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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와 함께한 나날들374

공산성의 꼽사리들 2014년 9월 23일 공주 공산성 목곽고 발굴 현장이다. 습지에서 백제시대 목곽고 흔적이 나오고 그에서 진흙 잔뜩 머금은 칠갑옷 비늘이 잔뜩 쏟아졌다. 그 칠갑편들에서는 해서체로 아주 잘 쓴 글씨가 또 잔뜩 나왔는데 당 태종 이세민이 사용한 정관貞觀(627~649)이라는 연호가 나왔다. 그 칠갑옷을 백제산으로 볼 것이냐 중국산으로 볼 것이냐 논란이 벌어졌거니와 암튼 저때 발굴단은 공주대박물관, 발굴단장은 지금은 고인이 된 이남석 선생이었다. 그 현장 공개라 해서 당연히 관심이 많을 때 그날 어이한 셈인지 김충배가 찡가들었다. 저때는 LH에 근무할 때인데 무슨 핑계 대로 왔을 것이다. 그 춘배가 가운데 꼽사리로 끼어들어 기념 촬영을 했다. 당시 공주대에 재직 중이었나? 자신이 없는 이훈 선생이 함께 했으.. 2024. 9. 24.
《문화재와 함께한 나날들》 (35) 박물관 고고학의 대부 한병삼 한병삼은 국립중앙박물관장을 역임한 사람으로 적어도 지금의 한국 문화유산계에서는 무게감이 있는 역사상의 인물로 통한다. 이런 그와 나는 이렇다 할 인연이 없다. 그도 그럴 것이 1998년 12월 정기 인사에서 내가 사회부를 떠나 문화부에 안착했을 때, 이미 그는 국립중앙박물관장직에서 물러난 지 한참이나 지난 뒤였거니와 그에 따라 그 또한 문화재위원이라든가 발굴현장에서 지도위원 같은 자격으로 더러 모습을 드러냈으니, 이럴 적에 가끔 마주치는 정도였고, 그렇다고 내가 그에게 어떠한 인상을 주지 못했을 것이 듯이, 그 또한 나에게는 퍽이나 인상적인 인물은 아니었다. 초창기 시절 내가 찍은 각종 발굴현장 사진을 정리하다 보니 2000년대 초반 국립중앙박물관 고고부가 조사한 원주 법천리 백제고분 발굴현장에 그의 모.. 2024. 8. 19.
《문화재와 함께한 나날들》 (30) 이영훈론(補) 부부 학예직 프라이버시는 존중해야 한다. 다만 이영훈은 가족 관계를 좀 덧보태어 놓아야겠다. 이건 말해도 되는 공적 영역의 사안이라 판단하기 때문이다. 그의 부인은 김연수다. 2016년 3월 현재 문화재청 국제교류협력과장으로 있다. 김연수는 남편과 같이 박물관에서 일하면서 학예연구관까지 진급했다가 2005년 1월에 있은 문화재청과 국립중앙박물관, 그리고 국립민속박물관 세 기관간 인력 교류에 따라 문화재청 산하 궁중유물전시관에 정착했다. 이 전시관은 나중에 국립고궁박물관으로 조직을 대대적으로 확대 개편한다. 이때 인사 교류한 연구직은 2년 안에 대부분 원대 복귀했지만, 김연수는 눌러앉아 이내 과장으로 진급해 여러 직책을 거쳤다. 그가 적을 옮길 때 이영훈은 학예연구실장 아니었나 하지만 확실히는 모르겠다. 다른 교류직과.. 2024. 8. 12.
《문화재와 함께한 나날들》 (30) 이영훈론(3) 내친 김에 천마총도 까발리자 황남대총 특별전에서 독특했던 점은 누가 뭐라 해도 질보다는 양을 앞세운 전시였다는 점이다. 이영훈은 그 개막에 즈음해 기자들에게 “5세기에 신라인들이 만든 황남대총을 21세기의 우리가 다시 만들어 본다는 생각으로 준비했다”고 했다.유물등록대장에 오른 출토 유물 5만8천여 점 중에서도 전시 가능한 유물 5만2천여 점을 모두 전시하는 파격을 시도한 것도 이런 문제의식에서 비롯한다. 그런 까닭에 그의 말마따나 “전시기법에 신경을 쓰지는 않았으며 황남대총을 통해 마립간 시대 신라인들이 무덤, 특히 왕릉을 어떻게 꾸몄으며, 어떤 유물을 어디에다가 어떻게 부장했는지를 보여주고자”했다. “어떻게 보면 가장 단순한 전시지만 신라 왕릉을 이해하기에는 이만한 전시가 없다고 본다”는 자신감도 피력했다. 이를 위해 전시는 마.. 2024. 8. 12.
《문화재와 함께한 나날들》 (30) 이영훈론(2) 중앙을 향한 황남대총 쿠데타 남북으로 잇대어 나란히 누운 경주 황남대총. 길이 80m, 봉분 높이 각각 23~24m인 이 무덤은 크기에서 단연 국내 최고다. 더구나 경주 평지에 땅을 대략으로 다진 다음 이 거대한 봉분을 흙과 돌로 쌓아올렸으니, 그 공력은 크기보다 더 컸다.아마도 4~5세기 신라라는 왕국을 통치한 어느 왕과 그 왕비를 묻었을 이 무덤은 1천600년 전 봉인된 다음 두 번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첫 번째로 이 무덤을 풀어헤친 이 김정기요, 그렇게 다시 봉인한 무덤 빗장을 연 이 이영훈이다. 2010년 12월, 국립경주박물관장 이영훈은 김정기가 1970년대에 발굴해 남겨준 황남대총 출토 유물 5만 점을 깡그리 공개한다. 이는 혁명이요, 쿠데타였다. 무엇에 대한 혁명이며 무엇에 대한 쿠데타인가?박물관이란 자고로 이런 데.. 2024. 8. 11.
《문화재와 함께한 나날들》 (30) 이영훈론(1)조폭형 보스의 배신 행보 이명박이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그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서 문화계를 술렁이게 한 일 하나를 만든다. 국립중앙박물관장을 차관급에서 1급으로 하향하고 국립박물관은 일체 문화재청에 흡수 통합시킨다는 것이었다. 이는 문화체육관광부를 들썩이게 만들었다. 작은집에 먹히게 되었다고 난리가 났다. 국립박물관이 대체 무엇이기에?이 당시 문화부 전체 예산이 얼마였는지는 기억에 없다. 다만 1조 단위를 돌파했던 것만은 분명하다.이 문화부가 거느린 산하 기관에 국립박물관이 있었다. 예산 규모 역시 자세한 기억은 없지만 1천억원인가 1천500억원 안팎에 지나지 않았다. 예산으로만 보면 박물관이 차지하는 비중은 형편없었다. 문화부 산하 기관이 어디 한두 군데인가?그럼에도 왜 문화부에서는 내일이면 장관에서 물러나는 김종민 주재로 대책.. 2024. 8.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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