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探古의 일필휘지494

호운湖雲 박주항朴疇恒, 일본 장군을 찬양하는 시를 적다 늘 머릿속에 넣어두고있는 주제 중 하나가 잘 알려지지 않은 근대 서화가 연구다. 그중에서도 난초로 당대에 제법 유명했던 수연壽硯 박일헌朴逸憲-호운 박주항 부자에 관해서는 꼭 논문을 써보겠다고 벼르고 자료를 모아보고 있다. 그러다가 우연히 이 글씨 한 폭을 만났다. 박주항이 벌연筏硯이라는 호를 쓰던 시절(1910~20년대?) 글씨인데, 어쩐지 고균古筠 김옥균金玉均 글씨가 떠오르는 서풍書風이다. (맨 뒤 첨부사진) 쓰기는 제법 능숙하게 써 내려갔는데 내용을 읽어보니 참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끔 한다.표범은 죽어 가죽을 남긴다는 말 어찌 우연이랴 豹死留皮豈偶然물이 하늘과 잇닿은 미나토가와에 자취가 남았구나 湊川遺蹟水連天인생은 유한하나 이름은 끝없으니 人生有限名無盡구스노키 공의 진실된 충성 만고에 전하리라 楠子.. 2022. 12. 25.
평안 평안 평안하다는 이하응, 진짜 그랬을까? 모 경매에 나온 흥선대원군 석파 이하응(1820-1898)의 간찰이다. 그런데 그 내용이 아주 재미있다. 누가 보낸 간찰에 답신으로 보낸 건데 별로 할 말이 없었는지, 진정 상대가 잘 지내기를 바란 것인지, 아니면 웃기려고 유머감각을 발휘한 것인지 언뜻 감이 잘 안 잡힌다. 혹 모르겠다, 지독한 현실의 벽 앞에서 반어법으로 평안을 운운했던 것일는지도... 아래 탈초 번역은 일단 임의로 해 보았는데, '호지무화초胡地無花草' 격으로 접미사는 붙이기 나름일 듯하다. 봄을 전송하니 평안하고, 여름이 되니 평안하오. 천지가 평안하니 인생이 평안하더구려. 나는 평안한데 그대는 평안하신지? 봉투가 평안하면 오는 것 모두가 평안할게요. 운운 운하에서 답하오 4월 6일 餞春平安 立夏平安 天地平安 人生平安 我平安 汝平安 .. 2022. 12. 12.
고려사가 증언하는 김부식 그 단면 『고려사高麗史』김부식 열전을 보면 이런 내용이 보인다. 송나라의 사신 노윤적路允迪이 왔을 때 김부식이 관반舘伴이 되었는데, 사신의 수행원 서긍徐兢이 그가 글을 잘 짓고 역사적 사실에 밝은 것을 보고 그 사람됨을 좋아하게 되었다. 『고려도경高麗圖經』을 저술하면서 김부식의 세가世家를 싣고 또 그 생김새를 그려 가지고 돌아가서 황제에게 보고했다. 황제가 사국司局에 명령을 내려 판에 새겨서 널리 전하게 하니, 이 때문에 김부식의 이름이 천하에 알려졌다. 뒤에 송나라에 사신으로 가서는 가는 곳마다 극진한 예우를 받았다. 요즘 식으로 얘기하면 이런 것 아닐까? 어떤 사람이 영길리국永吉利國에 갔는데, 그 국인國人이 어디서 왔느냐 물었다. 나는 한국에서 왔소라고 하니 對曰, ''Oh! 두 유 노우 소능민?"이라 하였다. 2022. 12. 11.
밥상으로 바둑판을 쓴 풍운아 김옥균 얼마 전, 존경하는 위가야 선생님 포스팅에서 김옥균 이야기를 보고 떠오르는 이야기가 있어 그려본다. 갑신정변을 일으킨 '풍운아' 김옥균의 정치적 행적이나 사생활에 대해서 내가 길게 얘기할 것은 없지 싶다. 하지만 지금도 간혹 박물관이나 경매장에서 그의 글씨를 보면 분명 매력이 있다. 예전에 들은 몇 토막 일화에서도 그런 매력이 느껴진다. 그러니 동아시아 삼국 정부가 모두 적대하는 처지였으면서도 어떻게든 그를 도와주는 사람이 나타났던 게 아닐까. 김옥균 하면 같이 언급되곤 하는 게 바둑이다. 지금으로 치면 아마 3단~4단 정도 기력棋力이었다고 하는데, 을 보면 조선에서도 바둑 내기를 핑계삼아 일본 공사관을 드나들며 갑신정변 계획을 짰다고 한다. 일본에 망명하고 나서는 더욱 바둑에 탐닉한 모양으로, 이때 그.. 2022. 12. 11.
현판, 격조 있는 알림 1. 보고서를 쓰면서도 느낀 것이지만, 현판이란 기본적으로 이 집이 무얼 하는 곳이라는 표시이다. 만약 저 대리석 현판이 없더라면 저 건물이 그 유명한 '통문관'인지 쉽게 알겠는가. 하지만 없더라도 어찌어찌 알 방도야 있을 것이다. 들어가서 물어본다든지 지번을 검색해본다든지. 2. 어쩌면 현판의 더욱 중요한 쓰임이란 이 건물을 쓰는 사람의 생각과 격조를 다른 이들에게 보여주고 은근히 자랑하려 함이 아닐까? 저 '통문관' 현판이 만약 검여 유희강의 글씨가 아니라 그냥 컴퓨터 폰트였더라면...어후, 상상에 맡길 뿐이다. 3. 생각해보건대 현판의 용도와 성격을 가장 극명하게 얘기하신 분은 바로 현철 선생님이 아닐까 한다. 왜 그분의 히트곡을 들어보면... "이름표를 부~~ㅌ여 내~가슴에, 화~ㄱ실한 사랑의 도.. 2022. 12. 10.
유혁로柳赫魯라는 인물의 글씨 요즘은 학교에서 갑신정변(1884)을 어떻게 가르치는지 모르겠지만, 예전(이라고 해봤자 20년쯤 전) 교과서에는 개화파가 조선을 개혁하려는 의도로 벌인 사건이라는 식의 긍정 서술이 많았다고 기억한다. 김옥균 위인전도 있었고(물론 거기서 김옥균은 '위인'스럽게 나온다) 역사만화전집 같은 데서도 '젊은 그들'의 행보는 진취적으로 묘사되곤 했다. 하지만 머리가 굵어지면서 다시 본 갑신정변은 그리 긍정이지 않았다. 비유컨대 숯불 속에서 설익은 감자를 꺼내려다 손만 데고 감자마저 떨구어버린 격이랄까. 전개과정만 그랬다면 몰라도 이후 이른바 개화파 행보는 실망스러운 것이었다. 10년을 더 살았으나 허랑하고 만 김옥균은 그렇다 치더라도, 나라를 구하겠다고 일어선 이들이 뒷날 나라 망하는 데 손을 보태고 만 건 지독한.. 2022. 12.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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