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건강과 질병의 역사58 1920년대의 치약 조선의 신문 광고에서 자주 등장하는 치약 광고는 "쿠라부 치마"다. 치마란 치약을 당시 일본에서 부르던 이름인데,일본에서 치약은 메이지 이후부터 쓰기 시작했는데이 시기가 되면 치약가루(치마분), 액상치약, 크림형 치약 (연치마) 등으로 나뉘어졌다고 한다. 대체로 지금의 치약과 비슷한 것은 크림형 치약인 연치마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겠다. 당시 국내에 통용되던 치약은 모두 수입품으로 국산은 없던 것으로 보인다. 일본에서도 쿠라부 치약은 당시 꽤 유명했는지인터넷에는 1920년대의 이 치약에 대한 리뷰가 꽤 보인다. *** [편집자주] *** 이 근대적인 의미에서의 칫솔과 치약, 나아가 치과학 도입에 앞선 시기 저 양치질 문제와 치과 치료 문제는 생존과 직결하는 문제 아니었겠는가?오죽 저 치통이 문제였으면.. 2025. 9. 13. 한유의 고문을 본받은 춘약春藥 광고 1922년 현재 동아일보에 실린 춘약 광고로, 이 시절 이런 메이저 언론에도 춘약 광고, 춘화 광고가 빈번히 실렸다. 춘화는 주로 야한 사진 위주의 광고가 많고 춘약은 대개 이런 식인데, 광고의 내용을 읽어 보면 한유의 고문을 본받아 인생이 어차피 다시 소년으로 돌아갈 수 없으되이 약만 한 번 드시면 사실상 소년이 된다 하였다. 성분? 없다. 뭘로 만들었는지 모르겠다. 정가는 한 알에 30원이라는데, 1920년 당시 1원은 요즘 돈으로 6000원 정도 된단다. 그러니 한 알에 18만원의 고가인 셈이다. 이것도 특제가 아니라서 그렇고 특제면 한 알에 50원이니요즘 돈으로 30만원이다. 아무나 사먹던 것이 아닌 셈이다. *** [편집자주] *** 춘약....뭘 어케 만들었기에 봄날로 돌려준단 말인가?이거 .. 2025. 9. 10. 1922년의 살바르산 유사품 광고 앞에서 언급한 바 매독 특효약으로는 1920년 당시이미 살바르산이 특효약이라는 것이 잘 알려져 있었는데, 위 광고에서 보이는 606호가 바로 살바르산이다. 왜 살바르산이 606호인가. 이 살바르산을 발명한 이는 파울 에를리히라는 독일 미생물학자로매독 특효약을 개발하기 위해 실험을 반복한 바 606번째 화합물에서 마침내 성공했다 하여살바르산이 606호라 불리게 되었다. 파울 에를리히는 이 공으로 노벨상을 수상하였다. 매독에 대해 가지고 있던 인류의 공포를 생각하면 당연한 결과라 할 것이다. 그런데-.위 광고는 매독특효약 606호 살바르산 광고가 아니라, 606호의 대용내복약이다. 살바르산은 아니지만먹고 나면 606호와 같은 효과가 있단다. 아마 뻥일 것이로되 저 약을 복용한 이는 매독은 낫지 않고 돈만 날.. 2025. 9. 10. 1920년대를 풍미한 임질과 매독 조선시대 기록을 보면우리나라는 성병에 대해 알고는 있었고, 또 한 번 걸리면 치료가 쉽지 않다는 점에서 현대인이 AIDS를 두려워 하는 정도의 공포를 가지고 있었지만막상 매독 같은 경우 환자 자체는 그다지 많지 않았던 듯 하다. 현대는 이런 병이 걸리더라도 항생제 등으로 치료를 하니 완치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이 당시만 해도 매독은 치료가 안 되니 한번 걸리면 장기간에 걸쳐 계속 진행하면서 최종단계에는 뼈도 파괴하는 등 그 흔적을 남기게 되는데 필자가 조사한 바로는 조선시대 사람들 뼈에는 매독의 흔적이 쉽게 발견되지 않아 이 당시 매독 발생률은 그다지 높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반면 일본의 경우 매독이 정말 심하게 확산되어 에도시대 사람들 뼈에서는 매독에 의해 뼈가 파괴된 흔적을 쉽게 찾을 수 있다.. 2025. 9. 10. 1920년대의 용각산 광고 1924년 1월 8일자 동아일보에 실린 광고다. 지금도 진해거담제로 소개되지만 1920년대에는 폐병, 백일해 등에도 효과가 있는 것으로 광고했다. 물론 폐병 백일해에는 근거가 없다. 용각산龍角散은 19세기 메이지유신 전에 발명된 꽤 오래된 한방약이다. 일본 동북지역에 있는 아키타 현秋田県에 살던 후지이라는 집안은 번주를 치료하는 번의藩醫였는데, 19세기 초반, 용각산을 만들어 아키타현에서만 유통했던 것으로 되어 있다. 메이지유신 후, 아키타현이 없어지자 번주는 후지이 집안에 이 약을 하사하였고 그 후에 본격적으로 만들어 팔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 후지이 집안의 상속자가 바로 위 광고에 보이는 후지이 도쿠사부로藤井得三郞(1858~1935)다. 이 약은 아직도 일본에서는 후지이 집안이 대표인 회사가 만들어.. 2025. 9. 10. 1922년의 진통해열제: 배암표 안티피린 1924년 1월 8일자 동아일보에 실린 광고다. 감기와 열병에는 안티피린.일제 수입약품이다. 배암표 상표가 붙어 있다. 안티피린은 지금도 게보린 등 진통해열소염제에 포함되어 있는 이소프로필 안티피린을 말한다.1920년대 중반이 되면 일본에서 잘 팔리는 의약품들이 조선에도 신문 지면을 통해 많이 소개된다. *** 편집자주 *** 저 게보린이라는 말이 워낙 한때 방송광고에서 자주 보인 까닭에 일반에는 익숙하다. 이 분인데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해열진통제 그 대명사 같은 존재였다. 한데 저 안티피린은 왜 배암표였던가? 2025. 9. 10. 이전 1 2 3 4 5 6 7 ··· 10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