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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질병, 그리고 역사2393

공부한다고 더 좋아 보이지도 않을 세한도 추사 김정희 세한도歲寒圖를 보고 감동했다는 분이 많다. 그런데-. 필자는 감동한 적이 없다. 무엇보다 도대체 이 그림을 세계사 어느 구석에 어떻게 갖다 끼워야 하는지 솔직히 필자 수준에서는 가늠하기 힘들다. 혹자는 알면 보이는 건데 너가 무식해서 그렇다고 할지도 모르겠다. 물론 그럴 수도 있다. 그런데 말이다. 냉정하게 한 번 이야기 해 보자. 세한도-. 잘 그린 그림인가? 아니다. 그러면 그 정신이 문제가 될 텐데. 세한도에 깃든 정신-. 어떤 면에서 대단하다는 것인가. 고난에도 굴하지 않는 선비정신? 글쎄다. 난 잘 모르겠다. 필자가 드는 생각은솔직히 나는 세한도 좋은지 모르겠더라 하는 것 하나와, 더 공부한다고 더 안다고 좋아질 것 같지도 않다는 것이다. 그냥 무식한 자의 넋두리라고 생각해 주길. .. 2024. 7. 18.
홍아미 고에쓰本阿弥光悦와 일본미 홍아미 고에츠[本阿弥光悦,1558~1637. 현행 외래어 표기법으로는 홍아미 고에쓰다]는 에도시대 초기에 활동한 "예술가"다. "예술가"라고 쓴 것은 본인이 "예술" 비스무리한 것을 한다고 자각하고 활동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이런 측면에서 본다면 아마도 일본미술사에서 최초의 인물 아닐까. 홍아미 고에츠는 일본에서의 명성에 비해 한국에는 잘 안 알려져 있다. 따지고 보면 소위 말하는 "일본미"에 대한 강렬한 자각은 이 사람으로부터 시작된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그림 도자기 일본도 만들기 공예 등 손을 안 댄 부분이 없다. 2024. 7. 18.
설계도가 한장이었다는 루머가 돌던 관악캠퍼스 앞에서 성냥갑아파트 이야기를 했지만, 산업화 시대, 속전속결 빨리 해치워야 했던 시대. 요즘은 서울대 관악캠퍼스를 가 보면 멋있는 건물도 많던데 필자가 다니던 80년대에는 관악캠모든 건물이 전부 똑같은 모습이었다. 그래서 내려오는 루머 중에 관악캠 지을 때 건물 도면이 하나였다는 농담도 있었는데 농담같지 않았던 것이 정말로 공대부터 인문대 사회대까지모든 건물이 똑같이 생겼던 것이다!!! 그렇다고 어떻게 당시 이 캠퍼스를 지었던 노력을 폄하할 수 있으랴. 없었던 시대의 해프닝으로 기억하면 되는 정도의 일이라 생각한다. 2024. 7. 17.
판잣집을 추방한 성냥갑 아파트 요즘 유튜브 등을 보면 유럽의 풍광에 매혹된 이들이 서울의 성냥갑 아파트를 질타하는 경우를 본다. 맞다. 성냥갑 아파트는 별로다. 풍광이 멋있지도 않고, 서울을 폼나게 만들지 않는 가장 중요한 요소이기도 하다. 그런데-. 그 성냥갑 아파트 때문에 서울 전역에 즐비하던 판잣집이 사라진 것은 알고 있는지? 지금이야 전세가 좋은 목의 집을 차지하려는 욕구 때문에 아직도 빈발하지만80년대까지도 우리나라 세대 수에 비해 주택수가 모자라 집권 여당의 구호가 주택 이백만호 건설이었던것은 아는지? 그렇게 지은 주택이 어떻게 폼나게 지을 수 있으랴. 성냥갑 아파트-. 서울의 풍광을 해친다 질타 받지만 그 자체 살아보겠다고 발버둥치던 산업화 시대의 유산이기도 하다. 아무 생각없이 그렇게 멋없게 지었다고 질타받기에는그 당시.. 2024. 7. 17.
땅만 빌린 한국의 전통 농업 보천지하 막비왕토라는 말이 있어 세상 땅은 모두 왕의 땅이고 네가 부치는 그 땅은 왕에게 빌려 농사짓는 것이라는 생각이 결국 공전제의 사상적 기반이 되는 것이지만 한국의 경우 딱 이런 공전제가 아니더라도 농사짓는 땅에 비료거리가 될 만한 주기적 범람도 없고 표토도 얇아 몇년만 농사지으면 지력이 다해서 연작이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리저리 옮겨가며 농사짓기도 어려운 것이 사방에 사람들 천지라 결국은 가지고 있는 손바닥 만한 땅 일구며 먹고 살 수밖에 없었을 텐데 그러다 보니 이 땅을 일구어 먹고 살 방법은 결국은 강력한 시비에 기반한 농사 밖에 없었겠다. 필자의 외국 학자들이 한국에 방문했을 때 특히 미국. 가장 신기해 하는 것 중 하나가 한국의 농경지로 노는 땅 하나 없이 각종 작물을 (단작.. 2024. 7. 17.
왜 60세 넘어 새로 시작한 연구는 열매를 못 맺는가 이런 경우가 있다. 정년 전에는 아주 명민했던 분이 정년 후에 자신이 원래 하던 분야도 아닌 쪽 이야기를 시작해서 그동안 쌓아 놓은 학자로서의 명성도 다 까먹고 주변에서도 좋은 평가를 못 받는 경우가 있다. 필자가 생각하기에 그 이유는 이렇다. 이 분은 아마 65세까지 열심히 사신 분일 것이다. 그리고 65세가 넘어서 보니, 그때까지 해오던 연구를 도저히 더 지속할 상황이 아니라는 것을 학교를 나오고 나서야 깨닫게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뭔가 가능한 연구를 그때부터 찾아 나선 것인데-. 문제는 나이가 66세. 새로 뭐를 시작할 상황도 아니고, 주변에는 과거와 달리 같이할 동료도 없고, 또 후학도 없다. 그러니 당신이 최선을 다해 쓴 글인데도 주변에서 보면 소일거리로 쓴 글처럼 보이는 것이다. 해답은-. .. 2024. 7.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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