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探古의 일필휘지442

국경의 밤, 일본군, 그리고 벼루(1) 1. 비교적 최근까지도, 관청이나 큰 회사에서 퇴임하는 이들에게 문방사우가 든 필묵함筆墨函을 기념품으로 주는 일이 더러 있었다. 그런 필묵함은 대개 나무에 옻칠 느낌 나는 진갈색 캐슈칠cashew paint을 발라 처리한다. 그 뚜껑을 열어보면 그 안에 붓이며 먹이며, 연적이며 문진文鎭에 인재印材가 그득 들어있기 마련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뚜껑 위에 구름 위를 노니는 용을 거하게 돋을새김하곤 하는, 돌로 만든 벼루다. 대량생산하려고 플라스틱으로 용과 구름을 만들고 까맣게 칠해 납작한 돌뚜껑에 붙였다는 말도 있던데, 그럴 거면 뭐하러 무겁게 벼루 뚜껑을 만들까. 어차피 벼루에 앉을 먼지는 필묵함 뚜껑이 가려줄 텐데. 2. 시대가 흘러 그런 고급 필묵함을 주는 곳은 이제 거의 없지 싶고, .. 2022. 10. 2.
고려시대 프로 갑질러 권100, 정세유鄭世裕 열전에 보이는 내용이다. 정세유가 형부상서刑部尙書로 승진하자, 당시 참지정사 상장군叅知政事上將軍인 문장필文章弼 등 여러 장수가 탄핵하여 아뢰기를 “정세유가 예전에 서북면에 있을 때 민에게서 명주실과 진기한 물품들을 거두면서 공물로 바친다고 사칭하고는 역마驛馬를 이용해 제 집으로 실어 보냈습니다. 또 상서성尙書省에 있을 때는, 영주永州의 향리鄕吏 최안崔安의 호장戶長 임명장[公牒]이 이미 완성되었는데도, 정세유가 수주水州의 향리인 최소崔少에게 뇌물을 받고 영永자를 수水자로 고치고 안安자를 소少자로 고쳐, 그 임명장을 최소에게 주었습니다. 일이 발각되었으니 법에 의해 마땅히 유배되어야함에도 잔꾀를 써서 처벌을 면했습니다. 지금 형부상서가 되어서는 먼저 관아에 나와 앉아 있다가 늦게 오는.. 2022. 10. 1.
남농 선생의 대나무 1. 나는 근현대 한국화가 가운데 이 어른, 남농 허건(1907-1987)을 가장 좋아한다. 소치의 손자니, 호남 화단의 거목이니 하는 미사여구는 둘째치고, 집에 들른 외판원도 그냥 보내지 않았다는 그 인품에다가 마주 보면 바람소리가 들릴 듯한 그의 소나무에 반했기 때문이다. 그가 없었던들 60-70년대의 이른바 동양화 붐은 존재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의 작품, 특히 만년작은 위작이 많기로도 유명하지만, 워낙 인기가 있었기에 나타난 현상 아니겠는가. 2. 남농 선생은 주로 산수와 소나무를 즐겨 그렸고, 사군자나 화조는 썩 즐기지 않은 것으로 안다. 젊은 시절의 화조도는 한 번인가 두 번인가 실물로 봤고, 난초나 대나무는 몇 차례 만났는데 그야말로 남농의 모습다운 난초와 대나무였다는 기억이다. 매화는 .. 2022. 9. 27.
키 크기로 유명한 사람, 김부귀 1930년대 경성, 사람들은 '그로'(그로테스크)에 빠져있었다. 무언가 기괴한 일 없나, 궁금해하고 찾아다니던 그들의 앞에 '그로'의 실체가 나타났다. 당시 세계에서 세번째로 키가 컸다는 거인, 김부귀金富貴(1905-1943)가 그였다. 경남 거창 사람으로 지리산 화엄사에 출가해 승려생활을 하다 속세로 나온 그를 두고 사람들은 "낮도깨비야 낮도깨비!" "원 그런 사람이 있을랴구"라고 수군거렸으며, 신발이 배만하다는 둥 손이 솥뚜껑만하다는 둥 온갖 말을 덧붙였다. 남아있는 사진만 봐도 과연 거인巨人이라는 말이 어울린다. 신문이며 잡지에 실린 인터뷰 기사도 제법 확인되는데, 그 큰 체구로 세계일주를 하겠다고 나서 중국, 일본을 거쳐 미국 하와이까지 갔다왔다니 환속還俗한 보람은 있었다고 할까. 거기서 더 나아.. 2022. 9. 16.
문정경중問鼎輕重, 저 세발 솥은 무게는 어떠한고 주나라가 기울고 제후국들이 자기 목소리 크게 내던 춘추전국시대, 춘추오패의 하나로 꼽히는 초 장왕이 주나라 수도 낙양 근처까지 병사를 이끌고 왔다. 이에 주 정왕은 대부 왕손만이란 이를 사신으로 뽑아 장왕에게 보냈다. 장왕은 왕손만을 만나자마자 대뜸 묻기를, "구정九鼎은 크기가 얼마나 되오?" 중국 고대에는 전국 9주州의 구리를 모아서 만든 9개의 세발 솥, 곧 구정九鼎이 왕권을 상징하는 물건이었다. 그 구정 크기를 묻는다? 왕손만은 답하지 않는다. 그러자 장왕은 다시 묻는다. "크기를 모르면 무게는 알 수 있겠군. 구정은 무게가 얼마인가? 참고로 우리 초나라에선 부러진 창끝만 모아도 그런 솥 서너 개는 만들 수 있을 게요." 이는 주나라 왕실로부터 그것을 빼앗아 초나라로 옮기겠다는 뜻이었다. 거기서 더.. 2022. 9. 16.
연혼포延婚浦 또는 열운이 탐라를 연 세 신인은 모두 남성이었다. 아메바처럼 단성생식을 할 게 아닌 바에야 짝이 될 여성이 있어야할 터 어느 날 동쪽 바닷가에 큰 나무 함 하나가 나타났다. 그 안에는 오곡의 씨앗과 말, 소, 그리고 세 여인과 한 사내가 있었다. 그 사내는 세 신인에게 "저는 벽랑국(에는 일본국이라 했다) 사람입니다. 우리 임금께서 세 따님을 낳고 이르되 서해 한가운데 있는 산에 신자神子 3명이 강생降生하여 장차 나라를 세우려는데 배필이 없도다 하시고 이에 신臣에게 명하여 세 왕녀를 모시고 가게 하였습니다. 마땅히 배필로 삼아 대업大業을 이룩하시옵소서." 하고 홀연히 구름을 타고 떠나가 버렸다 한다. 이에 세 신인은 세 공주와 혼인하고 탐라국의 기틀을 다지게 된다. 그 나무 함이 둥둥 떠왔다는 곳인 연혼포에 다녀왔.. 2022. 9.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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