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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21

사진으로 보는 경주 쪽샘지구 44호분 발굴 비단벌레 말다래 세부 비단벌레 말다래 하부 죽제 편조물 운모 은제 허리띠 가슴걸이 관드리개 금귀걸이 금은 팔찌 반지 금동관 금동신발 비단벌레 장식 말다래 재현품 금동관 주변 출토 머리카락 뭉치 주인공 착장품 일괄 2023. 7. 4.
비단벌레 말다래에서 머리다발까지, 경주 쪽샘 44호분이 토해낸 것들 경주 쪽샘 44호분은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에서 워낙에나 장기간 공을 들여 찔끔찔끔 발굴한 까닭에 그 성과들이야 중간중간 전했거니와, 2014년 이래 꼭 10년, 실 발굴일수 1천350일인가가 걸린 조사가 마침내 대단원을 고하는지라 물론 이후 분석 결과를 토대로 하는 보고는 간헐로 더 있겠지만, 암튼 그 종결식을 겸하여 문화재청이 직접 나섰으니, 왜? 장사 되잖아? 4일 현장 조사 성과를 집대성하는 자리를 마련하고는 기자님들 잔뜩 현지로 불려내렸다. 이 무덤은 그 양식으로 보면 이른바 돌무지덧널무덤(이 용어 싸구려지만 편의상 쓴다) 혹은 적석목곽분이라 해서 고신라에 속한다. 암튼 이번 조사성과를 연구소는 세 가지로 정리했으니 ▲ 비단벌레 꽃잎장식 직물 말다래 출현 ▲ 무덤 주인공 머리 꾸밈새 확인 ▲ 금동제.. 2023. 7. 4.
신라는 왜 1만 군사를 내주었는가를 다시 묻는다 앞서 나는 순망치한이라는 논리로 475년 신라가 쓰러져가는 백제를 구원하고자 1만 명에 달하는 대군을 백제로 파견했다고 했다. 그걸로 모든 의문이 명쾌히 해명되는가? 앞서 말했듯이 저 파견이 신라로서는 실상 고구려와의 전면전 선언이었다. 고구려가 7일 낮 7일 밤만에 백제 왕도 한성을 함락하고 개로왕을 참수한 다음 그대로 한성에 주둔한 상태였다면 한성에서는 2차 대전이 벌어질 것임은 한밤중 불을 보듯 뻔했다. 그걸 모를 리 없는 신라 조정과 자비마립간은 왜 고구려와의 전면전을 불사했는가? 첫째 신라 내부의 자신감이었다. 우린 어느 누구와 붙어도 그네들을 깨뜨린다는 자신감이 있었고 그것이 아니라 해도 이참에 고구려를 확실히 꺾어놔야 한다는 매파가 득세했다. 나는 그 진원지로 벌지와 덕지를 주목해야 한다고 .. 2023. 5. 5.
누암리 고분군, 신라가 만든 새로운 중원경의 공동묘지 이 양상을 보면 충주 누암리 고분군은 그 분포양상과 사적 지정 구역이 따로 논다는 사실을 단박에 안다. 아마도 현실적인 이유가 컸으리라 짐작하거니와, 무덤이 분포하는 양상을 보면 그 밀집도가 가장 높은 코어 구역을 중심으로 사적이 지정됐음을 안다. 그렇다면 누암리 고분군이 위치하는 데를 위성에서 조망하면 어떤가? 이 작업은 왜 이 무덤이 이곳에 있는지를 받침할 수도 있다는 점에서 우리는 참말로 편안한 시대를 산다. 카카오맵당신을 좋은 곳으로 안내 할 지도map.kakao.com 저 공동묘지가 만들어질 6세기 중후반 무렵과 지금은 여러 지형이 바뀌었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다만, 남한강 물줄기가 중국 황하의 그것만큼 크게 변하지 않았을 것임은 불문해도 가지하니, 무엇보다 저 일대에 포진하는 산들 .. 2022. 7. 31.
한여름의 단양신라적성비 2022.7.2.(토) 더웠다. 더워도 너무 더웠다. 그 잠깐 걷는 거였지만, 땀이 줄줄 났다. 사실 주차장이 있다. 길이 좁아져 미리 겁먹고 조금 멀리 주차하고 걸어왔다. 그리고 단양팔경휴게소에서 단양적성비로 통하는 길이 있어 쉽게 올 수도 있다. 가실 분들은 참고 하시길. 구름이 요상스러운 날이었다. 도깨비라도 나올 것 같은 날이었다. 생각보다 크기가 작았다. 비석의 아랫 부분은 그래도 상태가 좋은 편인데, 상단 부분은 깨져 없어졌다. 단양신라적성비는 장수왕 이후로 백여년간 고구려 영토였던 충북 단양 지역을 신라 진흥왕대 550년경에 공격해 차지한 뒤 현지 주민들을 신라의 백성으로 포섭하기 위해 만든 비석이다. 비문의 내용은 문화재청 설명으로 대신하겠다. 원래는 단양 적성 까지 둘러볼 계획이었으니, .. 2022. 7. 3.
2022년 용인시박물관 기획전<할미산성, 신라의 비상> 용인 할미산성은 잘 알려지지 않은 작은 산성이지만, 나에겐 매우 의미있는 유적이다. 이름도 생소하고, 규모도 작고, 게다가 이전까지 시굴조사 외에 조사와 연구가 별로 되지 않아서, 많은 것이 묻혀있던 이 할미산성 발굴조사가 내가 처음 맡은 발굴조사였다. 2011년부터 발굴조사를 시작해서 2020년까지 7차례의 발굴조사를 추진했고, 두 번의 학술대회를 거쳐 2019년에 사적 지정 신청까지 끌고 왔다. (아쉽게도 지난 해 사적 지정 심의에서 한 차례 미끄러졌으나, 올해 보완해서 재도전할 생각이다.) 2021.05.25 - [우당당탕 서현이의 문화유산 답사기] - 용인 할미산성 용인 할미산성 2010년, 첫 발령 후 책상에 앉자마자, 토지매입해야한다고 해서 시작했다. 사업인정고시가 뭔지도 몰랐고, 수용재결까지.. 2022. 4.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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