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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훈의 사람, 질병, 그리고 역사

[막말인물전-8] 향사鄕士와 잔반殘班

by 초야잠필 2024. 7.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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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오카 신타로中岡慎太郎(1838~1867). 도사번의 "향사"출신으로 탈번하여 근왕양이 운동에 투신했다. 사카모토 료마와 함계 있다가 습격받아 같은 날 죽는다. 눈빛을 보면 구체제를 때려 엎겠다는 결의가 읽힌다.

 
일본에는 향사鄕士라는 존재가 있다. 

이 향사는 정의가 조금 까다로운데 

사무라이가 성을 쓰고 칼을 찰 수 있는 권리를 부여 받는 것이라고 할 때 

영주가 사는 성밑거리(조카마치城下町)에 조영된 사무라이 구역에 살지 않고 
사무라이가 맞기는 맞는데 농사를 지으며 살거나 

농사를 짓는 사람들 중에 돈으로 사무라이를 사서 성을 쓰고 칼을 차면

이걸 대개 향사라고 부른다. 

이 향사계급이 일본의 메이지유신-막말기에 
가장 동요가 심했던 계층의 하나인데 

막말에 칼들고 설치면서 사람 베기에 혈안이 되었던 소위 "지사"들은 

대부분 각 번의 하급무사 둘째 아들 셋째아들들이거나 

아니면 향사 자식들이라고 보면 틀림없다.

이들은 사실 제대로 된 사무라이들-. 

번이나 막부의 녹봉으로 충분히 먹고 살던 고급무사들이 볼 때는
사무라이도 아니었다. 

그래서 취조할 때도 상급무사는 고문 없이 마지막에 할복을 시키더라도

이런 하급무사나 향사들은 고문에 마지막에 참수로 모가지를 날리는 경우도 드물지 않았다. 
 

사카모토 료마와 나카오 신타로

 
우리로 치면, 

얼마 전에도 이야기한 것 같지만, 
딱 우리의 잔반계급에 해당한다. 

우리의 잔반들도 스스로는 양반후손이라 생각했겠지만 

있는 집 자손들이 볼때 뭐 저런 놈들이 다 양반 흉내를 낸다 했을 것이다. 

논어 맹자 글귀는 좀 떼도 

낮에는 밭에 나가 땅을 갈아야 하는 신분이니 

딱 일본의 향사에 해당한다 하겠다. 

바로 이런 계급이 한국사에서도 
근대적 혁명의 주역이 되어야 하는 것이었는데, 

결국 우리의 경우 이들은 불발에 그치고 말았던 것은 유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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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말인물전-7] 오쿠보 도시미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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