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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신라시대 역사 공부를 하면
항상 나오는 것이 9주 5소경이다.
그런데 행정기관으로서 9주에는 주도라 할 중심지가 다 있다.
5소경은 9주 외에 따로 설치된 것이다.
왜 따로 설치했을까?
필자의 생각은 이렇다.
에도시대 일본의 지도다.
막부의 비공식 적대세력이라 할 도자마 다이묘들의 사이에
막부령과 신판, 후다이 다이묘의 땅을 박아 넣은 것이 보이는가?
저것은 일부러 저렇게 한 것이다.
주변의 도자마 다이묘를 감시하기 위해서.
다시 신라의 9주 5소경을 보자.
5소경을 왜 저렇게 박아 넣었는지 이유가 보이는가?
5소경은 주변을 견제하기 위해 만든 통일신라판 "막부령, 신판다이묘, 후다이다이묘"나 다름없다.
그래서 5소경에는 신라 왕경처럼 6부를 설치하고 왕경의 사람들을 이주시킨 것이다.
5소경은 신라의 "후다이다이묘", "신판다이묘", 그리고 "막부령"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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