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문화재와 함께한 나날들342 [문재인시대 회고] 내 자리 아니라며 거푸 국박관장을 거부한 A 앞서 문재인 정부 초대 관장 배기동 이야기를 했거니와 그에 이어지는 일화 한 토막. 그의 재임기간은 2017년 07월 17일 ~ 2020년 11월 01일이지만 중간에 교체 움직임이 심각히 있었고, 결국 훗날 교체되는데 이 두 번 모두 가장 강력한 같은 후보가 있었다. 대략만 말해도 누군지 짐작하기에 그냥 편의상 A라고만 해둔다. 그는 두 번 다 같은 이유로 거절했다. 내가 갈 자리가 아니라는 이유여서다. 국박 관장은 대통령령에 의한 차관급 대우라 청문회도 없는데다 상징성이 강한 자리라 행정력을 동반해야 하는 여타 차관이나 차관급 외청장들과도 또 달랐다. 그만큼 부담이 덜한 고위 임명직이다. A가 첫번째 물망에 오른 이유는 전문성과 행정력 때문이었다. 그만한 인재 찾기 힘들다 해서 제일순위로 거론되고 청와.. 2024. 1. 31. 류렬의 한국어 연구 특징 앞서 월북 국어학자 류렬과 관련한 그의 국어학 주장 요지 하나를 소개했으니, 아래 기사는 그 무렵 그와 짝해서 별도로 작성해 송고한 내 기사다. 2000년 당시 여든두살 류렬은 이산가족방문단 일원에 포함되어 딸 류인자(당시 59세) 씨를 상봉했다. [2000.08.17 송고] (서울=연합뉴스) 김태식기자 = "그리하여 이 부문(국어)의 연구에서 부르죠아 반동학자들과 제국주의 침략자들의 앞잡이들이 퍼뜨리고 있는 온갖 그릇된 관점과 주장, 방법론, 그리고 우리나라에 대한 침략과 민족 분렬책동을 합리화하려는 궤변들에 대하여 리론적으로나 자료적으로나 응당한 타격을 주고 짓부셔버려야 한다". 1983년 북한 과학백과사전출판사에서 나온 『세나라 시기 리두에 대한 연구』 서문에서 이 책 저자인 류렬(82)은 이렇게 .. 2024. 1. 30. 삼국시대 지명 분석을 통해 동일민족설을 주창한 월북 국어학자 류렬 앞에 강민경 선생이 월북한 저명한 국어학자 김수경金壽卿 관련 글을 기고했기에, 비슷한 처지였던 월북 국어학자 류렬柳烈(1918~2004)에 관한 기억이 나서 2004년 내가 쓴 관련 부고 기사를 전재한다. 1918년이라는 생년은 남쪽에 남은 같은 국어학자 허웅 선생, 이강로 선생과 같다. 류렬이 특히 비판한 남한 국어학 거물 이기문은 1930년생이라 나이 차이가 좀 난다. 기사 본문에서 보듯이 허웅 이강로 두 선생 논급이 있다. 그의 연구성과 중 《세나라시기의 리두에 대한 연구》는 특히 중요하다. 삼국시대에 보이는 지명은 거의 다 망라하여 그 유래를 추적했다. 물론 그의 주장을 모두 따를 수는 없겠지만, 엄두도 내지 못한 일을 해냈다. 월북 국어학자 류렬 박사교수 별세 연합뉴스 2004.08.02 11:.. 2024. 1. 30. [문재인시대 회고] 통과 친구라 해서? 초대 관장 배기동 문재인 정부시대 문화재 업계 얘기 꺼낸 김에 이 이야기도 기억에서 사라지기 전 정리해야겠다. 저 시대 초대 관장은 배기동. 문통과는 경남고 동기동창이라 해서 문재인 정부 출범과 더불어 안팎으로 관장이 될 것이라는 소문이 파다했지만 그 과정이 그리 간단치만은 않았다. 배기동 경력에서 가장 크게 걸림돌인 문제가 한국전통문화대학 총장이었다. 본인은 공식으로는 아니라고 뚝 잡아떼지만 이명박 정부 당시 문화재청장 이건무랑 대학 운영 방안을 두고 대판 붙고는 못 해먹겠다고 사표 던져 버리고 나왔다. 둘은 서울대 고고인류학과 선후배로 나름 친분도 돈독했다 기억하지마는 행정은 그런 두 사람을 갈라놓게 해버렸다. 문정부에서는 왜 9개월만인가 총장질 하다 박차고 나왔는가? 통솔력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닌가가 문제를 삼았다.. 2024. 1. 29. [문화재청장 정재숙] (3) "뽀뽀하심 안되요" 문화재청장 내정 통보 당시 정재숙은 실크로드 탐방을 핑계로 중국인가 중앙아시아를 여행 중이었다. 유홍준이 참여한 답사였는데, 당연히 유홍준과 함께 있었다. 그런 그를 청와대 인사수석비서관실 신미숙이 전화로 불러낸 것이다. 당신이 이제 청장이요, 조속히 귀국하셔서 임명장 받으시죠 하는 말과 함께 한 마디를 더 붙였다. "청장님, 이젠 저는 뽀뽀하심 안 됩니다 아시죠?" 정재숙은 문화재 기자 경력은 일천하다 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썩 그와 동떨어진 삶을 산 것도 아니다. 여러 언론사를 전전하고 한겨레를 거쳐 이때는 늙다리 기자로 이름도 그럴 듯하게 무슨 문화전문기자인지 하는 타이틀을 달고는 졸업을 준비할 무렵이었으니 문화 부문 잡탕이라 할 만치 여러 분야를 섭렵했으니, 특히 간송미술관과 관계가 밀접해 최완.. 2024. 1. 29. 신형준에 깨끗이 물 먹고는 깨끗이 엎어 버린 수촌리 대롱옥 2005년 공주 수촌리 백제 무덤 두 곳에서 대롱옥 한 점을 일부러 두 동강 내고는 그 무덤에다가 각각 한 조각씩 넣은 사실이 발굴조사를 통해 드러났다. 이는 조선일보 신형준 기자 독점 보도였다. 문제의 기사를 접한 나는 이건 깨끗이 내가 물을 먹었다고 판단했다. 나는 쓰지 못했는데 다른 기자가 쓴 것으로 첫째 그것이 팩트에 기반하고, 둘째 충분히 다룰 만한 중요한 사안이라고 판단할 때, 언론계에서는 이를 물 먹었다고 한다. 그랬다. 나는 신형준한테 물을 깨끗이 먹었다. 다른 기자한테 물 먹은 기사는 대개 아주 간단히 처리하고 말거나, 아니면 아예 다루지 않는다. 자존심 때문이다. 이는 비단 한국 언론만의 특징이 아니라 세계 어느 언론계나 있는 현상이다. 다만, 이 건은 내가 아주 다르게 생각했다. 받아.. 2024. 1. 27. 이전 1 ··· 6 7 8 9 10 11 12 ··· 57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