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성백제박물관이 의뢰해서 생각나는 대로 긁적거려 봤다. 이런 문제에 대해서는 기간 여기저기 싸지른 글이 하도 많아 이참에 그것들을 정리하면서도, 또 조금은 색다른 이야기를 가미해 본다 해서 마파람 게눈 감추는 심정으로 뇌까렸으니 몫이야 독자 아니겠는가?
원문은 아래를 참고하면 된다.
https://baekjemuseum.seoul.go.kr/board/index.jsp?boardid=SBM0604010000&mmode=content&mpid=SBM0604010000&skin=notice&pid=21042&strsearch=&d_s_que=&cpage=1
아마 편집과정에서 더러 개정이 있었을 터인데 제출한 원고 원문을 첨부한다.
문화재가 전문적이라 어려울까?
김태식 연합뉴스 K컬처기획단장
요약 : 흔히 문화재를 안내하거나 설명하는 글이 너무 어렵다고 말한다. 문화재는 고도의 전문성을 요구하기에 그런 일을 숙명이라고도 한다. 그래서 나름대로 독자로 하여금 이해도를 높인다며 쉽게 쓴다 해서 무진장을 애를 쓴다. 과연 맞는 말일까?
그것을 만들어 쓴 사람들은 하나도 어렵지 않았다. 단순히 그때랑 지금이랑 시공간이 차이가 나서 그들이 남긴 문화재가 어려울까? 외려 반대는 아닐까? 그들한테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지만 우리한테만 중요한 것들을 전문성이라는 이름으로 강요한 때문은 아닐까?
그렇다. 문화재가 어렵게 보이는 까닭은 외려 전문적인지 않아서 어려울 뿐이다. 단순히 이런 유물은 명칭이 이렇다고 해서 그 한자투성이인 그 이름 설명을 한글로 푼다 해서 문화재가 다가가는 것은 아니다.
추리소설이나 수사극을 생각하면 쉽다. 그들은 독자 혹은 시청자에게 고도의 추리력을 요구하지만 그 때문에 아무도 머리 아프다 하지 않는다. 전문적이지 않아서 어려울 뿐이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 그는 다만 /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 그는 나에게로 / 와서 꽃이 되었다.”
출생 얼마 뒤 얻어 지금도 죽 그렇게 일컫는 내 이름 역시 그러해서, 그렇지 않았던들 나는 누군가에게는 누구의 아들로, 누군가에게는 연합뉴스 기자로 불렸을 것이로대, 이름은 구속이기도 하다. 그것이 꼭 이름뿐이리오.
무엇이 어떠하다 함은 설득이기도 하겠으며, 권유이기도 하겠지만, 강요일 수도 있다. 예서 무엇은 ‘이름’에 해당하며, 어떠하다는 ‘기술’ 혹은 ‘부연’이다.
박물관 종사자들은 언제나 어떤 방식으로 문화재로 시민사회와 소통할까 하는 숙명을 안고 간다. 야외에서는 문화재안내판이라 해서 해당 유산을 소개하는 간판이 있고 실내에는 전시패널이니 해서 보통은 해당 전시물 주변에 붙이는 짧은 글이 그에 해당한다 하겠다.
요새야 각종 비주얼을 화려하게 가미하거나, 음성서비스를 지원하는 일로 발전했지만, 그 매체가 무엇이건 그것이 겨냥하는 바는 소통이다. 소통에는 묵언의 전제가 있다. 서비스를 제공하는 쪽과 그것을 받아들이는 쪽 사이의 간극 말이다.
이 간극 양쪽 끝 중 한 곳에 전문성이 자리한다. 전문성은 그 분야 집중 교육을 받고 공부한 사람이 독점하는 그 무엇이라 간주하며, 그것은 날것 그대로는 시민사회에 잘 다가가지 않으니, 쉽게 풀어쓰야 한다는 강박을 문화재업계 종사자들은 숙명처럼 안고 산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쉽게 풀어쓰지 아니해서 문화재가 어렵게만 느껴질까? 나는 이런 생각 자체를 전복했으면 싶다. 나는 문화재가 전문적이라서 어려운 게 아니라, 외려 그 반대라 어렵다고 본다.
우리가 “너무 전문적이다” 혹은 “너무 어렵다”는 말을 할 적에 그 내실을 보면 실은 용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예서 용어라 함은 관련 학계 연구자들이 약속한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며, 그것을 만들어 사용한 사람들과는 실은 아무 관계가 없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부여 혹은 고구려에서 남하한 무리 일군이 지금의 서울 한강 유역에 백제라는 왕국을 건설하기 시작한 기원전 18년 무렵, 이 땅에는 현재 우리가 경질무문토기(硬質無文土器)니 회청색경질토기(灰靑色硬質土器)니 하는 그릇이 많이 제작됐다.
그 당시를 살고 간 사람들을 혹 불러낼 수 있다면, 또 그리하여 저들에게 저런 이름을 내밀었을 때, 그 말을 알아들을 사람 있겠는가? 장담하지만 단 한 사람도 없다.
저보다 조금 시간이 흘러 같은 땅에는 이른바 삼족기(三足器)니 흑색마연토기(黑色磨硏土器)하는 여러 그릇이 등장하며, 중국 수입산들인 계수호(鷄首壺)니 시유도기(施釉陶器) 혹은 그 일종인 전문도기(錢文陶器)며, 청자완(靑瓷碗)도 더러 보인다.
저런 이름들을 그들이 알아들을 리 만무하다. 이는 곧 저런 명칭 혹은 그에 기반을 두는 무수한 설명이 실상 전문성과는 아무 관련이 없고, 더구나 그것을 만들거나 쓴 사람들한테도 이른바 ‘듣보잡’이다.
나는 언제나 공주 무령왕릉 출토 동탁은잔(銅托銀盞)을 사례로 든다. 받침대는 청동으로 만들고, 그에 얹은 잔은 은으로 제작했다는 뜻이다.
이를 보관하는 국립공주박물관에서 지금도 그런지는 자신이 없는데, 이 유물만큼 시대에 따라 전시기법을 달리하며 모습을 드러낸 일은 드물다. 이 잔을 시민사회가 바라보는 관점은 무엇일까?
단 하나 분명한 건 박물관이 그렇게 중요하다고 간주하는 그에 새긴 각종 화려한 문양은 아무도 관심 없다는 사실이다. 이를 보는 사람들은 누구나 이걸 어디다 썼을까 묻는다. 찻잔일까? 술잔일까? 아니면 우리가 짐작하지 못하는 다른 용도는 없을까?
하지만 그런 의문을 어디에서도 박물관은 풀어주지 않는다. 물론 박물관도 몰라서 그리했을 것이다. 그렇다고 가장 중요한 기능은 놔두고 빈껍데기만 우리가 중요하다 요란스레 떠드는 것은 아닌가? 나는 이를 묻는다.
박물관이 집중으로 전시하는 유물 대다수는 실생활에서 사용하거나, 죽은 사람을 위해 특수 제작한 것들이다. 단순히 시공간 차이가 크다는 점을 제외하고는 왜 저런 유물들에 대한 설명이 그리 어려워야 하는가? 그네들한테는 하나도 어렵지 않았을 ‘물건’을 왜 그리 우리는 어렵게 설명하는가?
혹여 없어도 되는 각종 용어, 개념어를 한자 혹은 그럴 듯한 말로 조합하고는 그걸 전문성으로 포장한 것은 아닐까? 우리가 알아야 한다고 강조하는 것들이 정말로 긴요하기는 한 걸까? 이걸 이제는 심각히 고민해야 한다.
경질무문토기? 누가 애초에 저와 같은 흙으로 빚은 그릇들에 저런 이름을 붙이기 시작했는지 모르지만, 일단 저리 이름하기 시작한 이상, 그 이름이 본질을 구속하고 만다.
그리하여 백제인들, 혹은 그들이 등장할 무렵에 이 땅에서 저것을 빚어 실생활에 사용했을 2천 년 전 사람들과는 하등 관련이 없이 몇 도에서 구웠니, 모래가 얼마나 섞였니 하는 문제로 귀결하고 만다.
저런 이름 혹은 그것이 탑재한 정보가 중요한가? 나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고 본다. 저와 같은 그릇이 등장함으로써 무슨 사회변화를 주었는지가 중요하지 않겠는가? 그걸 캐내는 일이야말로 전문성 아니겠는가?
전문적이기 때문에 어려운 것이 아니라 쓸데없는 이름을 부여하고 그것이 오도하는 엉뚱한 정보에 혼을 빼기 때문에 어려울 뿐이다.
작금 문화재 설명은 너무 전문적이라 어려운 것이 아니라 전연 전문적이지 않기 때문에 어려울 뿐이다.
<첨부사진 설명>
1. 풍납토성 백제우물 출토 그릇들. 설명문을 보면 215점에 달하는 저들 그릇은 모조리 주둥이를 일부러 깨뜨린 흔적이 발견됐기 때문에 제사용으로 추정된다는 말이 있다. 이런 설명은 “보통 이 시대 무덤에 넣은 껴묻거리를 보면 그것이 죽은 사람을 위한 물건이라는 뜻에서 멀쩡한 그릇들을 일부러 깨뜨린 흔적이 발견되는 것으로 보아, 이들 그룻도 우물이 죽어 더 이상 사용하지 않는다는 뜻에서 메꾸면서 넣은 것으로 보인다”는 정도로 설명이 있어야 한다.
2. 몽촌토성 출토 돌절구...이들이 돌절구다라는 안내판은 실은 “나는 사람이다”는 설명과 같다. “돌절구가 많이 보이는 것으로 보아 곡물 같은 것을 빻아 요리했음을 짐작한다”는 정도로 설명이 있어야지 않을까?
3. 계량모양 토기....그 모양이 계란을 닮았다는 말은 코키리는 코가 길다는 말과 같다. 저런 그릇이 보통 부엌에서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요리용 곡물 같은 것을 저장한 것으로 보인다는 정도의 설명이 있으면 좋지 않을까?
4. 무령왕릉 출토 동탁은잔....각종 문양이 그렇게 중요할까? 기능 아닐까? 설혹 기능을 모른다 해도 “가장 중요한 기능을 아직 짐작하기 힘들어 궁금증을 낳는다. 혹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정도의 설명이 있으면 좋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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