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막부정권6 되치기 당한 무신, 장교로 임명되는 문관들 한국사를 보면 문반과 무반 그 양극화는 아무래도 신라에 의한 일통삼한을 분기점으로 삼아야 할 성 싶다. 신라를 보건대 그 이전에는 말 그대로 출입장상出入將相이라, 문무반 구분이 엄격치 아니해서 장군이 곧 재상이었고 재상이 곧 장군이었다. 이런 시대가 일통삼한이 되면서 급속도로 문관 일변도로 변해간다. 왜? 전쟁이 없는 평화의 시대가 너무 오래 지속된 까닭이다. 그러다가 신라말이 되면서 이제 300년을 움츠린 막부시대가 개막한다. 진성여왕 시대는 그 고비였으니, 도적이 벌떼처럼 일어났다는 삼국사기 말은 곧 막부시대가 개막했고, 다시 군인들의 시대가 왔다는 위대한 선언이었다. 왕건 자신도 막부정권 지도자였고, 실제로 그 수하 장수들한테 엎혀서 느닷없이 쿠데타로 집권하고는 새로운 왕조를 개창했다. 하지만 마상.. 2024. 2. 19. [제3차 고려 막부정권] (4) 쿠데타 이틀 만에 막부를 만든 김훈과 최질 상장군 김훈金訓과 최질崔質이 주도한 쿠데타 군은 개떼처럼 궁궐로 들이닥쳐 덕석 말이를 해서 흠씬 두들겨 팬 황보유의黃甫兪義와 장연우張延祐를 현종 앞에 던지며 이 놈들을 내쫓으라 요구한다. 앞선 왕 목종이 어떻게 최후를 맞았는지를 생생히 기억하는 현종으로서는 아이고 나도 형님따라 가는구나 하고 자포자기했겠지만, 그네들 요구사항을 들어보니 순진하기 짝이 없어 가슴을 쓸어내렸다. 저들이 왕을 바꿀 생각은 추호도 없음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그가 당장 해야 할 일은 무엇보다 이 위기를 벗어나야 했다. 그들을 요구를 거부하면? 그 자리서 쫓겨나거나 목이 달아나기 때문이었다. 이 대목 고려사절요 기술은 다음과 같다. 왕은 여러 사람(쿠데타 주역들) 뜻을 거스르기가 조심스러웠으므로 일단 그들의 청을 따라 마침내 〈장연.. 2024. 2. 8. [제3차 고려 막부정권] (3) 강조의 실패를 새긴 쿠데타 주역들 이 3차 막부정권 수립 전야 군사 쿠데타 수뇌진이 누군지는 같은 고려사절요 해당 사건 기술에 명확히 드러나는데 상장군 김훈과 최질, 그리고 박성朴成·이협李恊·이상李翔·이섬李暹·석방현石邦賢·최가정崔可貞·공문恭文·임맹林猛이 그들이라 저에 의하면 이들은 땅(영업전)을 빼앗은 일을 가지고 여러 사람의 분노를 격화시켰으며, 여러 위衛의 군사들을 꾀어내어 북을 치면서 소란스럽게 궁궐[禁中]로 난입하고서는 장연우張延祐와 황보유의皇甫兪義를 포박하고 매질하여 거의 다 죽게 만들었다. 그렇다면 왜 하필 장연우와 황보유의가 표적이었을까? 이어지는 기술. (이들이) 합문閤門 안으로 들어가 면전에서 호소하기를, “황보유의 등이 우리의 토지를 점탈한 한 것은 실로 자신의 이익을 도모하고자 한 것이지 조정[公家]의 이익을 위한 것.. 2024. 2. 8. [제3차 고려 막부정권] (2) 영업전이 당긴 반란의 씨앗 고려사를 통괄할 때 건국기를 막부정권 1기라 명명한다면, 강조가 목종을 시해하고 권력을 잡은 시기를 2차 막부정권이라 해야 한다. 그리고 대략 백년 시간이 흘러 정중부에 의한 우리가 아는 그 막부정권이 본격 개막한다. 종래 막부정권이라 하면 정중부 이래 최씨 집권기에 전성을 이루는 시기만을 특정하는 경향이 강하지만, 생각보다 더 다채롭고 생각보다 더 복잡했으며 생각보다 더 많았다. 당장 강조 정권이 막을 올린 고려 현종시대만 해도 강조 말고도 또 한 차례 막부정권이 있었으니, 이 자리에서는 그 이야기를 정리해 보려 한다. 이를 그 주모자 이름을 따서 김훈·최질 막부정권이라 해야 할 성 싶은데, 때는 현종 5년(1014) 11월. 작금 방영 중인 대하드라마 고려거란전쟁이 막 이 시기로 돌입하는 듯하거니와,.. 2024. 2. 7. 고려는 태생 자체가 막부 정권이다 동시대 중국은 당唐 제국이 결딴난 상황이라, 절도사 시대가 개막하면서 막부정권 문을 다시금 열었다. 다시금이라 하는 이유는 인류 역사는 언제나 군사력을 바탕으로 삼아 새로운 시대를 연 까닭이며, 이에서 후삼국시대 개막과 그에 따른 고려왕조로의 통일 역시 이에서 단 한 치 어긋남이 없는 까닭이다. 절도사에 비견하는 중앙 정부 파견 관리가 없던 신라의 경우, 도독이니 뭐니 해서 무던히도 봉건제후화하는 지방 거점 권력을 억누르고자 했고, 그것이 장기간 성공한 것처럼 보였지만, 겉만 그리보였을 뿐, 속으로는 발호하는 권벌들을 막을 수가 없었다. 도독들이 사라진 자리에 숨을 죽이고 있던 지방권력들이 틈바구니를 헤집고 나서기 시작했으니, 깡패 두목들까지 설치는 막부시대가 화려한 팡파르를 울리며 개막했다. 고려는 태.. 2024. 2. 7. 일본 정이대장군征夷大將軍의 유래 일본 막부 최고 실권자를 지칭하는 정이대장군征夷大將軍은 사실 무가武家정권에 고유한 것은 아니었고 그 기원은 헤이안 시대에 있다. 처음 "정이대장군"을 칭할 때 "이夷"란 일본 동북지역에 거주하던 에미시(蝦夷 에조)를 말한다. 위 지도에서 보듯이 우리 통일신라쯤에 일본은 지금의 동북지역을 차지하고 있던 에미시를 북쪽으로 밀어내는 "북방개척"을 하는데, 이 사업에서 현지의 에미시와 계속 군사적으로 충돌했다. 이때 나온 것이 "정이대장군". 이 때문에 정이대장군은 원래 무가武家와 무관한 공가公家의 사람들이 임명되는 일이 상례였다. 정이대장군 자리를 무가의 인물이 처음으로 꿰찬 이가 바로 미나모토노 요리토모[源 賴朝, 1147~1199]였다. 가마쿠라 시대에도 정이대장군은 무가가 독점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고, .. 2022. 10. 18. 이전 1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