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국가는 국경에서의 체계적 검역을 특징으로 한다.
이 때문에 제국주의 국가 침탈도 국경선에서의 검역관리라는 모습으로 들어올 때가 있다.
일본도 구한말 조선에 대해 검역관리를 이유로 국권침탈을 시작했고
조선이나 중국이나 모두 개항 이후 가장 서두른 것이 바로 검역이었다.
언젠가 김 단장께서도 비슷한 이야기를 하신 것으로 기억하는데
근대국가의 전환은 곧 국경선 모습의 변화이기도 하다.
전근대시대 국가간 경계가 꼭 이렇다는 보장은 할 수 없겠지만
이 당시 국가간 경계는 공지를 두어 관리를 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본다.
지금처럼 국경선이 국가간 영토가 맞닿는 선의 모습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경계 사이에는 공지를 둔다는 것이다.
이런 국가간 국경선에 두는 공지의 기원은 한국사에서는 멀리 고조선시대에도 볼 수 있다.
고조선이 연나라-진나라-한나라까지 국경선을 접한 중원 국가를 거쳐 내려오는 동안
그 사이에는 항상 공지가 있었다.
이러한 공지의 필요성에는 여러 가지가 있었을 텐데,
양국간 불필요한 군사충돌을 막는 목적도 있었을 테고
국경선 지역을 비워두어 월경자가 살아남지 못하게 하는 이유도 있었을 것이다.
이러한 공지는 신라나 고려시대에도 비슷한 모습을 볼 수 있다.
신라가 통일 한 후 북쪽 영토의 경계인 평양일대는 상당기간 황무지로 남았다.
일종의 공지로 변한 것일 텐데 이 지역을 고려 건국 이후 서경으로 삼았다는 것은
곧 이 시대가 되어 국경선인 공지가 더 북상해 올라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고려 전기에 우리가 취하는 소위 강동육주도 따지고 보면 일종의 공지였다고 할 수 있다.
강동육주를 우리가 실효적 지배를 못한 와중에 거란이 우리의 점유를 용인했다는 것은
이 지역이 거란과 우리 사이의 공지였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반도 국가의 북방 국경 공지는 청나라 때 유조변柳條邊으로 처음 모습을 드러내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역사가 길어 명나라 때도 비슷한 것이 있었던 정황이 있다.
결국 이러한 양국간 국경선에 공지가 존재했다는 것은 의외의 결과를 낳는데
바로 앞에서 이야기 한 것처럼 전염병 확산의 장벽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근대국가가 된다는 것은 이러한 전근대 시기의 국경선에 존재한
공지가 사라진다는 것을 의미하며
이는 곧 국제적, 국가간 전염병의 확산에 있어 전혀 다른 시대로 접어 들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근대로의 전환이 일어날 때 검역 사무가 강화되는 것은
이를 근대국가의 국가간 행정사무의 전환으로 무심하게 보게 되는데
실제로 국경선의 모습과 역할이 이전과 달라져 전몀병 확산의 양상이 달라지게 된 데 더 큰 이유가 있을 것이다.
이에 대한 작업은 앞으로 몇개월간 검토를 거쳐
올해 하반기에는 논문화할 생각이다.
*** editor's note ***
근대국가로의 전환은 빗금에서 라인으로의 변화를 의미한다.
이 빗금이 저자가 말하는 공지空地다.
문제는 저 공지의 경계가 불확실하다는 것.
그것이 빗금으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모름지기 측량이 동반해야 한다.
빗금에서 선으로, 근대의 탄생
빗금에서 선으로, 근대의 탄생
근대는 빗금으로부터의 해방이다. 완충지대를 두지 않고 선으로 분할함으로써 경계를 확정하는 일, 이것이 내가 생각하는 근대의 핵심이다. 조선총독부가 추진한 토지조사사업은 빗금에서 선
historylibrary.net
측량, 빗금에서 라인으로
측량, 빗금에서 라인으로
근대는 빗금에서 선으로의 이동이다. 측량은 선을 긋고 경계를 수치화하는 핵심 중의 핵심이다. 왜 유길준이 측량 학교를 세웠겠는가? 측량없이 선을 그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근대 이전에도
historylibrary.net
평과 마지기...강렬한 빗금의 전통, ㎡의 탄생
평과 마지기...강렬한 빗금의 전통, ㎡의 탄생
식민지시대 문서를 보면 길이를 재는데 자주 보이는 단위가 尺(척)이다. 이것도 후기로 갈수록 미터법으로 대체한다. 미터법이 尺에 대해 지닌 최대 강점은 빗금의 경계를 최소화한다는 사실이
historylibrary.net
산송과 측량, 경계
산송과 측량, 경계
조선시대 후기, 살인사건의 상당수가 산송, 즉 조상들 묏자리 때문에 발생했다는것은 잘 알려져 있다. 남의 선산에 자기 조상의 묘를 슬쩍 묻거나 여기가 네 땅이냐 내땅이냐를 두고 발생하는
historylibrary.net
빗금의 온상 양안量案, 근대는 빗금에서 선으로의 이동이며 토지조사업은 그 필연이다
빗금의 온상 양안量案, 근대는 빗금에서 선으로의 이동이며 토지조사업은 그 필연이다
이것이 조선시대 후기 토지대장인 양안量案이다. 그 목적은 말할 것도 없이 경계의 확정과 이를 통한 삥뜯기인 세금 부과를 위함이었다. 소재지 지번 지형 등급 면적 소유주를 빠짐없이 기재해
historylibrary.net
유길준의 측량학교
유길준의 측량학교
근대는 빗금에서 선으로의 이동이다. 프론티어 frontier 와 보더라인 borferline 의 차이거니와 Borderline을 긋기 위한 필요조건이 측량 메저먼트다. 유길준이 하필 측량학교를 세웠겠는가? 수탈? 개소
historylibrary.net
'신동훈의 사람, 질병, 그리고 역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공지가 돌파되는 경우: 병자호란의 예 (2) | 2025.02.20 |
---|---|
간도 이주민처럼 숨어 든 위만 (0) | 2025.02.19 |
유조변이 만든 공지: 전염병의 장벽 (1) | 2025.02.17 |
상식에 겸허해야 하는 전문가 (0) | 2025.02.16 |
내재적 발전론이 제자리를 맴도는 이유 (0) | 2025.02.16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