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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지유신13

[막말인물전-11] 사이고 다카모리를 격파한 성바깥 사무라이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유신삼걸의 하나라던 사이고 다카모리西郷隆盛는정한론征韓論 파동 와중에 메이지 정부와 결별하고 고향으로 내려와 반란을 꾀하는데 이때 그를 따라 함꼐 반란으로 들고 일어난 이가  사쓰마번薩摩藩의 옛 사족들, 사쓰마번 성밑거리에 모여살던 사무라이들이었다. 앞서 사이고 다카모리 집안이 이 성밑거리에 모여살던 사무라이 중 거의 최하층이었음은 이미 말했거니와, 사쓰마번의 "사무라이"에는 이 성밑거리에 모여산 사무라이가 전부가 아니고, 성바깥의 시골 농촌마을에 살던 "향사鄕士"도 상당히 있었다. 이들은 사이고 다카모리 반란에 합류하지 않고, 메이지 정부군에 합류했다고 한다. 그리고 사쓰마 번 "향사"들이 사이고 다카모리의 정규무사와 맞서 싸우는데, 이들의 공격도 사이고의 패망에 크게 기여했다 한다.. 2024. 7. 22.
[막말인물전-9] 메이지유신의 혁명성 메이지유신 하면 우리나라에서는 일본제국주의의 시작으로 보거나 그게 아니면 사무라이들이 덴노를 옹립하여 이룩한 국수주의 혁명 정도로 보는 것 같지만 물론 미국혁명이나 프랑스혁명 등에 비하면 메이지유신은 그 안에 후진성은 분명히 있지만 확실한 근대적 혁명이라 할 수 있다. 이 메이지유신과 비교해야 하는 것은 한국의 동학운동인데 이 동학운동 안에 들어가 활동한 많은 사람의 사회경제적 기반이 메이지유신의 주체가 되었던 사람들과 겹친다고 보기 때문이다. 메이지유신 혁명기에는 주목할 만한 사건이 두 개가 있었는데, 하나는 이른바 기병대다. 사사건건 덴노를 옹립하여 막부와 맞서던 조슈長州를 응징하기 위해 막부는 결국 조슈를 쳐들어갔는데 이때 정예 무사로 이루어진 막부군을 격파한 것이 바로 농민과 하급무사로 이루어진 .. 2024. 7. 22.
개나 소나 떠들던 근왕양이勤王攘夷 메이지유신 전야에 근왕양이勤王攘夷[존왕양이尊王攘夷라고도 한다]는 하나의 유행이었다. 시바료타료司馬遼太郎[1923~1996] 소설을 보면 근왕양이의 열풍에 들뜬 젊은이들이 너도 나도 탈번脫藩하여 쿄토로 상경하는 모습을 자못 감동스런 필체로 묘사하는데 이와는 다른 장면을 전하는 책도 있다. 근왕양이는 그냥 구실이고 사실 실상은 막말幕末이 되면 하층 사무라이들은 녹봉으로 도저히 연명할 수 없는 상황이 되어 먹고 살 수가 없어 탈번하는 자가 수두룩했다는 말이다. 이렇게 탈번한 이들은 우리나라 70년대 무작정 상경하듯이 쿄토로 향하고 이들이 모여 근왕양이를 부르짖으며 나대기 시작하니 치안이 불안해져 동원된 무력조직이 바로 신센구미新選組다. 웃기는 건 이렇게 동원된 신센구미도 탈번 낭인 浪人부랑자 조직이었다는 점이.. 2024. 7. 20.
메이지유신은 누가 감행했는가 메이지유신에 대한 각종 사설 영화를 보다 보면 무슨 일본의 사무라이가 들고 일어나 메이지유신을 성공시킨 것처럼 해놓은 이야기가 많은데 사실을 이야기 하자면 막번체제를 지탱한 시스템 구성원이었던 제대로 된 사무라이들은 메이지유신 때 쳐맞고 쫒겨다니기 바빴다. 메이지유신 주체는 입에 풀칠하기도 빠듯했던 하급무사와 먹고 살만해서 칼 두 개 차고 사무라이 흉내내던 부농 자제들로 이들이 막번체제를 타도하고 신일본을 세웠다. 이 메이지유신 주체는 한국으로 보자면 중인과 잔반계급이다. 동학혁명에 많은 중인, 잔반계급이 참여했는데 이들이 만약 일본에서 태어났다면 메이지유신에 참여했을 것이다. 막번체제하에서 양성된 제대로 된 사무라이 태반은 메이지유신 하에서는 제대로 역할을 하지 못했다. 조선왕조가 오백년을 심혈을 기울.. 2024. 7. 20.
어느 '유신지사'의 죽음 (1) 살아도 같이, 죽어도 같이 일반적으로 일본에서 '유신지사'라고 하면 메이지 유신기에 반막부 운동을 하던 사람들을 가리킨다. 출신성분이야 정말 다양했는데 유신지사의 상당수가 당시 무사계급 중 하류에서 다수 나왔다는 이야기는 이미 한 바 있다. 대개 우리나라로 친다면 조선시대 중인과 잔반 계급쯤 되는 사람들이다. 일본의 에도시대라는 것이 중앙의 막부, 지방의 번이 빈틈없이 조직되어 사무라이들은 어느 한 조직에 속하여 자신의 직역을 받고 대대로 봉록을 타먹도록 되어 있었다. 이런 '대대로 취직한 직업'으로서의 번사 (번의 사무라이)의 위치를 박차고 나와 막부를 타도하겠다고 나선 사람들을 소위 '탈번낭인'이라고 부르는데, 메이지 직전 시기에 한해서 본다면 바로 이 '탈번낭인'은 '유신지사'와 동의어였다. 이 탈번낭인은 하급무사들이 주류이.. 2023. 9. 12.
막말 어느 번藩의 갈등(3) : 도사번土佐藩 사무라이 최후의 승자 조선 후기가 되면 부농이 양반으로 신분이 상승하고 양반 중 잔반이나 농민으로 내려 앉는 사람이 나오는 등 신분제의 동요가 심했다고 한다. 이러한 현상은 일본도 예외가 아니었다. 상급무사쯤 되면 무사계급에서 탈락하는 경우는 별로 없었지만, 하급무사는 상황이 달랐다. 예를 들어 상인이나 부농 중 사무라이로 신분이 상승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전술한 도사번의 경우 하급무사 중 향사鄕士 계급인 사카모토 료마 [坂本龍馬, 1836~1867]는 원래 집안이 상인이었다. 돈을 많이 벌어 부유했는데 이 집안 일부가 사무라이 하급 무사 계급으로 신분을 고친 경우이다. 반면 위 표를 보면 지하낭인地下浪人에 이와사키 야타로라는 인물이 있다. 이 인물의 집안이 재미있다. 원래는 도사번 향사로 하급무사 신분이었다는데 집안이 몰락.. 2023. 8.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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