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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질병, 그리고 역사/노년의 연구378

1476년 안동권씨 성화보 최근에 안동권씨 성화보를 배독한 바, 이런 규모의 족보가 1476년에 이미 발간되었다는 데서, 이 집안의 당시 명망을 알 수 있겠다. 책 하나를 편집하려 해도 원고가 도착하는 때가 들쭉날쭉으로 마지막까지 원고를 보내지 않고 결사저항하는 저자가 부지기수인 바 저때라고 달랐겠는가? 같은 동성의 같은 파보를 만들어도 수단이 제대로 안 되어 20세기나 되어야 파보를 제대로 만들어 내는 집이 널렸는데, 1476년에 사료로 가치도 풍부한 이 정도 규모의 족보를성도 다른 여러 문중으로부터 수단하여 만들어 낸 것은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다. 극심한 근친혼 콩가루 사회를 증명한 안동권씨 족보https://historylibrary.net/m/entry/%E3%85%87-836069 극심한 근친혼 콩가루 사회를 증명한 안동.. 2025. 10. 4.
10대조가 유명한 양반이면 우리 집은 명문? 정말로 10대조가 유명한 양반이었다고 해도그 후의 10대가 어떻게 내려오느냐에 따라 제대로 된 양반일 수도, 아닐 수도 있다. 우리나라 조선시대에는, 조상 중에 한명이라도 서얼이 나오면그 아래로는 죄다 금고로 묶였다. 이렇게 서얼집안이 되어버리면6-7대씩 내려가도 여전히 적자의 후손과 비교하면 그 직역이 차이가 있는 것을 호적에서 볼 수 있다. 무슨 말인가 하면, 당신의 조상 10대조가 유명한 선비라는 것이당신이 곧 양반 후손이라는 증거가 되지 않는다는 말이다. 왜냐하면 중간에 한 명이라도 서얼 조상이 섞여 버리면그 후부터는 대대로 서얼로 묶여 금고가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이러한 사실을 가장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는 방법은 결국 당시의 호적을 확인하는 방법 외에는 없는데다행스러운 일인지 뭔지.. 2025. 9. 25.
조선 호적의 구조 다들 아시는 이야기겠지만 몇 마디 써 본다. 1. 조선시대 호적에는 당연히 양반에게 "양반"이라고 쓰여져 있지 않다. 일제시대 호적에는 "사족"이라던가 일본 호적에서 쓰는 방식대로 우리 호적에도 적은 경우가 있다던데, 조선시대에는 "양반"혹은 "사족"이란 호적에 쓸 수 없는 명칭이었다. 이는 조선이 아무리 양반에게 우호적이라도 그 나라 설계 자체는 양천제에 기반하고 있었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호적에는 양반이라 쓰여 있는 대신 양반에게만 부여되는 직역이 쓰여지게 된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유학幼學"이다. 그리고 서얼 혹은 중인에게는 "업유業儒" 혹은 "업무業武"라는 직역이 쓰인다. 그 외에도 잡다한 직역이 있는데 양반 직역은 대개 호적을 보면 알 수 있어호적으로 양반을 어느 정도 구별해 낼 수 있다. .. 2025. 9. 25.
일제시대 소학교 숫자로 발전을 설명한다? 흔히 일제강점기 발전의 근거로 소학교 숫자를 가지고 들고 나오는 것을 보는데이는 조선후기의 상황을 보면 명백한 조선의 상황에 대한 오독이다. 우선 한국사는 천년 가까운 과거제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데다가 (정규 시험이 3년에 한번, 그 외에 각종 별시를 치면거의 매년 한번 꼴로 과거를 해도 응시자가 계속 나오고 급제가가 계속 나오는것을 우리는 쉽게 생각하는 것 같다. 과거제 천년 역사라는 것은 쉽게 가능한 것이 아니다. 매우 넓은 독서층이 존재해야 가능하기 때문이다). 조선후기 보면 신분의 상승이 글을 하느냐, 독서층이냐, 과거를 볼 자격이 있느냐로 주어졌기 때문에 이미 18-19세기가되면 조선인들 사이에는 "못배운 한"이 정서적으로 머리 한 구석을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마 18세기 중엽, 신분상승.. 2025. 9. 24.
가짜족보와 공명첩으로 양반이 되는 것이 아니다 흔히 조선 후기 양반이 되는 방법으로족보를 산다던가, 공명첩으로 벼슬을 산다던가 하는 이야기를 하지만 양반이 된다 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호적이다. 족보도 공명첩도 모두 호적을 잘 꾸며 놓기 위해 필요한 것이다. 호적이 왜 중요한가. 바로 양반이냐 평민-노비냐를 구분하는 데 있어 첫 번째 지표, 조선시대의 주민등록에 들어간 정보 중 가장 중요하다 할 군역의 직역에서 양반 직역을 호적에 표시해 놓는 것이 양반이 되는 첫발이기 때문이다. 이 호적에 양반직역을 적기 위해선 앞서 말한 대로 친가 3대조, 외조부, 처가 3대조, 외조부의 이름과 직역이 필요하고 이 조상의 이름과 그들의 양반직역이 필요하기 때문에 가짜 족보도 필요한 것이다. 가짜 족보를 하나 사서 구했다고 치자. 그걸 마을 들고다니면서 자랑했겠는.. 2025. 9. 24.
율곡이 매우 구체적 경장안이 있었을 것이라 보는 이유 율곡의 성정 때문이다. 율곡은 왕조실록과 문집 등에 산견되는 내용만으로도 이 양반 성격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바, 율곡은 대충 모호한 이야기를 듣기 좋게 떠드는 사람이 아니다. 잘 알려진 이야기 중에 향약에 대한 이야기가 있는데 나라에서 빨리 향약을 전국에 시행해야 한다고 누군가 떠들자그렇게 좋으면 니네 집에서나 먼저 하지 그러냐고 쏘아 부친 적도 있다. 율곡은 될 것 안 될 것에 대한 판단이 매우 빠른 사람으로 필자가 생각하는 바 조선 시대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천재가 틀림없다. 머리가 좋은 사람들이 다들 그렇듯이 매우 구체적인 안을 갖고 이야기하는 사람이며특히 스스로가 녹사를 했다고 낮추어 이야기 할 정도로 젊어서부터 관료 경험이 풍부해 그 당시 사림들처럼 대충 좋은 이야기를 얼버무려 뻔한 .. 2025. 9.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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