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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과 질병의 역사58

사단뛰기로 넘기는 고고기생충학 우리나라 고고기생충학은 지난 20년간 단국대 서민 박사가 부족한 필자와 협력연구를 해준 덕에세계적으로 의미있는 수준에 올랐다. 이건 필자가 하는 소리가 아니고 다른 나라 비슷한 연구자들이 내린 평가이니 맞을 것이다. 그러나-. 세월은 흐르고 사람은 늙는 법. 고고기생충학도 언제까지 필자가 붙잡고 있을 수는 없다. 내후년 초까지 사단뛰기로 고고기생충학 연구를 경희대 홍종하 교수에게 넘기고 이 분야에서 완전히 철수한다. 첫째. 올해 하반기 국내 연구자들 대상의 고고기생충학 워크샵. 이 워크샵을 기점으로 2년에 한번씩 홍종하 교수가 앞으로 국내 연구자들, 고고학자들 대상으로 고고기생충학 워크샵을 시행할 것이다. 둘째. 영문 단행본 2권. 국문 단행본 1권. 고고기생충학의 기술적 측면을 다룬 영문 및 국문 .. 2025. 7. 21.
연구소식: 일본의 매독과 東海道中膝栗毛 아래 글은 2022년에 이 블로그에 포스팅한 필자 연구 비망기였던 바, 현재 이 내용을 논문화하여 올해 일본 학술지에 싣기 위한 막바지 작업을 진행 중이다. 논문은 일본어 독자를 대상으로 하는지라 일본어로 쓰고 있다. 조만간 출판될 것 같아 미리 다시 주의를 환기 해 둔다 (신동훈 識) ***************** 매독은 1492년, 신대륙발견과 함께 구대륙으로 전파된 이후 아주 짧은 시간에 전세계를 휩쓸었는데 동아시아에서는 중국과 일본이 비교적 일찍 전파되었고 한국은 상대적으로 이보다 느리다. 전 세계를 누비던 세계무역의 확대와 매독의 전파는 동전의 양면과 같은 것이었기 때문에 개항이 상대적으로 늦은 조선이 매독에 상대적으로 늦게 노출된 것은 그런 의미가 크다. 흥미로운 것은 인류학적 연구에 의해 .. 2025. 4. 1.
공지가 돌파되는 경우: 병자호란의 예 앞에서 한국과 중국 양국간 공지空地 이야기를 했다. 이 공지가 없어지면 어떻게 되는가 하는 예를 병자호란을 보면 알 수 있다. 최근에 병자호란과 관련하여 알려진 것이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병자호란 때 서울 인근까지 침투한 홍타이지가 서둘러 철수한 배경에는 당시 주둔지 주변에 천연두 환자가 발생했었다는 점-. 물론 이것이 청나라 군대가 서둘러 철퇴한 배경의 전부는 아니겠지만, 서로 분리되었던 두 지역 사람들이 어느날 대면하는 것은 전염병의 측면에서 매우 위험한 일이라는 것은 신대륙 발견 당시 유럽인에 의해 원주민들이 속수무책으로 전염병에 의해 쓰러진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다음은 같은 병자호란 당시 청나라 군을 따라 남하한 우역-. 이 우역은 처음에는 청나라 영토인 심양에서 발생하였는데 호란 당시 .. 2025. 2. 20.
간도 이주민처럼 숨어 든 위만 위만이 연나라에서 도망쳐 그 무리와 함께 처음 숨어든 땅은한나라가 지키는 요새 바깥은 공지空地였다. 그리고 이 공지는 고조선 땅도 아니었다. 구체적으로는 고조선과 한나라 사이에 존재하는 공지였다는 말이다. 고조선으로서는 공지에 사는 위만을 서쪽 변경을 지키는 박사로 임명했다니고조선이 볼 때 그 땅은 공지가 아니라 자기들 땅이었을지도 모르지만 아무튼 그 땅은 비워둔 땅이었다. 관념상 누구의 땅이건 간에 일단 비운다는 말이다. 청나라 때 유조변柳條邊 바깥 땅도 관념상으로는 청나라 땅이었지만 자기네들 땅을 비워 공지로 만든 것이다. DMZ가 오늘날 한국과 북한 사이에만 있었다고 생각하면 곤란하겠다. 위만이 건너와 살았다는 한나라 요새 바깥의 공지는 아마도 청나라 때 유조변 바깥에서 압록강 북쪽에 설정된 공.. 2025. 2. 19.
국경의 변화와 전염병 근대국가는 국경에서의 체계적 검역을 특징으로 한다. 이 때문에 제국주의 국가 침탈도 국경선에서의 검역관리라는 모습으로 들어올 때가 있다. 일본도 구한말 조선에 대해 검역관리를 이유로 국권침탈을 시작했고 조선이나 중국이나 모두 개항 이후 가장 서두른 것이 바로 검역이었다. 언젠가 김 단장께서도 비슷한 이야기를 하신 것으로 기억하는데 근대국가의 전환은 곧 국경선 모습의 변화이기도 하다. 전근대시대 국가간 경계가 꼭 이렇다는 보장은 할 수 없겠지만 이 당시 국가간 경계는 공지를 두어 관리를 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본다. 지금처럼 국경선이 국가간 영토가 맞닿는 선의 모습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경계 사이에는 공지를 둔다는 것이다.이런 국가간 국경선에 두는 공지의 기원은 한국사에서는 멀리 고조선시대에도 볼 수 있.. 2025. 2. 19.
유조변이 만든 공지: 전염병의 장벽 조선시대 육로를 통한 중국 사행길을 표시하는 이 지도를 보면, 동쪽으로 이어진 중국의 경계가 압록강과 거리를 두고 남하하다가 압록강 어귀에서 만다는 것을 본다. 이것이 소위 말하는 유조변柳條邊으로 봉금封禁 지역으로 못 들어가게 하기 위한 경계선으로 안다. 조선과 청나라는 국경을 서로 맞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양국의 국경은 공식적으로는 압록강과 두만강이었지만, 조선측 국경인 압록강을 넘어 저 유조변 안쪽으로 들어가기 전에 몇 십 킬로미터에 걸친 공지를 거쳐야 했던 것으로 안다. 조선 쪽에서는 압록강을 넘어 저 안으로 들어가는 데는 모종의 허가가 필요하며, 이는 중국 쪽에서도 마찬가지로 저 유조변 바깥으로 나가지 못하니 곧 유조변의 동쪽이 소위 말하는 봉금지역이 되겠다. 이 공지 아닌 공지가 우리에게 남긴.. 2025. 2.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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