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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지유신9

아키야마 요시후루 秋山好古 (1859~1930): (2) 전술한 아키야마 요시후루의 프로필에서 우리가 알수 있는 것은 다음과 같다. (1) 아키야마는 육사 졸업때 까지 정규교육은 거의 날림으로 다녔다. 국가가 육사 졸업때까지 이런 날림교육에도 졸업장을 줄 수 있도록 방조한 것이나 다름없다. 이 당시엔 다 이랬다. (2) 아키야마는 자기 돈 땡전 한푼 안내고 유학까지 마쳤다. 그는 국가의 엘리트였기 때문이다. 그는 이런 국가의 도움에 러일전쟁의 기병전 승리로 갚았다. (3) 아키야마는 메이지 유신 당시, 신정부군에 맞서 막부편에 섰던 번의 최하급 무사였다. 그런데도 메이지 유신 기간 내내 승승장구하여 육군의 최고직위인 대장까지 올랐다. 군부는 사쓰마 죠슈 출신이 독점하고 있었다고 하는데 그런데도 불구하고 "일본인이라면" 능력만 있다면 승진에 있어 유리천장은 거의.. 2023. 5. 6.
메이지유신과 놀고대학생 한국의 60-80년대에 해당하는 놀고대학생 대량생산의 시대가 바로 일본의 메이지시대다. 이 시대를 유심히 바라보면 한국의 60-80년대를 굉장히 닮아 있다는 점을 알게 된다. 첫째로, 가진 것이 쥐뿔도 없는 시대였다는 점이다. 일본은 흔히 "제국주의국가"라고 부르지만 20세기 초반, 러시아를 격파할 때까지도 "가진 것도 쥐뿔도 없는 나라"라는 점에서 전형적인 아시아 국가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이 점에 대해서는 앞으로 필자가 자세히 다룰 시기가 있을 것이라 본다. 둘째는 이 시기는 가진 것이 쥐뿔도 없는 못 사는 집안 수재들이 머리 하나 믿고 계속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또 국가가 이에 맞춰 어설픈 상급학교를 연쇄적으로 계속 만들어 가던 시대라는 점이다. 이 시기에 고급교육을 전담하는 교육기관들이 .. 2023. 4. 9.
지금 보는 일본의 이미지는 메이지 이후 창조됐다 일본문화의 많은 특징은 그 씨앗이 개항 이전 에도시대에도 있기는 했지만 많은 부분이 메이지 이후 새로이 창조되고 정리되고 윤색된 것이다. 조선과 비교하여 에도시대 일본이 상업적으로 융성하고 지적인 면에서 대 역전극을 이뤄낸 것은 분명하지만, 그 차이는 크지 않았다. 이 차이를 어마어마한 것으로 만든 것은 메이지 이후, 조선이 식민지화하면서부터이다. 이 시기에 일본은 전통적인 아시아와는 다른, "유럽사와 매우 비슷한 역사를 경과한" 것으로 포장되었는데, 이 포장지를 우리 인문학자들이 벗겨야 할 때이다. 이런 작업을 할 만한 실력이 안된다면 극일이라는 둥 반일이라는 둥 이야기도 꺼내지 말라. P.S.) 일본이 이랬다던가 저랬다던가 이야기 하는 사람들은 많은데, 딱 잡아서 그 사실이 맞다는것은 어떻게 아는가?.. 2023. 2.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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