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探古의 일필휘지515 왕화王化의 밖 제주, 김응남金應南의 경우 1583년, 동부승지를 지낸 김응남金應南(1546~1598)이 제주목사로 임명된다. 보통 무과 출신이 임명되는 제주목사 자리에 문과 출신이 임명되는 일은 이례적이다. 기실 이는 동서 분당이 가속화되던 시점에 '동인의 괴수'로 지목받던 그를 조정에서 떨어뜨려놓으려는 좌천성 인사였다. 이를 두고 사간원에서는 부당함을 논하였다. 그런데... 제주목사 김응남은 오랫동안 경악經幄에서 모시고 있으면서 많은 계옥啓沃을 하였고, 승선承宣이 되어서는 부지런히 있는 힘을 다했던 자로서, 전하께서도 일찍이 믿고 총애하였던 바인데 죄명이 드러나지도 않은 것을 침윤浸潤의 참소만을 치우치게 믿으시고 이매魑魅의 고장에다 던져버리셨습니다. 근래 빈번한 척축斥逐으로 하여 명류名流는 거의 다 없어지고 참소하는 입들이 그 틈을 타서 대성.. 2023. 3. 27. 경매競賣와 감정鑑定, 백년 전엔 외래어였다 얼마 전 일본어에서 유래한 한국어 단어사전이 나와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기억이 있다. 10월쯤 되면 꼭 그런 외래어때문에 우리말이 오염되었다고 훈계하는 다큐멘터리가 나오는데, 글쎄, 외려 우리말의 어휘와 문법의 가능성이 보다 풍성해지고 있다고 볼 수는 없는 것일까. 윤치호가 '내가 영어로 일기를 쓰는 이유는 내 생각을 표현할 어휘가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하던 시절에 비하면 얼마나 한국어가 다채로워졌느냐 이 말이다. 1909년의 를 보면 지금은 너무나 흔하게 쓰이는 어휘들을 '신래성어新來成語'라고 소개하고 있다. 박물관에 있으면서 늘상 보고 쓰는 '경매'나 '감정' 같은 어휘도 일본에서 온 외래어였음을 새삼 깨닫는다. *** 편집자注 *** 필자가 주장하는 요지에 무슨 군더더기가 필요하겠는가? 한글수호.. 2023. 3. 26. 오구라 다케노스케小倉武之助, 그의 글씨 대구 전기회사 사장이자 한국문화재 약탈의 주역 중 하나로 기억되는 오구라 다케노스케小倉武之助가 자기가 가진 유물 목록을 발간한 적이 있었다. 그리고 그 중 하나를 히로세廣瀨라는 지인에게 증정했다. 글씨를 꽤 빠르게 썼다. 음, 대구경북 쪽에서 혹 필요하시려나. 2023. 3. 25. 송은松隱 이병직李秉直(1896-1973)의 국화 그림 고종을 가까이에서 섬긴 이로 유재현이란 환관이 있었다. 1884년 갑신정변때 고종을 모시고 경우궁으로 갔던 유재현은 정변 이튿날 김옥균 등에게 살해당한다. 평소 개화파와 가까웠으나 정변에 찬동치 않았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런 그에게는 양자의 양자가 있었다. 에 따르면 그는 '아버지의 원수' 김옥균의 시신이 서울 양화나루에 오자 직접 찾아가 간을 꺼내어 씹었다고 한다. 그가 양자로 들인 인물이 바로 이 글 주인공 송은 이병직이다. 큰 권세와 부를 대대로 누린 환관 가문 후예가 된 이병직은 미술에 조예가 깊었다. 김첨지가 하루 종일 일해도 3원을 못 벌던 시절, 한 해 3만원 남짓한 수입이 있던 그는 돈을 아끼지 않고 우리 고미술품을 사들였다. 그렇게 구한 유물 상당수 중에는 오늘날 보물 지정된 것도 있고( .. 2023. 3. 23. 창덕궁을 찾은 도쿄미술학교장, 그 두번째 이야기 한 보름쯤 전인가, 재미있는 문서를 발견하고 가볍게 글을 하나 쓴 적이 있었다. 창덕궁을 찾은 도쿄미술학교장 (historylibrary.net) 이제 다시 읽어보니 아래 '요건'이 뭔지 감이 잡힌다. '스에마쓰末松 서무과장庶務課長의 면회面會'라고 읽어야 뜻이 통한다. 당시 이왕직은 1사司 6과課 체제였다. 그중 '서무과'가 있었다. 그리고 이왕직에 스에마쓰라는 성을 쓰는 직원은 분명 있었다. 이왕가박물관 운영에 깊이 간여했고 강진 고려청자 도요지를 '발견'했다는 스에마쓰 구마히코末松熊彦(1870-?)가 그다.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에서 그의 행적이 약간 확인된다. 그는 1870년 11월 16일 후쿠오카 태생으로 1904년 인천 미두취인소(지금으로 치면 증권거래소?) 지배인으로 처음 이 땅을 밟.. 2023. 3. 23. 창덕궁을 찾은 도쿄미술학교장 도쿄미술학교 교장인 마사키 나오히코(正木直彦, 1862~1940)와 그의 일행 3명이 창덕궁(이거나 창경궁? 하지만 이때는 이미 창경궁이 '창경원'으로 이름을 갈아붙이고 입장료를 받던 상황이었으니....아무래도 창덕궁일 듯하다)에 들어갈 일이 생겼다. 용건 부분 글자는 잘 모르겠는데(무슨 서무庶務가 어쩌고....인 듯 하다) 이왕직李王職에서는 옛 대한제국 황족들이 사는 궁궐을 '지키기' 위해 설치한 창덕궁경찰서에 이 사람들이 궁궐 문을 들어온다는 사실을 알리는 '입문통지서入門通知書'를 끊어주었다. 이 '쯩'을 궁 앞에서 보여주면, 창덕궁경찰서에서는 "하이! 오신다는 말은 들었습니다" 하고 그 무거운 궁문을 열어주었겠지. 그러나저러나 당대 일본 미술계 실력자 중 한 명이었던 마사키 상이 창덕궁에 들러야 할.. 2023. 3. 5. 이전 1 ··· 41 42 43 44 45 46 47 ··· 86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