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www.youtube.com/watch?v=wm-aJfm7TBM
어느 날 여고시절 우연히 만난 사람
변치 말자 약속했던 우정의 친구였네
수많은 세월이 한없이 흘러 아~ 아~
지나간 여고시절 조용히 생각하니
그것이 나에게는 첫사랑이었어요
수많은 세월이 한없이 흘러 아~ 아~
지나간 여고시절 조용히 생각하니
그것이 나에게는 첫사랑이었어요 우~
'여고시절' 부른 70년대 톱가수 이수미, 폐암 투병중 별세
김효정 / 2021-09-03 09:30:11
허스키한 음색으로 인기…투병 중에도 신곡 발표
같은 노래인데 텍스트로만 적어놓으면 무미건조하기 짝이 없고, 또 때로는, 아니 자주 이것이 무에 감성을 일으킬 만한가 하겠지만, 배경 음악과 음표간 조합, 그리고 무엇보다 그것을 부르는 이의 창법에 따라 왕청나게 달라지니, 이 여고시절 역시 그러해서
이를 부른 이수미야 나보다 연배가 높아 그와 동시대를 호흡하지는 아니했지만, 언제나 대중가요는 그것을 소비하는 층과 생산 유통하는 층이 크게 한 세대 격차가 지기 마련이라, 저 여고시절만 해도, 내가 아주 익숙한 멜로디의 대중가요였다.
이수미 노래로 저 노래 말고는 실상 기억에 남은 것이 없으니, 70년대 인기가수라 하지만, 그 시절 10대가수가 평정하던 시절이라, 그 시대를 풍미한 가수로 60년대 말부터 걸치는 남진 나훈아, 그리고 놀랍게도 나훈아보다 연세가 많은 조용필이 70년대 중반을 지나면서 그의 시대로 만들어가던 중이었으니(그러다 대마초에 한방 가긴 했다만)
지금은 연예기획사로 일가를 이룬 이수만도 그 시절 멤버였고, 이제는 조승우 아버지로만 소환하곤 하는 조경수, 그리고 최헌 최백호, 그리고 송창식이며 윤형주며 하는 기라성들이 맹위를 떨치던 시절이었다.
다른 가수들이 70~80이며 해서 마구잡이 소환될 적에도 저 이수미는 근황이 나로서는 기억에 남을 만한 것이 없거니와, 까마득히 잊고 지낸 그가 고인이 되어 나타난다.
연세가 지긋했을 것으로 생각했더니, 이제 겨우 일흔이란다. 그가 누구건 이제는 그 죽음만으로 이런저런 상념이 지는 시절로 나 역시 접어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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