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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 & THESIS

인신공희 그 피나는 역사 <상나라 정복翦商> translated by 홍상훈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24. 2.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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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자 후기에서

그동안 알고 있던 문왕과 강태공, 주공, 공자는 조작된 허상에 지나지 않았다!

고공단보古公亶父부터 계력季歷, 문왕에 이르기까지 주족周族은 상나라에 예속된 상태로 동족인 강족羌族을 사냥하여 상나라의 제사에 쓰일 인간 희생으로 바치면서 굴욕적인 삶을 살았다.

그 와중에 계력과 문왕의 장자 백읍고伯邑考가 인간 희생으로 바쳐졌고, 심지어 문왕과 다른 자식들은 백읍고의 살로 만든 육장肉醬을 먹어야 했다.

도덕적이고 인자한 성왕으로 알려진 문왕은 알고 보면 비정한 인간 사냥꾼이었고, 그 자신이 유리羑里의 토굴에 갇혀 인간 희생의 후보자가 되었을 때는 인육을 먹고 와신상담하며 반역을 준비했던 효웅梟雄이었다.

죽음의 위기를 넘기고 돌아와 자기 저택의 비밀 토굴 속에 숨어 몰래 편찬한 《역경》은 단순한 점술서가 아니라 그의 개인적 경험에 대한 기록이자, 상나라를 정벌하기 위한 은밀한 계획이 담긴 책이었다.

그리고 서부의 작은 강족 부락의 수령이었던 강태공은 은허의 백정으로 비천하게 살다가, 상나라를 무너뜨리기 위해 자기의 원수였을 수도 있는 문왕과 공모했다.

현량하고 점잖았다고 평가받는 주공도 한때 인간 사냥꾼의 일원이었고, 형의 살로 담근 육장을 먹음으로써 생긴 심리적 충격으로 남은 평생에서는 밥 먹을 때 종종 구역질에 시달렸다.

그리고 상나라를 멸한 뒤에는 피비린내 나는 인신공양제사를 근절하고, 상나라에 복역했던 자신들이 어두운 역사를 숨기기 위해 역사 왜곡을 통한 기억의 조작을 단행했다.

이에 따라 일족 전체가 술에 취한 채 전율할 만한 살육과 식인으로 피에 굶주린 광기에 몰두했던 상족의 잔인한 풍속은 면죄부를 받고, 일체의 죄악은 ‘부덕한’ 주왕紂王 개인에게 돌려졌다.

주지육림酒池肉林과 포락형炮烙刑 등으로 대표되는 주왕의 죄악이 실은 상족 전체의 종교적 풍속이었던 것인데, 주공의 기억 조작으로 인해 주왕 개인의 죄가 된 것이다.

그로 인해 스스로 신격화한 존재로서 왕실의 귀족까지 제사의 희생으로 바치며 상족 특유의 종교에 몰두했던 제신帝辛은 ‘의롭고 선한 것을 해치는[殘義損善]’ ‘독부獨夫’인 ‘주紂’라는 죄명을 짊어지게 되었다.

저자가 ‘옛 화하 문명’이라고 규정한, 야만의 상태로 흩어진 부족을 정벌하여 잔혹하게 다스린 상 왕조까지 중국은 사실상 딱히 무언가로 아우를 수 있는 집합이 아니었다.

주족처럼 족외혼의 풍습을 가진 몇몇 부족들 사이에 약간의 연맹 관계는 있었을 테지만, 족내혼의 관습을 가진 부족도 적지 않았으므로, 대륙의 부족들은 그야말로 밤하늘에 흩뿌려진 별들의 무리 같았다.

그들이 화학적으로 결합하여 하나의 거대한 집단—작자가 ‘새로운 화하 문명’이라고 부르는—을 이룬 것은 주 왕조가 이룩해 낸 획기적인 성과였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했던 주공은 거기서 야만적인 피비린내를 즐기던 ‘신권’의 그림자를 없애고, 그 빈자리에 인간의 ‘덕’을 채워 넣었다.

그러므로 그의 역사 왜곡은 그야말로 ‘선의’의, 그리고 당시로서는 거의 ‘최선’의 결단이었던 셈이다.

문헌에 기록된 내용을 토대로 실증적인 학문을 연구하고 가르쳤던 유가의 ‘성인’ 공자가 《역경》 속의 비밀을 간파한 뒤에도 오히려 주공의 역사 왜곡에 동의하고, 심지어 ‘육경六經’의 편찬을 통해 주공의 정신을 더 정교하게 반영한 것은 그러므로 상족의 후예로서 자기 조상의 치부를 가려준 데에 대한 단순한 감사의 표현이 아니었다.

그것은 피에 절은 ‘야만의 문명’을 배척하고 ‘인문’의 따스함을 간직한 새로운 문화를 창조해야 할 당위성을 공감한 결과였던 셈이다. 제자를 가르칠 때 괴력란신怪力亂神을 얘기하지 않고, 무덤에 인형을 부장하는 행위마저 저주했던 그의 소신과 언행이 지향한 궁극적인 목표인 ‘어짊[仁]’은 바로 ‘사람[人]’으로서 마땅히 갖춰야 하는 가장 중요한 덕목이었다.

전상翦商 즉, 상나라를 정벌하여 멸한 주나라의 역사 이면에 숨겨진 경악스럽고 전율할 만한 이 비사祕史들은 최근까지 이루어진 고고학적 발굴과 갑골문에 관한 연구 성과를 반영한 옛 문헌의 다시 읽기를 통해 밝혀진 것들이다.

물론 이 비사들을 역사의 적절한 자리에 다시 배치하여 설명한 데에는 저자의 리수어[李碩]의 예리하고 정교한 연구와 합리적인 추론을 바탕으로 한 참신한 글쓰기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파격적이면서도 무겁고 획기적인 이런 주제를 리수어는 학술적 고증을 제시하면서 동시에 능숙한 이야기꾼으로서 추리소설처럼 실마리를 풀어나가며 설명한다.

그래서 쉬훙[許宏]의 서문에서도 언급했듯이, 일단 이 책을 펼치면 손에서 쉽게 놓지 못하게 된다.

잔인한 피비린내에 절은 인신공양제사의 세부 의식에 대해 냉정한 시선으로 재현한 서술은 숨이 막힐 듯한 긴장감과 더불어 일정한 거리감을 동시에 유발함으로써 묘한 감정에 휩싸이게 한다.

그로 인해 《역경》과 《상서》, 《시경》에 대한 새로운 해석과 《일주서》의 새로운 가치를 발굴함으로써 하나하나 나타나는 저 은폐된 역사의 비밀들이 충격보다는 ‘재미’로 독자를 매료시킨다.


*** 
 
이 글은 아마 막 출간이 되었거나 오늘낼 선보일 법한데 <상나라 정복翦商: 은주 혁명과 역경의 비밀>이란 책을 옮긴 홍상훈 인제대 교수 역자 서문 중 일부다.

중국 고대 하·상·주 시대 1000년, 특히 상-주 교체기를 집중해서 다룬 고고학 책으로 936쪽 벽돌 책으로 원전은 광서사대출판사에서 나와 1년 동안 40만부가 팔린 대형 베스트셀러로 알려져 있다. 

그 출간 예고는 앞서 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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