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건강과 질병의 역사54 1920년대의 용각산 광고 1924년 1월 8일자 동아일보에 실린 광고다. 지금도 진해거담제로 소개되지만 1920년대에는 폐병, 백일해 등에도 효과가 있는 것으로 광고했다. 물론 폐병 백일해에는 근거가 없다. 용각산龍角散은 19세기 메이지유신 전에 발명된 꽤 오래된 한방약이다. 일본 동북지역에 있는 아키타 현秋田県에 살던 후지이라는 집안은 번주를 치료하는 번의藩醫였는데, 19세기 초반, 용각산을 만들어 아키타현에서만 유통했던 것으로 되어 있다. 메이지유신 후, 아키타현이 없어지자 번주는 후지이 집안에 이 약을 하사하였고 그 후에 본격적으로 만들어 팔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 후지이 집안의 상속자가 바로 위 광고에 보이는 후지이 도쿠사부로藤井得三郞(1858~1935)다. 이 약은 아직도 일본에서는 후지이 집안이 대표인 회사가 만들어.. 2025. 9. 10. 1922년의 진통해열제: 배암표 안티피린 1924년 1월 8일자 동아일보에 실린 광고다. 감기와 열병에는 안티피린.일제 수입약품이다. 배암표 상표가 붙어 있다. 안티피린은 지금도 게보린 등 진통해열소염제에 포함되어 있는 이소프로필 안티피린을 말한다.1920년대 중반이 되면 일본에서 잘 팔리는 의약품들이 조선에도 신문 지면을 통해 많이 소개된다. *** 편집자주 *** 저 게보린이라는 말이 워낙 한때 방송광고에서 자주 보인 까닭에 일반에는 익숙하다. 이 분인데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해열진통제 그 대명사 같은 존재였다. 한데 저 안티피린은 왜 배암표였던가? 2025. 9. 10. 사단뛰기로 넘기는 고고기생충학 우리나라 고고기생충학은 지난 20년간 단국대 서민 박사가 부족한 필자와 협력연구를 해준 덕에세계적으로 의미있는 수준에 올랐다. 이건 필자가 하는 소리가 아니고 다른 나라 비슷한 연구자들이 내린 평가이니 맞을 것이다. 그러나-. 세월은 흐르고 사람은 늙는 법. 고고기생충학도 언제까지 필자가 붙잡고 있을 수는 없다. 내후년 초까지 사단뛰기로 고고기생충학 연구를 경희대 홍종하 교수에게 넘기고 이 분야에서 완전히 철수한다. 첫째. 올해 하반기 국내 연구자들 대상의 고고기생충학 워크샵. 이 워크샵을 기점으로 2년에 한번씩 홍종하 교수가 앞으로 국내 연구자들, 고고학자들 대상으로 고고기생충학 워크샵을 시행할 것이다. 둘째. 영문 단행본 2권. 국문 단행본 1권. 고고기생충학의 기술적 측면을 다룬 영문 및 국문 .. 2025. 7. 21. 연구소식: 일본의 매독과 東海道中膝栗毛 아래 글은 2022년에 이 블로그에 포스팅한 필자 연구 비망기였던 바, 현재 이 내용을 논문화하여 올해 일본 학술지에 싣기 위한 막바지 작업을 진행 중이다. 논문은 일본어 독자를 대상으로 하는지라 일본어로 쓰고 있다. 조만간 출판될 것 같아 미리 다시 주의를 환기 해 둔다 (신동훈 識) ***************** 매독은 1492년, 신대륙발견과 함께 구대륙으로 전파된 이후 아주 짧은 시간에 전세계를 휩쓸었는데 동아시아에서는 중국과 일본이 비교적 일찍 전파되었고 한국은 상대적으로 이보다 느리다. 전 세계를 누비던 세계무역의 확대와 매독의 전파는 동전의 양면과 같은 것이었기 때문에 개항이 상대적으로 늦은 조선이 매독에 상대적으로 늦게 노출된 것은 그런 의미가 크다. 흥미로운 것은 인류학적 연구에 의해 .. 2025. 4. 1. 공지가 돌파되는 경우: 병자호란의 예 앞에서 한국과 중국 양국간 공지空地 이야기를 했다. 이 공지가 없어지면 어떻게 되는가 하는 예를 병자호란을 보면 알 수 있다. 최근에 병자호란과 관련하여 알려진 것이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병자호란 때 서울 인근까지 침투한 홍타이지가 서둘러 철수한 배경에는 당시 주둔지 주변에 천연두 환자가 발생했었다는 점-. 물론 이것이 청나라 군대가 서둘러 철퇴한 배경의 전부는 아니겠지만, 서로 분리되었던 두 지역 사람들이 어느날 대면하는 것은 전염병의 측면에서 매우 위험한 일이라는 것은 신대륙 발견 당시 유럽인에 의해 원주민들이 속수무책으로 전염병에 의해 쓰러진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다음은 같은 병자호란 당시 청나라 군을 따라 남하한 우역-. 이 우역은 처음에는 청나라 영토인 심양에서 발생하였는데 호란 당시 .. 2025. 2. 20. 간도 이주민처럼 숨어 든 위만 위만이 연나라에서 도망쳐 그 무리와 함께 처음 숨어든 땅은한나라가 지키는 요새 바깥은 공지空地였다. 그리고 이 공지는 고조선 땅도 아니었다. 구체적으로는 고조선과 한나라 사이에 존재하는 공지였다는 말이다. 고조선으로서는 공지에 사는 위만을 서쪽 변경을 지키는 박사로 임명했다니고조선이 볼 때 그 땅은 공지가 아니라 자기들 땅이었을지도 모르지만 아무튼 그 땅은 비워둔 땅이었다. 관념상 누구의 땅이건 간에 일단 비운다는 말이다. 청나라 때 유조변柳條邊 바깥 땅도 관념상으로는 청나라 땅이었지만 자기네들 땅을 비워 공지로 만든 것이다. DMZ가 오늘날 한국과 북한 사이에만 있었다고 생각하면 곤란하겠다. 위만이 건너와 살았다는 한나라 요새 바깥의 공지는 아마도 청나라 때 유조변 바깥에서 압록강 북쪽에 설정된 공.. 2025. 2. 19. 이전 1 2 3 4 5 6 7 ··· 9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