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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훈의 사람, 질병, 그리고 역사

한국의 근세 의학사를 이해하기 위해 연구해야 할 에도시대사

by 초야잠필 2022. 11.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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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젊은 친구들 말처럼 "제목이 곧 내용"이다.

한국의 근세 의학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일본 에도시대사의 연구가 필수적이다.

한국 근세사 연구는 그 분야를 막론하고 결국에는 일본의 에도시대사에 냉엄하게 직면하지 않으면 안 될 날이 올 것이다.

과거에는 민족주의, 식민사관이라는 단 두 마디를 데우스 엑스 마키나 처럼 사용해 왔지만, 그 약발이 다하는 날, 기존의 한국 근세사가 짜 놓은 산만한 구조물은 부실 공사가 무너지듯이 어느날 산산조각이 나게 될 것이다. 그 날이 멀지 않았다.

에도시대 일본의 의사에는 4종류가 있었다. 천황가를 돌보는 조정의, 막부 전속의 관의, 각번에 소속된 번의, 그리고 개업의다. 조선시대와 비교한다면, 조정의와 관의는 우리에게도 유사한 것이 있었다고 할 수 있지만, 번의와 개업의는 우리에게 생소하다. 번의는 막번체제를 구성하는 인력으로 우리에게는 없었던 것이고, 개업의는 에도시대 일본이 우리보다 훨씬 강력한 화폐경제에 바탕을 두고 있었기 때문에 조선시대 향촌의 양반들이 접하던 의료와는 비슷한 듯 다르다. 에도시대 일본의 막강한 인쇄문화는 당시 의학에도 영향을 크게 주었다. 서양의학에 기반한 소위 난학은 발달한 에도시대 인쇄문화 없이는 상상하기 힘들다.
일본 에도시대의 번의. 에도시대는 막번체제이므로 지방 권력인 번에는 번의가 있었다. 각 번의 영주에 대한 어의의 역할을 하기도 했고, 번 사무라이의 의사역할도 했다. 신분이 낮은 번의는 성밑거리의 평민들을 대상으로 하기도 했다지만 대체로 이들의 신분은 사무라이 대접을 받았다. 번의는 우리나라에는 비슷한 유형이 없는데, 이들은 지방의 식자층으로 난학에도 정통한 사람이 많아 일본의 근대화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일본의 개업의 마치이(町医)는 일반인 상대가 많았으므로 화폐경제가 발달한 에도시대답게 환자를 대상으로 돈을 받고 치료하는 근대적인 의사의 모습이 이미 당시에 완성단계에 들어가고 있었다고 보아도 좋겠다. (일본 위키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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