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현상이 일어났을 때 우리나라에서는 딱 이 카드만 들이밀면 다 설명된다고 믿는 부류가 있다.
민중과 민족이다.
한국이 왜 갑자기 잘 살게 되었냐고 물어보면,
민중의 노력 때문.
자기 국민을 개돼지처럼 학대해도
민족이면 다 용서된다.
이런 걸 데우스 엑스 마키나 라고 한다.
거짓말 같지만 지금도 민중과 민족 딱 키워드 두 개로 모든 걸 설명하는 사람들이 있다.
연구? 설명? 필요 없다. 민중과 민족이면 다 설명되는데 뭐하러 연구를 하나.
연구 참 쉽다.
*** Editor's Note ***
데우스 엑스 마키나 deus ex machina는 글자 그대로는 "기계 장치로 (연극 무대에) 내려온 신(god from the machine)"이라는 뜻이다. 호라티우스 시학[Ars Poetica]에 등장하는 말로, 시인[이 경우는 문학가 전반으로 봐야 한다]은 이야기를 풀어가기 위해 신을 등장시켜선 안 된다고 했다.
예컨대 곤란에 처한 주인공을 왕자나 떼부자가 짠 하니 등장해서 그 질곡에서 구해주는 것과 같은 구성을 말한다. 길가에 쓰러진 노인을 응급조치하고 구했더니, 알고 보니 이 사람이 한국 최고부자라, 그가 도와 주인공이 대성공했다 같은 이야기 전개를 말한다.
필자는 한국사에서 민족과 민중이 바로 그런 존재라 고발한다. 민중민족사관이 득세하면서 역사는 밑도끝도 없는 민중 혹은 민족을 소환해, 그것으로 역사를 재단하려 한다.
돌이켜 보면 민중의 염원이라는 말처럼 공허한 말 있던가? 독재가 극성을 구가한 시절에도 그 독재를 지지한 사람이 절반은 되었다는 사실을 망각한 언어도단이다. 이 민중과 민족은 이런저런 독성 중에서도 편집자가 보이게 가장 심대한 문제는 주체성을 발휘해야 하는 인간을 추상명사 집합명사로 몰명화沒名化한다는 데 있다.
저런 역사관을 내세운 자들은 민중 민족이 역사의 주체인 것처럼 선전했지만, 저와 같은 실로 단순한 도식에 따라 실은 민중 민족(성립가능하다면 말이다)이라는 집합추상명사에 욕망이 들끓을 사람들을 하나로 쑤셔박아 넣은 인간을 만들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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