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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질병, 그리고 역사2393

메이지유신은 누가 감행했는가 메이지유신에 대한 각종 사설 영화를 보다 보면 무슨 일본의 사무라이가 들고 일어나 메이지유신을 성공시킨 것처럼 해놓은 이야기가 많은데 사실을 이야기 하자면 막번체제를 지탱한 시스템 구성원이었던 제대로 된 사무라이들은 메이지유신 때 쳐맞고 쫒겨다니기 바빴다. 메이지유신 주체는 입에 풀칠하기도 빠듯했던 하급무사와 먹고 살만해서 칼 두 개 차고 사무라이 흉내내던 부농 자제들로 이들이 막번체제를 타도하고 신일본을 세웠다. 이 메이지유신 주체는 한국으로 보자면 중인과 잔반계급이다. 동학혁명에 많은 중인, 잔반계급이 참여했는데 이들이 만약 일본에서 태어났다면 메이지유신에 참여했을 것이다. 막번체제하에서 양성된 제대로 된 사무라이 태반은 메이지유신 하에서는 제대로 역할을 하지 못했다. 조선왕조가 오백년을 심혈을 기울.. 2024. 7. 20.
이순신 수책거적도守柵拒敵圖를 다시 보며 일전에 소개한 적 있는 이순신의 북방 전투를 그린 수책거적도守柵拒敵圖다. 이 수책거적도를 다시 보면, 이 그림 주인공은 여진족도, 이를 방어하는 조선군도 아니고바로 뒤편에서 오돌오돌 떨고 있는 조선의 농부다. 성채 바깥에 펼쳐진 밭인지 논인지 이는 보는 시각에 따라 병사에게 식량을 공급하는 둔전일 수도 있겠지만 병사가 이 농민을 보호하기 위해 파견되었다고도 볼 수 있다. 구한말에는 심지어는 이런 군대의 보호없이도 농민들이 두만강을 넘어 청의 봉금封禁 지역으로 몰래 들어가 농사를 지었다. 농부는 땅을 갈아 먹고 살 수 있다면 어디든 간다. 고려시대 후기 오면서 이 땅에서 마침내 혼합농경이 안정적으로 경영되기 시작했다는 것이고, 그 결과가 북방 사민의 성공인데, 여기서 병사의 전투와 정치적 포석은사실 이 북.. 2024. 7. 19.
신라통일 이후 북벌은 혼합농경 북상의 역사 앞에서 우리나라 잡곡과 도작은 기원을 달리하여 요서에서 남만주를 거쳐 들어온 잡곡과 산동반도에서 바다를 건너 들어온 도작이 만나서 도작과 잡곡이 어우러진 혼합농경이 성립된 곳은 아마도 평양과 황해도 일대 서북지역일 것이라 하였다. 이 혼합농경이 더욱 남하하여 이루어진 판도가 세형동검문화와 얼추 맞아 떨어지지 않을까 한다. 따지고 보면 대략 고려의 천리장성 정도가 바로 혼합농경의 북방경계였을 것이라 보는데, 윤관정벌과 공민왕의 북벌, 세종대의 북벌 등은 모두 바로 이러한 혼합농경의 북벌과 궤를 같이 하지 않을까. 따지고 보면 윤관북벌 이후 우리나라 함경도 지역의 식민은 농업 기술 혁신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왜냐? 아래 지도를 보면 알수 있다. 삼국시대-고분시대 도작이 도달할 수 있는 위도는 북위 40도.. 2024. 7. 19.
공민왕과 세종대의 북벌 주황색 부분이 공민왕이 수복한 지역이며 나머지 지역이 세종대에 완료한 북방영토 사민지역이다. 이 시기가 14세기 후반-15세기 중반에 걸친 시기인데 이 짧은 기간 동안 엄청난 영토가 한국사에 추가되었다. 저 지역에서 안정적으로 혼합농경이 시도되지 않았다면 이 북벌은 실패했을 것이다.  *** previous article ***  2천년 지중해 해저를 지킨 스핑크스 2024. 7. 19.
무신정권과 원 간섭기에 무슨 일이 있었는가 흔히 윤관 북벌과 공민왕-세종의 북벌은 엄청난 차이가 있을 것 같지만 자잘한 전략을 빼고 크게 보면 결국 농민의 식민을 바탕으로 항구적인 점령 전략을 구사한다는 점에서 동일하다고 본다. 그런데-. 왜 윤관북벌은 실패하고 공민왕-세종이 북벌은 성공하였는가. 필자는 이 두 북벌의 사이기에 농업기술의 혁신이 있었을 것이라 본다. 구체적으로는 무신정권과 원간섭기. 이 시기에 뭔가 농업기술 관련하여 혁신이 있었다고 본다는 뜻이다. 윤관 때는 실패한 북방 지역의 농사가 공민왕 이후에는 안정적으로 가능할 정도로 성장하게 되었으리라 본다는 뜻이다. 요는 농민이 현지에 착근할 수 있느냐 없느냐가 결국 승패를 갈랐으리라 보는데 이 사이기에 무슨 일인가 농업기술 측면에서 혁신적 변화가 있었을 것이다. 2024. 7. 19.
일본의 다빈치 홍아미 고에쓰 흔히 홍아미 고에츠[本阿弥光悦,1558~1637]는 만능 예술인으로서 자신이 예술인이라는 강렬한 자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일본의 다빈치"라 불린다. 이 사람 작품을 보면 미술을 잘 모르는 사람이라도 범상찮다는 것을 느낀다.  *** previou article ***  홍아미 고에쓰本阿弥光悦와 일본미 2024. 7.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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