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여 능산리 절터 발굴조사 완료 이후 지금 풍광이다.
정비...이게 정답일까?
이걸 찍은 날이 8월 중순 폭염이었다고 기억한다.
그 폭염에 저기 들어가볼 엄두도 못낸다.
나무 한 그루 없는 저런 정비 방식, 이제는 혁파해야 하지 않을까?
의자 하나 없다. 어디서 뭘 하란 건지 대체 알 수가 없다.
음수대 하나도 없다.
들어가서 통닥구이 되란 뜻이다.
모든 문화재 정비 현장이 이 꼴이다.
백제시대에 저랬을 거 같나?
(2016. 9.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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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문화재 현장은 너무나 보수적이라, 그 근거도 없고 역사적 유래도 없으며, 철학적 고민이라고는 전연 그리고 눈꼽만큼도 찾을 수 없는 관습이 인습이라는 이름으로 굳어졌으니,
요새야 조금은 바뀌기는 했다손 하지만, 매양 모든 고고학 발굴현장이 저런 양태라, 이럴 적마다 언제나 고고학은 그 이후 그 현장에 따르는 정비 탓을 하기는 하지만, 이것이 얼마나 새빨간 거짓임을 내가 여러 번 강조했거니와
이미 발굴 단계에서 그 발굴현장은 허허벌판을 만들어 놓는 데 그것이 끝난 다음에 무엇이 남으리오? 그나마 관리되는 곳이라고는 잔디밭일 뿐이요 그렇지 아니한 곳은 잡풀이 우거질 뿐이라
발굴하는 데 방해가 된다고, 그런 발굴현장을 기록하는데 걸거침이 된다는 이유로 나무라는 나무는 모조리 뽑아버리고 베어버리니 그것이 끝나고선 도대체 무엇이 남아있겠는가?
저 넓은 능산리 절터만 해도 나무 한 그루 없고, 저보다 훨씬 더 넓은 경주 황룡사터에도 감나무 한 그루 겨우 남았을 뿐이다.
그러니 매양 왜 이럴 거 같으면 발굴은 했으며, 이럴 거 같으면 왜 정비를 했느냐는 욕밖에 더 먹겠는가?
이는 결국 그 허허한 벌판에 대한 개발욕구를 자극하는 일로 발전하니, 언제나 그 활용을 부르짖는 사람들은 무엇인가를 자꾸만 세우려 하는 것이다.
요새야 사정이 조금 나아졌다 하지만, 걸레 빤다고 행주되지 않는다. 그 근간의 발상을 뜯어고치지 않고서는 매양 저 꼴이 빚어질 뿐이라, 문화재위원과 문화재청 이 친구들도 지들이 저런 현장의 무엇을 얼마나 제대로 고민해 본 적 있다고 무조건 덮어놓고 저런 현장은 손을 대서는 안 된다는 신념으로 똘똘 뭉쳐놓고는 그것이 보존철학이라 자랑하는 양태는 이제 그만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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