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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 & THESIS

새로운 문서가 이스터 섬 석상이 도난품이 아님을 증명한다?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26. 2.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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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다란 얼굴을 한 상반신을 드러낸 현무암 조각상이 아래에 서 있는 사람들보다 훨씬 높이 솟아 있다. 호아 하카나나이아(Hoa Hakananai'a)로 알려진 이스터 섬 현무암 석상이 영국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게티 이미지


영국의 한 고고학자가 이스터 섬 석상Easter Island Head figure으로 더 잘 알려진 모아이Moai 석상 호아 하카나나이아Hoa Hakananai 발굴에 대한 수정된 설명을 제시하며, 석상 반출이 일방적인 제국주의적 약탈 행위가 아니라 영국 탐험가와 라파누이 섬 원주민 간 협력으로 이루어졌으며, 궁극적으로 영국으로 옮기게 되었다고 주장했다.

호아 하카나나이아는 맨해튼 크기 정도 아열대 섬인 이스터 섬Easter Island에 흩어져 있는 약 1,000개 현무암 석상basalt statues 중 하나다.

라파누이Rapa Nui 원주민들은 이 거대한 석상들을 모아이moai라고 부르는데, 이는 조상들 영혼이 깃든 그릇 역할을 하는 기념비다.

그중 가장 잘 알려진 호아 하카나나이아Hoa Hakananai는 1869년부터 영국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으며, 세계적으로 가장 주목받는 반환 운동 중 하나를 촉발시켰다.

2018년부터 칠레 정부 지원을 받는 라파누이 지역 지도자들은 이스터 섬 조각상이 중요한 문화적 의미를 지니며 영국이 허가 없이 이를 반출했다고 주장하며 공식적으로 반환을 요구했다.

하지만 고고학자 마이크 피츠Mike Pitts는 최근 공개된 사진 증거와 발굴 당시 목격자들 증언이 더욱 복잡한 상황을 보여준다고 주장했다.

피츠는 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신간 '세상의 끝 섬: 이스터 섬의 잊힌 역사Island at the Edge of the World: The Forgotten History of Easter Island'를 집필하던 중 발굴 1년 후인 1869년에 런던에서 발행된 신문 '육군 해군 신문(Army and Navy Gazette)'에 실린 기사를 발견했다고 밝혔다. 

피츠는 "이 발견은 책 내용보다 훨씬 더 큰 의미를 지녔다. 마치 온몸에 소름이 돋고 흥분되는 순간이었다"고 말했다.

고고학 전문가인 그는 영국 고고학 협의회(Council for British Archaeology) 간행물인 '영국 고고학British Archaeology' 편집장을 20년간 역임했으며 스톤헨지 발굴을 이끌기도 했다.

그는 해당 기사에 현재까지 알려진 유일한 목격담, 즉 조각상 철거에 대한 "상당히 상세한" 증언이 포함된다고 덧붙였다.

발굴 책임자였던 리처드 애쉬모어 파월Richard Ashmore Powell 제독이 이스턴 섬 두상을 빅토리아 여왕에게 바쳤고, 여왕은 나중에 이를 대중 전시를 위해 브리티시 뮤지엄에 기증했다는 사실은 논란의 여지가 없다.

당시 사건을 목격한 익명의 증인에 따르면, 영국 탐험대는 원주민 공동체의 환영을 받았다.

"이곳에 도착했을 때, 우리는 약 400명 남성과 소년들이 바위를 따라 두 명씩 완벽한 일렬로 서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들은 우리가 지나갈 수 있도록 길을 비켜주었습니다." 

이 증언은 해안에서의 풍경을 "매우 이상하면서도" "즐거웠다"고 묘사하는 한편, 라파누이 사람들을 비하하는 용어를 사용하기도 했다.

또한 영국인들은 기원후 1000년에서 1200년 사이에 만든 것으로 추정되는 조각상이 있는 돌집들이 모인 곳으로 통하는 숨은 입구를 안내받았다고 주장했다.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영국인들은 섬 주민들과 담배를 교환했고, 주민들은 조각상 발굴을 도왔으며, 이후 선원들은 조각상을 배로 옮겼다고 한다.

피트는 회의적인 반응을 예상했는지, 1868년 당시 이스터 섬 상황을 따뜻한 환대 이유로 제시했다.

당시 이 섬은 종교적, 상업적 세력의 폭력적인 착취로 몸살을 앓고 있었는데, 이들은 라파누이 사람들을 노예로 삼아 농장을 운영하게 하고 온갖 치명적인 질병을 퍼뜨렸다.

피트는 타임스 기자에게 발굴 당일에 찍혔다고 하는 사진 한 장을 보여주었다.

이 사진은 출처가 불분명한 귀중한 역사 앨범에 속해 있었는데, 스코틀랜드 경매장에서 페르시아 수집가에게 팔린 몇 장 사진 외에는 알려진 바가 없었다.

그는 이 모든 과정이 "매우 비밀스러웠다"고 덧붙였다.

결국 그 앨범 사본이 페루 국립 도서관에서 발견되었다.

타임스지에 재인쇄된 사진에는 리처드 애쉬모어 파월 제독 선원들이 이스터 섬 석상 주변에 모여 포즈를 취하고 있으며, 피츠는 석상 발굴에 사용된 도구와 밧줄이 함께 있다고 지적했다.

목격자 증언에 따르면 발굴에는 40명이 참여했는데, 사진 속 인원도 같은 수다.

피츠는 "이 사진이 배가 영국으로 돌아오는 길에 정박한 포츠머스에서 찍혔다는 이야기가 있었지만, 나는 그 주장이 사실일 가능성이 낮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사진 속 석상은 여전히 붉은색과 흰색으로 칠한 상태인데, 이는 섬 주민들이 칠한 것으로, 이후 사진에서 볼 수 있듯이 항해 중에 씻겨 나갔다고 그는 덧붙였다.

영국박물관은 1963년 제정된 영국박물관법을 근거로 호아 하카나나이아 석상 반환 요청을 거듭 거부했다.

이 법은 정부 승인 없이는 소장품을 반출할 수 없도록 규정한다.

피트는 "고고학자로서 나는 그 조각상이 나온 장소를 발굴하는 것이 매우 생산적이고 유익한 일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하며, "이것이야말로 브리티시 뮤지엄과 섬 주민들이 함께 협력할 수 있는 프로젝트"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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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혹 저런 주장이 사실이라 해도 저 반출이 정당했음을 보증하지 않는다. 

당시 이스터 섬 라파누이 사회에 문화재라는 관념이 제대로 정착한 상태라 볼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근간에서는 약탈이라는 사실이 변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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