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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21

김유인의 70세 치사致仕(정년퇴직)와 생일 삼국사기 신라 문무왕본기에 의하면 그 재위 4년(664) "봄 정월에 김유신이 나이가 많음을 이유로 벼슬에서 물러날 것을 청하였으나 허락하지 않고 안석과 지팡이를 내려주었다" 고 하거니와, 이때 김유신은 70세가 되는 해였다. 《예기禮記》 왕제王制편에 이르기를 70세가 되면 치정致政한다 했거니와, 이는 정확히 그 예법이 문무왕 당시에 통용함을 보여준다. 치정이란 글자 그대로는 정사政事를 놓는다는 뜻이니 흔히 치사致仕라 한다. 다시 말해 이 시대 신라는 예기가 대표하는 예법이 그대로 법률 혹은 관습으로 강제되고 있음을 본다. 한데 이에서 주목할 점이 있거니와 하필 김유신이 치정을 요청한 때가 그해 시작 시점인 정월인가 하는 대목이다. 고래로 70 치정에 관련해서는 70세가 되는 시점을 어디로 잡을 것이냐가.. 2018. 1. 20.
[김태식의 독사일기(讀史日記)] 8편 잘라버린 남편 ‘귀두’를 음부에 제사지낸 아내 注) 이는 문화유산신문 기고문으로 기사입력시간은 2016년04월11일 13시55분이다. 1. 서악동의 신라 시대 귀부 태종무열왕 김춘추의 무덤을 비롯한 중고시대 신라 왕릉 밀집지역인 서악고분군에는 도로를 사이에 두고 그 전면에 봉분 두 기가 붙었으니, 하나는 김춘추 9세손으로 신라 하대 인물인 김양(金陽)이 857년 향년 50세로 졸하고는 묻힌 곳이라고 하며, 다른 하나는 김춘추의 둘째아들 김인문(金仁問) 묘라고 전한다. 이 두 봉문 앞에는 몸돌과 머릿돌은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고 그것을 받쳤을 거북 모양 받침돌만 덩그러니 남았으니 이를 서악동 귀부(龜趺)라 한다. 보물 제70호인 이 귀부에 대한 현지 안내판은 김인문 묘비를 받치던 것이라 기술한다. 이 지역에 기반을 둔 역사학도 중에는 김양 묘와 함께 선.. 2018. 1. 20.
[김태식의 독사일기(讀史日記)] 3편 왕건, 죽어도 죽을 수 없던 神 注) 이는 문화유산신문 기고문이며 기사 입력시간은 2016년 02월 22일 14시15분이다. 고려를 창건한 신라인 왕건은 고려 왕조를 개창한 까닭에 그 이름만 들으면 우리는 대뜸 ‘고려인’으로 단정하기 십상이지만, 실은 뼛속까지 신라인이다. 그가 태어나기는 당 희종(僖宗) 건부(乾符) 4년이니 이해는 신라 헌강왕(憲康王) 3년(877)이다. 청장년기를 신라에서 배반한 궁예에서 복무하기는 했지만, 그가 자발적 헌납이라는 형식으로 신라를 접수한 때가 59살 때인 935년이며, 그로부터 8년 뒤인 943년 향년 67세로 눈을 감는다. 다시금 강조하지만 왕건은 신라인이다. 이런 그가 고려라는 새로운 왕조 혹은 국가를 만들 때 그 절대적 토대는 신라의 그것이었음은 말할 나위가 없다. 그가 죽어 묻힌 곳을 현릉(顯.. 2018. 1.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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