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探古의 일필휘지491 현해탄 퐁당 김우진이 가문 문집 제목 글씨 지금까지도 간혹 회자되곤 하는 '현해탄 동반자살'의 남자 주인공(사실과 다르다는 주장이 있지만)이자 한국 연극계의 개척자였던 수산 김우진(1897-1926). 그는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모두 상당한 벼슬을 했던 안동김씨 명문가 자제였다. 1923년, 일본에서 유학하고 있던 그와 그 아우 김철진이 일본 구마모토에서 할아버지 김병욱의 문집과, 더 윗대 조상의 일고逸稿를 간행했다. 그 속표지 제목을 김우진이 썼다. 글씨가 퍽 날카로우면서 단정한데, 김우진의 친필인지는 약간 고민이 필요할듯 싶다. 이 시기 이런 데 쓰는 글씨도 대필이 없지 않았다고 하니. *** related articles *** 윤심덕 애인 김우진의 아버지와 장성 윤심덕 애인 김우진의 아버지와 장성윤심덕의 애인 김우진은 아버지가 김성규金星圭... 2024. 1. 28. 민족의 반역자 이규보(?), 단재가 봤더라면 외국이 중국에 복종하지 않은지 오래됐음으로, 당唐 태종太宗이 장차 만국萬國을 복종시키고 문궤文軌를 통일하려고 하여 장군으로 하여금 군사를 거느리고 우리 고구려를 치게 하였는데, 불행히도 말을 우리나라에 머무른 채 돌아가지 못하였으므로 사당이 여기에 있게 된 것입니다. 또 외국이 복종하지 않는 것은 당연한 이치건만 문황제文皇帝는 오히려 분연히 노하여 군사들을 원정遠征에 내보내어 고달프게 하였고 끝내는 몸소 진두에 서서 경략經略하기까지 한 것은 장군도 아는 일이며, 하물며 동경東京은 우리나라의 배읍陪邑인데 감히 군사를 일으켜 국가를 배반함에리까. 입을 벌리고 주인을 향해 짖는 것은 개짐승도 하지 않는 법인데, 모르겠습니다만 장군의 생각에는 이것을 어떻게 보십니까. 삼가 바라건대, 고금에 하국下國을 정벌하는 .. 2024. 1. 26. 제주도에서 잡혀 해체당한 100년 전 고래 어떤 누리집에서 본 일제강점기 엽서 사진. 제주 서귀포 '사업장'에서 고래를 해체하는 모습이라는 설명이 붙었다. 뭐 제주도가 최근 들어 남방돌고래니 뭐니 해서 유명하지만, 이 사진은 그 전부터도 고래가 제주 바다를 적잖이 지나곤 했음을 보여준다. 저게 무슨 고래인지 모르겠는데, 배에 줄무늬가 있는 걸 보면 흰긴수염고래 뭐 그런 종류이려나? 이건 여담인데, 제주의 바다는 고을, 마을마다 경계가 나뉘어있었다. 여기는 우리 바다 저기는 너네 바다 이런 식이었는데, 재밌는건 서로 바다를 '덜' 가지려고 싸웠단다. 왜냐? 표류민이나 고래가 바닷가에 떠밀려오면 어느 쪽 구역이냐에 따라 그 책임이 그 마을에 떠넘겨졌기 때문이란다. 그래서 간혹 가다 죽은 고래가 떠밀려오면 저렇게 해체쇼를 벌이기는커녕 도로 밀어내버리는.. 2024. 1. 19. 기자릉 가짜라 했다가 쫑크 먹은 연경재 성해응 19세기의 문인 홍길주가 남긴 글 중에 이런 얘기가 있다(어디에서 읽었는지는 기억이 안 나는데, 아니었나 싶다). 고증학에 밝은 연경재 성해응이 어느 날 어떤 자리에서 "평양의 이른바 기자릉은 가짜일세."라고 말했다. 그러자 그 옆에 있던 이양천이란 이가 발끈하며 가로되, "우리나라에는 오직 기자 한 분만이 계시거늘, 그대는 이제 그마저 잃어버리게 하려 하는가? 대체 무슨 심산인가?" 성해응은 더 말을 잇지 못했다고 한다. 지금 저 기자릉은 없어진지 오래라고 한다. 북쪽에서 50년대 후반쯤 발굴(?)을 했더니 벽돌무더기만 나오더란다. 그래서 그 김에 없애버렸다고. 2024. 1. 18. 오랜만에 이규보 선생 한 손에 술잔 들고 한 손에 붓을 쥐고 코 끝에 향기 나듯 붓 끝에 시가 절로 2024. 1. 18. 백년전 제주읍성 무지개다리 제주읍성 안에 있었다는 무지개다리다. 아마도 지금 제주지방기상청 앞 산지천 위에 있었다는 북수구 홍교가 아닌가 싶은데. 오늘날의 산지천을 생각하니 격세지감이 든다. 백년 남짓 지났을 뿐인데 참 많은 것이 달라졌다. 2024. 1. 15. 이전 1 ··· 11 12 13 14 15 16 17 ··· 82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