 게르마니아 사회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것이 보인다. 


법률法律은 반란을 음모한 자가 있으면 많은 사람을 불러 모아 횃불을 들고 서로 다투어 지지게 하여, 온 몸이 진무른 뒤에 참수斬首하고 가속家屬은 적몰籍沒한다. 성城을 지키다가 적에게 항복한 자, 전쟁에서 패배한 자, 사람을 죽이거나 겁탈한 자는 목을 벤다. 其法: 有謀反叛者, 則集衆持火炬競燒灼之, 燋爛備體, 然後斬首, 家悉籍沒; 守城降敵, 臨陣敗北, 殺人行劫者斬 (당서 동이전 고구려조)



나치시기. 수용소에 집단 수용된 동성애자들. 나치가 볼때 동성애자들은 유대인 등과 마찬가지로 절멸해야 할 대상이었다. 


동성애자를 처형한 것은 어떨까. 

《게르마니아》가 묘사한 2000년 전 시대가 아니라 20세기에도 이런 일은 인류사에서 벌어졌었다. 그것도 같은 유럽에서. 


나치 치하 유럽에서는 1933년부터 1945년 사이, 동성애자라는 명목으로 십여만명이 체포되었고 이 중 5만명 정도가 실제로 유죄 판결을 받아 집단 수용되었다. 이들 중 상당수는 수용소에서 사망했다. 


타키투스가 묘사한 게르만 사회 풍경은 인류사에서 늘상 반복되던 사건이었던 셈이다. 그리고 늪지 미라는 그런 사회적 폭력의 희생자 (범죄자) 였던 셈이 될터이다. 


하지만 타키투스의 《게르마니아》에는 위와 같은 내용과는 상이한 기술이 또 있다. 


북유럽-게르만 사회에는 "인신공희 풍습"이 만연해 있다는 기술이 있는 것이다. 이러한 기술은 타키투스 기술에서만 보이는 것은 아니며 로마 북쪽 "야만인"에 대한 정벌전을 수행한 카이사르 기술에도 나와있다. 


이러한 타키투스의 상이한 기술은 범죄자의 처벌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일부 늪지미라의 정황을 반영하는 것으로 보인다. 


고고학자들은 늪지미라가 발견된 정황에서 이들이 단순히 처형된 범죄자였다고 보기엔 까다로운 부분을 발견하는데, 예를 들어 교수형을 하거나 목에 칼을 그은 것은 분명하지만 나름 예를 갖추어 늪지에 매장한 흔적을 보는 것이다. 


위에서 본 것처럼 평안해 보이는 사망자 얼굴, 그리고 사망후 눈을 감겨 준 것 같은 흔적이라던가, 죽은 후 아무렇게나 던져버린것이 아니라 잠자는 것처럼 편안한 자세를 취해 준 것 등-. 


타키투스의 상이한 기술처럼 늪지 미라 안에는 범죄자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신에 대한 공양물로 별 죄 없이도 죽어 늪지에 던져진 사람들도 있었다고 보는 것이 맞을 듯 하다. 



타키투스 또 다른 기술을 보면 그는 범죄자가 아니라 신에게 바쳐진 제물이었을 가능성도 있다. 이 경우 예의를 갖춰 매장된 정황이 잘 설명된다. 



그렇다면 왜 하필이면 늪지일까. 

세계 여러나라에서 물 - 호수나 늪지- 등은 신과 교통할 수 있는 통로라고 믿은 시대가 있었다. 


유럽의 경우 이런 믿음의 흔적은 아더왕이 신검 엑스칼리버를 호수에서 불쑥 솟아나온  요정한테서 받았다는 이야기를 보면 엿볼 수 있다. 


깊은 호수나 늪지는 신에게 다가갈 수 있는 통로로서 제물을 바치거나 신의 선물을 받기도 하는 포인트였던 셈이다. 



호수의 요정으로부터 엑스칼리버를 전해 받는 아더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