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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년의 연구1947

해석이 너무 앞서간 듯한 까뮈의 페스트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필자는 논문과 전공서적 외에는 책을 잘 읽지 않았다. 읽을 시간도 없고, 무엇보다 책을 읽고 새길 만한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고나 할까. 그런데 최근에는 폭넓게 책을 보려 한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여전히 다른 사람들보다는 독서 폭이 좁을 것이라 생각한다. 아무래도 소설이나 대중서라도 필자의 평생 작업, 건강과 질병사에 관련있는 책을 빼드는 경우가 많다. 최근 까뮈의 페스트를 읽었는데, 아마도 대학시절 틀림없이 봤을 거 같은데 줄거리고 뭐고 하나도 생각이 안 나는 것을 보면 그 당시 별 감흥 없이 대충 읽고 치워버렸을 가능성이 백프로라. 이번에 다시 읽어 보니, 2020년대 초반 COVID-19 여파인지,이건 시작부터 끝까지 그냥 전염병 발생, 창궐, 종식으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2026. 7. 15.
미화해선 곤란한 인도 홀로 여행 “베개 밑에 칼 놓고 잤다”…끔찍한 이 나라, 5번이나 여행한 이유안시내의 ‘혼잘다(혼자 잘 다녀오겠습니다)’① 인도 기차여행 인도는 조용할 틈이 없다. 릭샤(Rickshaw·인력거) 경적은 귀를 찢고, 여행자를 보는 시선은 따갑다. 음식물 쓰레기와 소똥이 뒤섞n.news.naver.com 필자 개인적인 생각일지 모르겠지만, 인도 여행은 미화가 금물이다. 흔히 인도를 spiritual 하다거나 이색적, 인간적이라는 수식어로 포장하는 경우를 보는데, 그곳도 사람 사는 곳이고, 다른 저개발국가와 마찬가지로 혼자 여행하면 많은 위험이 따른다. 물론 여행이 혼자 하게 되면 몰려 다닐 때보다 분명히 장점이 있다는 것은 분명한데, 인도의 경우 여성 혼자 여행하는 이야기는 결코 포장되어서도 안 되고, 이런 여행기는 .. 2026. 7. 15.
30년 만에 정의해 보는 학술 연구 필자에게 있어 올해는 연구 인생에서 하나 의미가 있는 해인 것이, 필자의 첫 번째 논문이 학술지에 실린 해가 1996년으로, 올해가 딱 30년째가 된다. 한 가지 일을 30년째 했으니 이제 한 세대 동안 한 일을 나름 정의할 연륜은 되지 않았을까? 필자가 보기엔 학술연구라는 것, 한 마디로 정의하자면Curiosity & Creation이다. 학문의 바탕은 호기심이 되어야 한다. 연구가 세상에 기여하는 것도 중요하고,또 자본주의사회에서 그런 기여가 물적 금전적 성공일 수도 있겠지만, 그 바탕에는 호기심이 바닥에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호기심이야말로 학문의 가장 바탕을 이루는 것이고, 왜 화성에 쏘아 올린 탐사 로버 이름이 큐리오시티인지-. 그 뜻을 우리 연구자들을 새겨야 할 것이다. 학술연구의 또 한 .. 2026. 7. 13.
익숙한 이야기가 학자의 수명을 단축한다 요즘 필자도 나가는 준비를 하며 60 이후의 연구를 준비하다 보니가지고 있는 책을 정리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신나게 버리고 있었는데 어느 시점이 지나니 더 이상 책이 줄지를 않는다. 왜 그런고 곰곰히 보니, 익숙한 책을 손에 쥐고 버리지를 못하는 것이다. 이 책은 언젠가 한 번은 또 볼 것 같아 버리지를 못하는 것인데, 사실 따지고 보면 그 책으로 내가 새로운 논문을 쓸 것 같지는 않다. 그냥 심심풀이 삼아 나중에 또 읽을 것 같은 것이다. 그 이유는 그 내용이 익숙하고 옛날에 재미있게 본 기억 때문이다. 학자로서 뭔가 계획을 하지 않는다면 모르겠지만, 60 이후에도 뭔가 연구를 계속해 보겠다고 한다면이런 익숙하지만 앞으로 거기서는 뭔가 더 나올 가능성이 없는 책들 이런 책부터 모두 청산하여 버려야 한다.. 2026. 7. 11.
노인과 바다, 늙음의 탈을 쓴 젊음의 이야기 노인과 바다는 굴복하지 않는 인생의 노년을 그린다. 노인이 마지막으로 봤다는 사자는 젊은 날의 상징이다. 힘이 떨어져도 마지막까지 젊은이처럼 도전에 응전한다. 헤밍웨이의 세계관은 많은 면에서 토인비와 닮았다. 도전과 응전으로 보는 것이라던가, 그러면서도 다양한 문명을 인정한다던가-. 그런데 나도 나이가 들어 보니노인과 바다는 노년을 제대로 겪지 않은 이가 쓴 소설이라는 생각이 든다. 노년의 인생을 생이 다할 때까지 뭔가 할거리를 찾으며 끊임없이 노력하며 살 수는 있는데절대로 이 소설의 노인처럼 살 수는 없다는 생각이다. 청년처럼 생각하고 개척하는 노인은 있을 수가 없다는 말이다. 일단 첫째로 체력이 안되고, 둘째는 떨어지는 체력에 맞춰 정신도 함께 쇠락한다. 자기 인생의 막을 죽을 때까지 내리지 않고 끝.. 2026. 7. 9.
떠났으면 더 이상 식구가 아니다 조선시대 사족들, 유학자들을 보면 이런 사람이 많다. 원래부터도 대단한 학자가 아니었던듯 하던 이들이어느날 갑자기 산림이라는 이름으로 픽업되어 정계의 거물이 된다. 그건 뭐 그런 대로 좋다. 내가 아는거 세상에 구현해 보겠다는데 그걸 어떻게 막겠는가. 게다가 수신 제가 치국 평천하라 하지 않았는가 수신이 끝나서 치국을 하러 나가겠다는데 그걸 어쩌겠냐는 말이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이 사람들은 틈만 있으면 낙향해서 공부하겠다고 한다. 밥만 먹으면 나가서 정치판에서 치고 받던 이들이 낙향해서 공부는 제대로 하겠는가? 그건 핑게 일 뿐이지만 더 웃기는 것은이 사람들이 죽고 나면 정승집이라고 사족에게 호소하지는 않는다. 거대 문집을 펴내 학자연 한다는 말이다. 우리나라? 20세기, 21세기가 되어도 이런 풍토.. 2026. 7.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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