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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라 이야기441

[마왕퇴와 그 이웃-43] 그 시대의 조미료 마왕퇴 1호묘에서 나온 것 중음식 맛을 돕는 향신료, 조미료로 볼 만한 것은겨자, 생강, 계피, 산초 등이다. 고추나 후추 등은 아직 없었을 터이고 여기에도 소금은 있었을 터이니 대략 대후 일족 같은 이런 최상층 귀족들은 이 정도의 조미료 향신료로 맛을 내며 음식을 즐긴 셈이 되겠다. 이 중 겨자는 인더스 문명권에서는 하라파 문명 절정기에도 이미 활발히 재배하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중앙아시아에도 6,000년 전에는 재배가 시작되었을 것이라 하니 겨자가 이 지역들을 거쳐 중국으로 도입된 것 역시 그 역사가 상당히 오래되었을 가능성이 있지만 혹 한나라 시대 서역과의 교통이 열리면서 함께 반입된 것은 아닐까 싶기도 하나마왕퇴는 그 시기보다 빠르다.중국에서 겨자 재배의 오랜 기록은 확인해 보았지만 분.. 2025. 3. 9.
[마왕퇴와 그 이웃-42] 계피, 약재와 향신료의 갈림길 여성 미라가 출현한 마왕퇴 1호묘에서는 계피桂皮가 나왔다고 한다. 이 계피는 정확히 말하자면 시나몬cinnamon이 아니다. 계피에 대한 기록은 동아시아에서는 신농본초경에 처음 나오는 것으로 되어 있어문헌상으로는 후한대 이전으로 올라가기 어렵다는데 마왕퇴 1호묘에서 계피가 나왔으니 전한대에도 계피가 쓰였음이 실물로 입증되었다. 원래 계피는 우리나라는 대체로 수입종이라 계피 자체는 동아시아산이 아니라 남아시아에서 들어왔다고 보는 경우가 있지만 이는 정확히 말하자면 반만 옳은 것이다.  계피에는 남아시아 산 실론계피 Cinnamomum verum와 중국 산 육계肉桂(Cinnamomum cassia)가 있는데 이 둘은 동일 속이지만 종이 서로 다르다. 전통적으로 남아시아와 중국에서 각각 오랫동안 재배[혹은 자.. 2025. 3. 9.
[마왕퇴와 그 이웃-41] 마왕퇴 시신을 보존해야 하는가 중국에서는 마왕퇴 이전 고고학 발굴 중 확보한 시신을 보존해야 한다는 원칙이 없었다. 따라서 마왕퇴 이전에도 비교적 온전하게 보존된 시신이 출현했고그 사실이 보고서에 적시되어 있음에도 제대로 보존되지 않고 사라진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산동에서 발견된 명나라 노황왕 주단의 시신은 미라 상태로 발견되었다고 하는데전혀 수습되지 않고 어디론가 사라졌다. 명나라 신종의 릉인 정릉은 1957년에서 1959년 사이에 발굴되었는데이 무덤에서는 신종과 왕비 일족의 시신이 발견되었다고 한다. 아마도 인골 상태로 계속 보존되었던 것 같지만 1966년 문화대혁명 와중에 "지주계급의 우두머리인 만력제를 타도"한다는 명목하에 홍위병에 의해 모두 태워졌다. 때문에 마왕퇴의 시신 역시 발굴 직후 이는 보존할지 그렇지 않고 없애버.. 2025. 3. 9.
[마왕퇴와 그 이웃-40] 1호묘의 동물뼈 1호묘에서는 동물뼈가 많이 나왔다 한다. 지금 그 분류가 끝나 이미 어떤 종류의 동물뼈가 있었는지는 알려져 있다. 써 보면 다음과 같다. 총 24종 동물뼈가 나왔다.우선 네발 짐승에는 토끼, 개, 돼지, 사슴, 황소, 양 등의 뼈가 나왔는데 이 중 사슴을 제외하면 모두 가축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조류에는 기러기, 원앙, 오리, 닭, 꿩, 학, 비둘기, 올빼미, 까치, 참새 등이 있다. 야생조류와 가금이 두루 요리되었던 것을 알 수 있다. 닭은 이미 이 시기에는 중국 대륙의 경우 안정적인 단백질 공급원이 되어 있었다. 네발 짐승과 조류를 보면 가축-가금 사육이 이미 정착해 있었음을 알 수 있는데-.같은 시기 한반도에서는 이 정도 가축과 가금 뼈가 나오지 않고야생동물뼈 비율이 훨씬 높다.  마왕퇴 시기 한.. 2025. 3. 9.
[마왕퇴와 그 이웃-39] 그릇이 식사법을 말한다 앞서 쓴 그릇과 식사법 이야길 조금 더 해 본다.유명한 무용총 벽화 한 장면이다. 여기서 필자가 이야기하고픈 것은 바로 주인 내외로 보이는 두 사람의 앞에 나온 밥상이다. 겸상하지 않고 각자 밥상을 받았다. 사이에는 식사를 돕는 사람이 있다. 이 밥상의 모양을 보자. 그리고 현대한국인의 밥상을 보자.뭔가 닮아 보이지 않는가 말이다. 결국 그릇 종류와 배치는 식사법을 말해준다고 본다. 반면 마왕퇴 밥상차림을 보자.이런 배치라면 식사법이 달랐을 것이다. 결론은 결국, 고구려 벽화고분에서 볼 수 있듯이 한국인의 밥상차림 연원은 상당히 올라갈지 모른다. 그리고 그 밥상차림은 마왕퇴와는 달라 보인다는 뜻이다. 이는 곧 식사법이 우리와는 뭔가 달랐다는 뜻이 되지 않을까 본다. 2025. 3. 9.
[마왕퇴와 그 이웃-38] 밥을 어떻게 먹었을까? 위 사진은 필자의 글에 김단장께서 붙여준 사진이다. 여기서 간단한 의문이 있다. 밥을 어떻게 담아 어떻게 먹었을까? 일단 젓가락만 놓여 있는데, 필자가 아는 한 중국에서는 한국처럼 원래 수저가 다 있다가 숟가락이 탈락한 것으로 안다. 저 위에 밥상을 세팅한 이는 현대 중국인의 밥먹는 방식에 따라 저렇게 놓지 않았을까. 과연 숟가락이 없었을까. 또 한 가지-. 밥을 주식인 곡물에 반찬을 곁들여 먹는 한국식 밥상 비스무리하게 차려 먹었을까. 밥상을 저렇게 차리면 비슷한 모양 다섯 개 칠기 그릇에는 요리가 각각 담겨 있었을까. 제일 왼쪽의 그릇 두 개가 하나는 국그릇, 다른 하나는 밥그릇일까? 모르는 것투성이이다. 2025. 3.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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