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문화재와 함께한 나날들369 [문화재와 함께한 나날들] (35) 김영나 시대의 박물관(1) 초대 관장의 딸 이명박 정부가 반환점을 돈 2011년 2월 8일, 정부가 단행한 차관급 인사를 통해 국립중앙박물관장 최광식은 서울에 있는 짐을 싸서 대전으로 옮겨갔다. 문화재청장으로 발탁된 것이다. 그 얼마 뒤 최광식은 다시 짐을 싸서 도로 상경한다. 이번에는 당시 서울과학관 뒤편에 임시로 쓰던 문화체육관광부 청사 장관실로 말이다. 그가 떠난 박물관장실은 새 주인을 맞았다. 서울대 미술사학과 교수이면서 이 대학 박물관장을 역임하고 서양미술사를 가르치던 김영나가 온 것이다. 그의 관장 임명은 단연 화제를 불러 일으켰다. 무엇보다 그가 장장 재임기간이 25년에 달하는 초대 국립박물관장 김재원의 딸이라는 점 때문이었다. 이렇게 해서 관장이 된 그는 박근혜 정부로 바뀌어서도 어찌된 셈인지 이렇다 할 만한 교체 움직임도 감지되지.. 2024. 10. 6. 어영부영 보내 버린 파주 혜음원지 단국대 매장문화재연구소, 그리고 그 후신이랄 수 있는 한백문화재연구원이 장기 연차 발굴을 벌인 파주 혜음원지는 왕립 호텔을 겸한 고려시대 사찰 갖춤 역원驛院 시설로는 실상 제대로 조사한 첫 고려시대 유적이라는 점에서 비상한 의의를 둬야 한다. 이 발굴은 마침 내가 현역 시절이고, 더구나 그 시절 대부분 내가 문화재를 담당하던 시절이라, 발굴 연차마다 거의 빠짐없이 내가 직접 현장을 목도한 현장이라 더 각별하거니와 지금 현장은 보존정비가 실상 마무리되고 그 전면에는 전시교육관까지 들어선 마당이라 이제는 그 발굴하던 시절 여러 면모를 맛볼 수는 없는 곳이 되고 말았다. 이 혜음원지 발굴은 저와 같은 점들에서 그 조사 내력과 그 발굴 성과를 총정리 혹은 집대성한 단행본이 두어 종은 이미 선보였어야 하고, 그 .. 2024. 10. 5. [문화재와 함께한 나날들] (31) 문화재청장 서정배 (1) 풍납토성과의 운명적 만남 한국 문화재 정책을 총괄하는 부처인 문화재청은 그 모태를 구황실재산사무국을 삼는다. 이 기구가 1962년 1월 10일 문화재보호법이 제정 시행되기 시작함으로써 문화재관리국으로 탈바꿈한다. 지금은 차관급 문화체육관광부 외청이지만 출범 당시는 지금의 교육부 전신인 문교부 산하 외국外局이었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과 궤를 같이한 문교부는 1990년 12월 26일 교육부로 개편되거니와 그것을 구성하는 국 단위 중 하나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니 현재에 견주어 권능은 형편 없었다. 초대 관리국장은 구황실재산사무총국장을 역임한 한당욱. 문화재관리국은 1967년 7월 24일 소속이 문화공보부로 넘어간다. 이름은 그대로 문화재관리국이었다. 문화공보부에서 공보가 따로 독립하자 문화부에서 계속 자리를 지킨다. 내가 문화재 분.. 2024. 10. 4. 개똥 인분 천지였던 풍납토성 이 풍광이 지금은 또 바뀌었을 것으로 본다. 앞 사진은 아마 1999년 무렵 내가 촬영한 한 장면일 텐데 풍납토성 동벽 중앙지점이다. 보다시피 이때까지만 해도 이 지점은 묘목 밭이었다. 그 묘묙밭은 무허가였을 것이다. 당시 묘묙은 내 기억에 느티나무 종류였다. 저리 해 놓으니 성벽이 온통 개똥밭 인분밭이었다. 아산병원에 가까운 지점 성벽은 채소밭이었다. 이 역시 무허가였으니, 인근 주민들이 마음대로 파밭 깨밭으로 썼다. 문화재 때문에 못살겠다 했다. 그래 일정 부분 타당하리라, 하지만 꼭 문화재 때문이었는가 생각하면 꼭 그렇지만도 않다. 그런 풍납토성이 그래도 변모를 거듭해 저와 같은 모습으로 탈바꿈했다. 그래도 불만이다. 아예 문화재가 싫댄다. 그 문화재 때문에 없던 공원도 생기고 했는데도 싫댄다. 덮.. 2024. 9. 30. [문화재와 함께한 나날들] (9) 하늘을 쳐다본 산서성 고건축 기행 얼마 전 이상명이라는 사람이 명지대 대학원 건축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는 소식을 접했다. 말인즉슨 조선 왕릉을 구성하는 건축물 중에서도 정자각에 초점을 맞춘 박사학위 논문을 썼다 했다.그에 나 역시 관심이 지대한 까닭에 김군을 통해 문제의 논문 송부를 저자에게 부탁했다. 저자와 직접 인연이 없다 해서 그와 친한 듯이 보이는 김군에게 다리를 놓아 달라는 뜻으로 그리한 것이다. 며칠 뒤 저자 직접 사인이 붙은 학위 논문이 남영동 집으로 날아들었다. 그 증정 인사말에서 李君은 2004년 산서성 답사를 같이한 인연이 있다는 기억을 상기했다. 이군한테는 좀 미안했다. 그는 나를 기억하는데 내가 그를 기억하지 못했으니 실례도 이만저만이 아닌 셈이다. 다시 그 며칠 뒤, 도서출판 메디치미디어 김현종 사장과 연희동 .. 2024. 9. 30. 국경을 탈출한 최몽룡의 남경 식탁 한 시간 장광설 이 양반이 고고학 현장에서 무수하게 남긴 일화야 두 말 해서 무엇하랴만, 개중 최몽룡표 전매특허가 장광설이라 이 양반은 국적 불문, 전공 불문 가리지 아니하고선 각종 회의 석상 같은 데서 일대 장광설을 펼치기로 유명한데, 문제는 이게 국경을 넘어서도 그랬다는 데 심각성이 있었다. 국내야 그런갑다 하고 말지만(난 이골이 나서 저 양반 마이크 잡는 순간 딴데로 틘다.) 국경을 탈출해서도 이런 모습이 펼쳐지는데 당혹스럽기 짝이 없었다. 대략 20년 전쯤, 선생을 모시고 남경 일대를 간 적 있다. 내가 자주 소개한 남경 손오대묘孫吳大墓가 발굴된 직후였으니, 그 현장도 돌아보고 했다. 당시 어떤 인연이었는지 모르겠지만, 통역 겸해서 중국통 미술사학도(본래는 고고학도다) 양은경 부산대 교수가 동행했으니, 북경대 고.. 2024. 9. 28. 이전 1 ··· 3 4 5 6 7 8 9 ··· 62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