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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15

실크로드 관문 당성, 길이 열리는 화성시 내 본적지까지 궁금해할 사람은 별로 없겠지만, (전에 염전이야기를 쓰면서 얘기한 적이 있긴한데,) 경기도 화성시 서신면 상안리, 당성 아래에 있는 동네가 아버지 고향이자 내 본적지다. 상안리는 경주이씨 집성촌으로, 당성 쌓으러 경주에서 온 신라사람들 후손이 아닐까 하는, 말도 안되는 생각을 해 본 적도 있다. 어른이 되서는 거의 갈일이 없지만, 어릴때 할머니댁에 놀러왔던 기억이 있어서 그런지 왠지 모르게 마음 한구석에 아련함 같은 것이 남아 있다. 오늘 화성시청에서 회의를 마치고나니 갑자기 당성에 오르고 싶어서 찾아갔다. 화성시가 2008년 무렵 설정한 도시 슬로건이 '길이 열리는 화성시(The Way to Better Living)'라고 하는데, 길에는 여러가지 의미가 있겠으나, 혹시 당성과 실크로드의.. 2021. 4. 6.
큰 가락 마을 : 대가리(大加里) 큰 가락 마을 : 대가리(大加里) 충청북도 단양군은 산지가 많고 척박한 곳이다. 인구 3만명 정도의 작은 소도시이지만, 삼국시대 각축장이었을만큼 교통.군사 요충지였다. 단양 적성비로 알려진 진흥왕 순수비를 보면 신라가 소백산을 넘어 북방으로 진출하기 위해 애썼던 당시의 상황을 잘 알 수 있다. 적성면의 끄트머리 동네에 외갓집이 아직 남아 있어 식구들끼리 오기도 하고, 소백산 등산도 종종 다녀서 1년에 몇 차례 오곤 한다. 외갓집이 있는 마을은 하원곡리인데 중간에 지나가는 마을 이름이 “대가리”다. 어릴 때는 이름을 듣고 엄청 웃었는데, 오늘 지나가는 길에 자세히 보았다. “대가리(大加里)”는 지형이 큰 가락처럼 생겼으므로 한 가래기 또는 대가동이라 하였다고 한다. 마을 유래비에는 원래 가차촌(駕次村)이었.. 2020. 6. 27.
[학술대회 소식] 경주 월성과 신라왕경의 고지형 심포지엄 2019. 9. 16.
성덕왕 거북 대가리 되어 Tomb of King Seongdeok of Silla, Gyeongju / 慶州新羅聖德王陵 경주 신라 성덕왕릉이다. 작년 오늘 오세윤 작가가 드론 촬영을 했으니 굳이 싫다는 나를 모델로 박아 찍혀줬다. 그 귀부는 머리가 날아갔으니 내가 거북 머리가 되어줬다. 이 성덕왕릉 역시 경관이 빼어난 곳이다. 이런 곳 지천인 경주야말로 국보 중의 국보 아니겠는가? 수학여행 한 번 다녀오고 출장길에 한 번 들리고 돌잔치 문상 가서는 경주 보고 왔노라 할 수는 없는 법이다. 2019. 6. 9.
敎를 왕 혼자 해야 그 사회가 왕권 국가라고???? **** June 3, 2016 at 9:34 AM '《敎의 주체와 왕권의 문제》'라는 제목으로 올린 글을 주된 기반으로 삼아 그것을 보강한다. 敎(교)란 무엇인가? 가르친다는 뜻이요, 이에서 비롯되어 위에서 아래로 내리는 행정명령, 법원 결정문 따위를 敎라고 했다. 이 경우 敎는 가르친다 라기 보다는 명령한다에 가깝다. 그래서 敎가 지닌 여러 가지 의미 중에는 사역과 강제를 의미하는 使, 혹은 令, 혹은 命의 뜻이 내포하는 일이 많다. 이것이 정치 행정무대로 전용해서는 왕이 내리는 명령 전반을 敎라고 지칭하기도 한다. 북한산 비봉碑峰 신라 진흥왕순수비...이 비문에서도 순수巡狩하는 주체로 진흥왕만이 아니라 신하들을 같이 들었다. 순수를 왕만이 아니라 신하들도 같이 한 것으로 표현했다 해서, 진흥왕 시대.. 2019. 6. 3.
Great Tumuli of Silla Kingdom, Gyeongju 이는 황홀이다. 죽음이 선사한 독약이다. 짝째기일지언정.... 경주 대릉원 慶州大陵苑 2019. 4. 8.
A Cozy Gyeongju Gyeongju and Silla in Spring 경주 대릉원의 봄 photo by Seyun Oh 2019. 2. 14.
Spring over Silla and Tomb Spring has finally come over a twin-mounded tomb from the Silla kingdom period at Daereungwon, or the Great Tumuli Park , Gyeongju. 2018. 3. 29.
[추적, 한국사 그 순간 -12-] 왕위 계승전쟁과 협치 정신 원성왕, 경쟁자가 폭우에 발 묶인 틈타 대권 차지하다[중앙선데이] 입력 2017.05.07 02:44 | 530호 23면 대권(大權)은 우연의 소산일까 아니면 운명의 장난일까? 혹은 하늘의 의지일까? 이런 물음에 전근대 동아시아 이데올로그들은 언제나 천명(天命)을 거론했다. 실제로 천명이 작동했는지 아닌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겉으론 그러했다. 하지만 추잡한 권력투쟁을 천명이란 이름을 빌려 포장한 데 지나지 않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선덕왕 후계 언급 없이 타계하자김경신·김주원 치열한 왕권 경쟁김주원, 큰 비 내려 건너 오지 못해하늘의 뜻이라며 김경신 왕위 계승김주원을 명주군의 왕에 책봉 신라는 일통삼한(一統三韓) 전쟁과 그에 따른 세계 제국 당(唐)과의 일전에서 승리한 여세를 몰아 절대 번영을 구가했.. 2018. 1. 20.
[추적, 한국사 그 순간 -10-] 김춘추 부인 문희 오빠 김유신 빼다박은 야망가, 남편 죽자 태후 돼 권력 농단[중앙선데이] 입력 2017.03.05 02:03 | 521호 23면 페르시아 제국을 반석 위에 올려놓은 군주로 키루스(Cyrus) 2세, 또는 키루스 대제라 일컫는 인물이 있다. 기원전 576년경 제위에 올라 기원전 530년에 사망했다. 페르시아 아케메네스(Achaemenes) 왕조를 개창한 그는 성서에는 고레스 왕으로 등장한다. 그의 치세에 페르시아는 메디아와 신바빌로니아, 리디아를 무너뜨리고 중동의 패자가 된다.영웅에게는 어울리는 탄생담이 있게 마련이다. 고대 그리스 역사가 헤로도토스의 『역사』는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언니의 오줌 꿈 사 춘추와 결혼큰아들 법민은 통일 후 당 축출나머지 아들 8명은 각간 등 지내수단 방법 안 가리고 목표 .. 2018. 1. 20.
[추적, 한국사 그 순간 -2-] 김유신의 김춘추 겁박 춘추가 임신한 문희와 혼인 미적거리자 “태워죽여라”[중앙선데이] 입력 2016.07.24 00:44 | 489호 23면 김유신은 월경(月經)이라는 난관을 눈부신 ‘대타 작전’으로 돌파했다. 애초엔 큰 누이동생 보희(寶姬)를 김춘추와 짝지어줄 요량이었지만 ‘거사(巨事)’를 준비한 그날 보희가 월경 중임을 알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작은누이 문희(文姬)를 찢긴 옷고름을 걸치고 바느질을 기다리는 김춘추가 있는 방으로 밀어 넣었다. 방에 들어설 때 문희 모습을 『삼국사기』는 “담백한 화장과 산뜻한 옷차림과 빛나는 요염함이 사람의 눈을 부시게 했다(淡粧輕服光艶炤人)”고 묘사했다. 그 아름다움에 넋이 나간 22세 청년 김춘추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이에 김춘추가 “혼인하자고 해서 혼례식을 치르고 이내 임신해 아들을.. 2018. 1. 20.
[추적, 한국사 그 순간 -1-] 김춘추와 문희의 혼인 김유신, 춘추 방에 언니 대신 동생 들여보낸 까닭[중앙선데이] 입력 2016.06.26 00:40 | 485호 23면 단재 신채호(1880~1936)는 이민족인 당나라를 끌어들여 같은 혈통인 백제와 고구려를 멸하고는 불완전한 민족 통일을 달성했다는 이유로 김춘추와 김유신(595~673)을 싸잡아 비난했다. “김유신은 지용(智勇·지혜와 용기) 있는 명장이 아니요, 음험취한(陰險鷲悍)한 정치가며, 그 평생의 대공(大功)이 전장에 있지 않고 음모로 인국(隣國)을 난(亂)한 자”라고 했다. 음험취한은 요컨대 음흉하기 짝이 없다는 말이다. 그러면서 단재는 그 보기로 그가 김춘추와 처남 매부가 된 사연인 소위 ‘축국(蹴鞠) 사건’을 들었다. 혹독하기 그지없는 이런 평가는 그 이전까지 천 수백 년가량 지속된 만고의 .. 2018. 1. 20.
김유인의 70세 치사(정년퇴직)와 생일 삼국사기 신라 문무왕본기에 의하면 그 재위 4년(664) "봄 정월에 김유신이 나이가 많음을 이유로 벼슬에서 물러날 것을 청하였으나 허락하지 않고 안석과 지팡이를 내려주었다" 고 하거니와, 이때 김유신은 70세가 되는 해였다. 《예기禮記》 왕제王制편에 이르기를 70세가 되면 치정致政한다 했거니와, 이는 정확히 그 예법이 문무왕 당시에 통용함을 보여준다. 치정이란 글자 그대로는 정사政事를 놓는다는 뜻이니 흔히 치사致仕라 한다. 다시 말해 이 시대 신라는 예기가 대표하는 예법이 그대로 법률 혹은 관습으로 강제되고 있음을 본다. 한데 이에서 주목할 점이 있거니와 하필 김유신이 치정을 요청한 때가 그해 시작 시점인 정월인가 하는 대목이다. 고래로 70 치정에 관련해서는 70세가 되는 시점을 어디로 잡을 것이냐가.. 2018. 1. 20.
[김태식의 독사일기(讀史日記)] 8편 잘라버린 남편 ‘귀두’를 음부에 제사지낸 아내 注) 이는 문화유산신문 기고문으로 기사입력시간은 2016년04월11일 13시55분이다. 1. 서악동의 신라 시대 귀부 태종무열왕 김춘추의 무덤을 비롯한 중고시대 신라 왕릉 밀집지역인 서악고분군에는 도로를 사이에 두고 그 전면에 봉분 두 기가 붙었으니, 하나는 김춘추 9세손으로 신라 하대 인물인 김양(金陽)이 857년 향년 50세로 졸하고는 묻힌 곳이라고 하며, 다른 하나는 김춘추의 둘째아들 김인문(金仁問) 묘라고 전한다. 이 두 봉문 앞에는 몸돌과 머릿돌은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고 그것을 받쳤을 거북 모양 받침돌만 덩그러니 남았으니 이를 서악동 귀부(龜趺)라 한다. 보물 제70호인 이 귀부에 대한 현지 안내판은 김인문 묘비를 받치던 것이라 기술한다. 이 지역에 기반을 둔 역사학도 중에는 김양 묘와 함께 선.. 2018. 1. 20.
[김태식의 독사일기(讀史日記)] 3편 왕건, 죽어도 죽을 수 없던 神 注) 이는 문화유산신문 기고문이며 기사 입력시간은 2016년02월22일 14시15분이다. 고려를 창건한 신라인 왕건은 고려 왕조를 개창한 까닭에 그 이름만 들으면 우리는 대뜸 ‘고려인’으로 단정하기 십상이지만, 실은 뼛속까지 신라인이다. 그가 태어나기는 당 희종(僖宗) 건부(乾符) 4년이니 이해는 신라 헌강왕(憲康王) 3년(877)이다. 청장년기를 신라에서 배반한 궁예에서 복무하기는 했지만, 그가 자발적 헌납이라는 형식으로 신라를 접수한 때가 59살 때인 935년이며, 그로부터 8년 뒤인 943년 향년 67세로 눈을 감는다. 다시금 강조하지만 왕건은 신라인이다. 이런 그가 고려라는 새로운 왕조 혹은 국가를 만들 때 그 절대적 토대는 신라의 그것이었음은 말할 나위가 없다. 그가 죽어 묻힌 곳을 현릉(顯陵).. 2018. 1.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