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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S & MISCELLANIES

탈상脫喪과 49재齋, 거상居喪을 줄이기 위한 몸부림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24. 1.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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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상은 글자 그대로는 상복을 벗는다는 뜻이라, 이 탈상을 통해 비로소 상주는 일상으로 돌아간다.

탈상하지 아니한 기간이 바로 상중喪中인데, 이 상중을 얼마로 삼느냐 해서 孝를 절대 가치로 앞세운 동북아시아에서도 적지않은 논란이 있었으니

공자가 3년상을 제기한 이래, 이것이 줄곧 대세였을 듯하지만, 이 3년상도 실상을 따지면 27개월과 25개월 설로 맞섰고, 아주 혹가다가 액면대로 해석해서 36개월을 지내는 일도 있었지만, 대세는 아니다.

27개월과 25개월은 권력투쟁도 끼어 후한시대 이래 동아시아 경전해석의 양강 구도를 형성한 정현인가 마융인가 어디를 따르느냐에 따라 정해졌다. 

 



이 3년상은 공자 당대에 벌써 너무 길다고 문제가 되어, 논어를 보면 누구더라? 그의 제자 중에서도 열라 부자로 공자의 시종일관하는 스폰서였던 그 양반은 뺀질이라, 선생을 선생으로 모시기는 했지만, 돌아서면 지맘대로라,

샘 3년은 너무 질어요 쫌 쭐가주여 했다가 쿠사리 찐밥을 먹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공자의 논리는 자식이 태어나 제뱔로 서서 다니고 말이라도 하기까지는 3년이 걸리니 그런 길러준 은혜를 보답하려면 3년은 거상居喪해야 한다 호통을 쳤으니, 그 제자 난 안 따랐다고 본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우리 집에서는 3년상을 치렀으니, 당신들을 매장하고 나서도 집구석이라도 할 것도 없는 그 초가에서도 곡하는 데를 마련하고는 3년 내내 엄마가 아침마다 제수 음식을 올리고서는 한바탕 곡을 하셨으니, 그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기만 해서, 나는 그 곡소리가 그닥 상쾌할 리는 없었다. 

어느 순간 곡이 곡을 부르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했고, 저 곡하는 법을 엄마는 어디에서 배웠을까 지금도 궁금한데, 국악하는 사람들 얘기를 들어보니,

한국인이라면 생득으로 나고 자란 그 특질이 있어, 이 세상 모든 엄마 여자는 어느 순간이 되면 배운 것도 아닌데,

그 기똥 찬 곡소리가 어느 시점이 되면 나온다고 한다 해서 아 그렇구나 한 기억이 있다. 

문제는 그 빈소. 이 빈소에서 우리는 잘 잤다. 섬뜩함? 이런 건 그닥 없었고, 빈소 아래 들어가기도 하고 암튼 잘 논 기억은 있다. 

본론으로 돌아가 3년상은 인간적으로다가 너무 길지 않은가?

더구나 저 시점에서는 원칙으로는 섹스도 금지됐고, 또 결혼도 할 수 없었다. 너무 비인간적이지 아니한가?

실제 저 기간 결혼 기다리다 파토난 집안 태반이고 나머지 태반은 신랑 신부 중 어느 한쪽이 죽어 버리니 말이다. 

이걸 단칼에 해결한 것이 한대漢代 이래 등장한 이일역월제以日易月制라, 하루를 한달로 쳐서 27일 혹은 25일만에 끝내버린 것이다.

3년은 다른 누구보다 황제가 참지를 못했다. 또 저 기간이 오래되면 반란을 부른다. 여러 이유로 실상 3년상은 이름만 남았다. 

이 이름만 남은 강시를 끄집어낸 데가 조선이었다. 그 이름도 위대한 조선, 그렇게 먹고 할 일이 없었는지, 중국에서도 일본에서도 쓰다가 버린 3년상을 다시 끄집어 내서는 움막 생활을 강요하게 되니, 그 유습이 내 엄마까지 내려온 것이다. 

저 3년상을 간단히 해결한 것이 불교에서 비롯하는 49재다. 그 어중간에 삼우재가 있기는 하지만, 실상 한국사회에서 탈상은 매장과 함께 끝나고, 그것이 못내 찜찜하다 해도 49재로 끝장난다. 

칠 곱하기 칠은 사십구. 이에서 비롯해서 49일만에 완전한 탈상을 한다. 

요새는 관념이 많이 약해지기는 했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사람은 두 번의 죽음을 맞는다. 

하나는 생물학적 죽음이라 의사들이 내리는 사망 판정이고, 다른 하나는 탈상에 따른 상징적 죽음이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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