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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라 이야기443

버터 한 아름 안고 매니큐어 하고 처형 저승길 떠난 아일랜드 보그 바디 올드 크로건 맨Old Croghan Man은 항상 팔이 달린 몸통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그는 2,300여 년 전 철기 시대에 아일랜드에 산 켈트족 출신으로, 키가 무려 6피트 5인치(약 183cm)에 달했다.또한 그는 "늙은" 것도 아니었다. 사망 당시 20대 초반이었다.그의 시신은 2003년 아일랜드 크로건 힐Croghan Hill 근처에서 발견되었으며, 이탄 습지peat bogs의 독특한 환경 덕분에 놀라울 정도로 잘 보존된 여러 시신 중 하나다. 이탄 습지는 부분적으로 부패한 식물체와 지하 웅덩이 위로 자란 이끼로 이루어진 질척거리는 습지다.이끼는 지하수 웅덩이를 매우 차갑고 산성이며 산소가 없는 상태로 유지하는데, 이는 박테리아가 다른 환경에서처럼 물질을 분해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대신, 늪.. 2025. 9. 21.
후지와라 4대 미라의 조사 (1950) https://youtu.be/8-9ViIAg2yw?si=DHMCDnWef0-Arr6V 오슈 후지와라씨奧州藤原氏는 4대 약 100년 정도 일본 혼슈의 북부에서 번영했는데 일본의 동북지역이 일본사에 완전히 들어오는 과정에서마지막 단계라고 할 수 있다. 이 이전에는 이 지역은 에조지로 서일본의 야마토에게는 정벌의 대상이었다. 헤이안시대에 이 지역은 비로소 야마토 판도에 들어왔는데그렇게 되어서도 여전히 완전히 융합되지 못한 곳이었다. 헤이케정권과 겐페이전쟁이 벌어지던 시기에 이 지역은 자칭 후지와라씨의 지손이라는 오슈 후지와라씨가 4대 100년간 지배했는데 그 지배자의 시신은 히라이즈미의 주손지, 곤지키도에 미라 상태로 모셔져 있다. 이 동영상은 그 4대 100년간 오슈후지와라씨 지배자 미라를 조사한 것으.. 2025. 9. 17.
오슈 후지와라 미라(14): 오슈 통일전쟁의 결과 사실 오슈 통일전쟁이라는 말은 없다. 이는 필자가 편의상 붙인 이름으로 일본사에서는 이 일련의 전쟁을 전구년합전前九年合戦과 후삼년합전後三年合戦이라 부른다. 앞의 것은 9년간 벌어진 전쟁, 뒤의 것은 삼년간 벌어진 전쟁으로 도합 12년간 전쟁이 벌어졌다는 뜻인데실제로 제대로 따져보면 전쟁 기간은 저것보다 더 길다는 이야기도 있다. 이 전쟁의 내역을 보면전술한 아베 씨(安倍氏), 데와 기요하라 씨(出羽清原氏), 그리고 오슈 후지와라 씨(奥州藤原氏) 등 부수장俘囚長 외에도 중앙 정부에서 파견되어 개입하는 세력까지 있어 그 전개가 복잡하기 짝이 없다. 일본인이 아닌 우리로서는 되도록 간단히 이해해 보면우선 이 전쟁의 결과 이전에는 몇 개 종족이 연합체를 구성하고 중앙 정부에서 이들을 통해 간접지배하던 모습이었던.. 2025. 7. 3.
오슈 후지와라 미라(13): 오슈 통일 전쟁의 시작 헤이안 시대가 막을 내리면서 앞에서 이야기한 동북지역도 급격하게 세력이 재편되었는데 율령체제를 기반한 헤이안쿄平安京의 야마토 조정 입장에서는 당장 주변의 무사들도 통제가 안 되는 판에 당시로서는 열도의 북쪽 끝에 해당하는 오슈 지역까지 힘이 제대로 행사될 리가 없었다. 이 지역은 헤이안 시대 말, 크게 두 힘이 충돌하여 정국이 복잡하게 돌아갔는데, 첫째는 율령체제의 성립과 함께 이 지역을 무력으로 통치한야마토 조정의 힘, 그리고 둘째는 앞서 언급한 이 지역 토착 부수장俘囚長들이었다. 俘囚長이라고 하지만 이들의 세력도 간단치 않아서 크게 보아 아베 씨(安倍氏), 데와 기요하라 씨(出羽清原氏), 그리고 오슈 후지와라 씨(奥州藤原氏) 세 세력이 있었다. 이 셋 중에 앞선 두 세력, 아베씨와 기요하라씨는 좀 .. 2025. 7. 2.
오슈 후지와라 미라(13): 반기를 드는 俘囚長들 야마토 정권이 이 지역을 영제국 체제에 편제한 후앞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이 지역에는 중앙에서 파견된 관리 이외에이 지역민을 사적으로 통제한 우두머리들이 나오기 시작했으니 이들이 바로 자신들을 스스로 부수장俘囚長, 부수주俘囚主, 부수상두俘囚上頭 등으로 부르던 자들이었다.에미시의 후예 집단을 지배하던 이들은 중앙에서 내려온 관리들이 이 지역을 통제하는데 협력하는 대신현지인에 대한 사적 지배의 끈을 놓지 않았다. 이 사람들이 바로 이 지역의 安倍氏 (奥州)、出羽清原氏、奥州藤原氏 등이다. 우리 역사에서 보자면 북방에서 한반도 정부의 통제를 받는 대신현지인에 대한 지배를 확립한 여진족 수령쯤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겠다. 이 여진 안에 한반도에서 건너간 사람들도 뒤섞여 있었지만스스로를 여진족이라고 인식하고 있었듯이.. 2025. 6. 29.
오슈 후지와라 미라(12): 俘囚가 된 에미시 7세기 말 이후 야마토의 북벌로 편입된 지역은 헤이안 시대 일본의 행정체계라 할 소위 영제국領制國 체제에서 데와出羽와 무쓰陸奥라는 이름의 지역으로 불렸다. 우리나라 함경도 지역에 옛 여진 지명이 심심치 않게 남아 있는 것처럼 이 지역, 일본의 동북지역에는 따져보면 그 기원이 에미시, 에조蝦夷인 경우가 제법 있다. 예를 들어 오늘날 아오모리青森県 현 쓰가루津軽 지역은 아이누어의 "칼 끝 부분"을 의미한다는 식과 같은 것이다. 이런 에미시 혹은 아이누계 지명이 동북지역에는 많다. 앞에서 쓴 것처럼 야마토 정권의 북벌로 이에 복속된 후 에미시인들은 야마토에 의해 부수俘囚[현대 일본에서는 후슈라고 읽는다]라는 이름으로 편제되었다. 俘囚라니, 이름 그대로 보자면 포로라는 뜻이니복속민이라는 뜻이 되겠다. 따라서 .. 2025. 6.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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