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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시대 한국사는
구리가 없어 고민을 안 해 본 적이 없다.
조선시대에는 구리가 부족해 화폐량이 절대 모자라
경제가 제대로 안 돌아갈 판이었다.
조선 선비 중에는
심지어 돈을 쓰지 말자고 하는 사람까지 나오는 판이었다.
이를 전황錢荒이라고 한다.
그런데-.
전황은 조선시대에만 있었을까.
예를 들어 청동기시대는 어떨까.
전황이라는 말을 동전 부족이라 하다 보니 전황이지,
사실 구리 부족이라는 말과 다를 바가 없다.
청동기시대에는 구리 부족에 시달린 적이 없을까?
있었을 것이다.
한국사에서 청동검과 비슷한 시기에 만들어진 것이 분명해 보이는
많은 돌칼들은 이를 웅변한다.
청동으로 위세품 수요를 다 채우지 못하다 보니
돌까지 동원된 것이라 필자는 본다.
그런데-.
그러고도 모자랐다면?
그러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러면 구리가 좀 넉넉한 지역에서 들여왔을 것이다.
왜계 청동무기의 흔적은 그런 것으로 본다.
만약 그러고도 모자랐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한국사의 특징 중 하나가
없는 살림에 문명을 이루다 보니
짠 행주도 한번 더 짜는 것인데,
필자는 우리나라 청동기물을 유심히 보면
구리가 모자라 짠 행주도 한번 더 짠 흔적을 여럿 볼 수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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