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신 관계가 실은 철저한 이해득실에 기반한 관계임은 전근대 왕조시대 그것만큼 두드러지게 드러나는 일이 드물다.
이런 계약이 장 자크 루소 이후라 생각하면 커다란 착각이다.
내가 더 이상 먹을 것이 없을 때 신하는 주저없이 군주를 떠나고 때론 칼을 겨누었다.
조선시대 산림山林은 실은 반란자의 소굴이다.
충忠은 언제나 효孝에 완패했다.
충효忠孝는 일란성 쌍생아가 아니라 늘 전자는 후자에 붙어 기생하는 파리목숨이었다.
권력이 언제나 충을 효에 등치코자 그리도 몸부림친 까닭은 이 때문이었다.
남녀 관계, 부부 관계도, 심지어 부모자식 관계도 이에서 하등 어김이 없다.
(2016. 1. 2)
#충효忠孝 #공사公私 #효제孝悌 #이익 #이익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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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비자가 갈파하기를
"권력이란 군주에게 연못과 같으며 신하란 그 권력 속의 물고기와 같다. 물고기가 연못에서 튀어나오면 다시 붙잡을 수 없다. 군주가 권력을 신하에게 빼앗기면 다시 돌려받지 못한다"고 하는가 하면 "후비后妃나 부인, 태자는 군주가 빨리 죽었으면 한다. 그러므로 자기 죽음을 이利로 취할 수 있는 자에 대한 경계를 소홀히할 수는 없다"
나아가 "무릇 군주와 신하는 내친지정肉親之情이 아니므로 정직한 방법으로 편안함을 얻을 수 있다면 신하는 힘을 다해 군주를 섬긴다. 그러나 정직한 방법으로 안락함을 얻을 수 없다면 신하는 사리사욕을 추구해 군주에게 발탁되기를 구할 것이다"고 하는가 하면
"주는 이해를 계산하여 신하를 기르고, 신하도 마찬가지로 이해를 계산하여 군주를 섬긴다. 군주와 신하는 이와 같이 서로 수판을 놓고 있는 것이다"고 하며 "신하로서는 몸을 희생하면 이익이 없을 것이라 생각할 것이며, 군주로서는 나라에 손해를 끼치면서까지 신하를 아끼지는 않으니 군주와 신하의 관계는 계산에 따른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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