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반응형

探古의 일필휘지494

예의의 시대를 부르짖은 어윤적, 하지만 행적은... 정도로 풀이할 수 있을까? 일제강점기 명인 서화가 여럿 실린 기념첩 속에서 만난 글씨다. 그런데 글씨가 가냘픈 건 둘째치고, 오종종하고 끝마무리가 서툴다는 느낌이 강하다. 균형도 안맞고. 뭔가 잔뜩 주눅이 들었다고나 해야 할까. 그래서 누가 썼나 보니 어윤적魚允迪(1868-1935)이란 인물이다. 이 사람이 누군지는 다음 소개로 갈음한다. 1868년 8월 25일 출생했다. 본관은 함종(咸從), 자는 치덕(穉德), 호는 혜재(惠齋)이다. 참봉 어창우(魚昌愚)의 아들이다. 대한제국기에 외부 번역관, 용천부윤, 국문연구소 위원 등을 지냈으며, 일제강점기에는 중추원 참의, 조선사편수회 위원 등을 역임하였다. 1935년 2월 3일 사망했다. 한학을 수학하다가 1894년 8월 탁지아문 주사로 관직생활을 시작했다. .. 2024. 3. 16.
금추錦秋 이남호李南浩(1908~2001)의 기명절지화器皿折枝畵 시인의 창가에 맑게 공양하나이다[詩窓淸供] 금추錦秋 이남호李南浩(1908~2001)의 기명절지도器皿折枝圖다. 그릇과 책, 청동거울, 괴석, 호리병 따위 옛 기물을 화면에 놓았는데, 되는 대로 던져둔 것 같으면서도 구도가 안정적이고 특히 청동거울의 무늬와 질감 묘사가 돋보인다. 한 번에 그은 획이 거의 없지만, 그렇게 느껴지지 않을 만큼 자못 호방함도 갖추었다. 금추는 국사 교과서에도 실리곤 했던 를 그린 작가다. 이당 김은호(1892~1979)에게 사사받았는데, 그와는 전혀 다른 필치를 구사했다. 중국 베이징대 중국화과를 졸업해서인지 거친 맛(소위 대륙적?)이 유달리 두드러지면서도 묘사력이 뛰어나다. 특히 '죽음헌주인竹音軒主人'으로 당호를 쓴 중년 작품이 좋다. 다양한 화목에 능했고 서예에도 일가견이 있.. 2024. 3. 13.
'스핑쓰'를 보며 심산 노수현을 생각하다 기자의 피라미드와 스핑크스를 만나면서,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엉뚱하게도 심산心汕 노수현(盧壽鉉, 1899-1978) 화백이었다. 심전心田 안중식(安中植, 1861-1919)의 수제자였던 그는 한국화 근대 6대가로 꼽힐 만큼 대단한 산수화 실력을 자랑했고 거기 덧붙여 뛰어난 사회풍자만화가였다. 그는 젊은 시절 생계수단으로 신문 연재소설 삽화를 그렸는데, 한국 최초의 신문연재 4컷만화 도 그의 솜씨다. 상당히 긴 기간 연재했고 그만큼 소재도 다양해서, 최근에는 이를 소재로 일제강점기 생활문화사를 연구하는 논저도 꽤 있는 것으로 안다(물론, 이 때문에 뒷날 에 오르게 되기도 하지만...). 각설하고, 순종황제가 승하하여 조선 전역이 비통해하던 1926년 4월 28일자 에 노수현의 만화가 실린다. 의 주인공들.. 2024. 3. 12.
정지상과 김부식의 것이라고 여겨지는 글씨 일제강점기에 편찬된 에 실린 남호南湖 정지상鄭知常(?~1135)과 뇌천雷川 김부식金富軾(1075~1151)의 글씨. 정지상의 것은 7언절구(거나 율시거나) 마지막 구절과 이름만 남았고, 김부식의 것은 그래도 두 구절은 남았다. 봄바람 부는 자줏빛 밭두렁에 가랑비 지나가더라 紫陌春風細雨過 지상 知常 버들이 어둑하니 뉘 집이 술집인고 柳暗誰家沽酒店 달 밝은 어드메에 낚싯배가 있는가 月明何處釣魚舟 김부식 金富軾 옛말에 서여기인書如其人이라는데, 둘 다 행초서라 비슷하긴 해도 은근히 느낌이 다르기는 하다. 필적학 연구하시는 분들은 아마 여기서 둘의 성격 차이를 엿볼 수도 있겠다. 목판이 아니라 진짜 글씨였다면 더 좋았을텐데. 2024. 3. 12.
전주 부잣집 아들 유당 김희순의 취미 그 이상, 서화 자고로 곳간에서 인심 난다고 했다. 예술의 세계에도 이 속담은 한치 어긋남 없이 들어맞는다. 부유한 이들은 예술가를 후원하며 그들의 작품을 즐겼다. 그리고 더 나아가 자기 스스로 예술의 길에 들어서기도 한다. 아래 난초 그림을 그린 유당酉堂 김희순金熙舜(1886-1968)도 그런 경우이다. 그는 전주 부잣집 아들이었다. 가학으로 한학을 익혔고 벽하碧下 조주승趙周昇(1854-1903)에게 서화를 배운 그는 시서화삼절이라고까지 할 만큼 그림 솜씨가 좋았다. 조선미술전람회에 여러 차례 사군자를 출품해 한 번은 4등을 하고 7차례나 입선하는 기록을 세운다. 해방 후에도 김희순은 서화 연찬을 게을리하지 않아, 국전 입선, 추천작가로 활동했다. 또 김희순은 지역 예술 발전에도 공이 컸다. 1935년 효산曉山 이광렬.. 2024. 3. 11.
술 취한 놈 깨우는 법 취해 드러누운 사람에게는 찬물을 들이부으면 깨어난다고 한다. 2024. 3. 6.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