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사람, 질병, 그리고 역사2475 삼국사기를 쓰는 김부식의 야망 김부식의 삼국사기-. 사대주의의 화신처럼 덧칠이 되어 있는 탓에 김부식하면 일단 색안경부터 끼고 보지만, 역사상 실존한 김부식은 우리 선입견과는 많이 다르다. 김부식이 삼국사기를 쓸 때 이미삼국시대 당시의 사료는 참고할 만한 것이 많이 남아 있지 않았을 가능성이 많은데김부식은 그런 상황 속에서도 열전을 세우기 위해 필사적으로 쥐어짰을 가능성이 높다. 언젠가 쓴 듯 하지만, 중국을 제외한 주변 국가에서 기전체 사서를 성공한 경우가 거의 없다. 우리는 삼국사기와 고려사가 기전체 사서로 만들어졌지만, 일본은 대부분의 관찬사서가 편년체였고, 에도시대에 대일본사가 기전체로 비로소 만들어졌다. 김부식의 기전체 사서는 그 당시까지 중국을 제외한 나라에서는 한 번도 시도되지 않았던 작업이었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필.. 2024. 7. 30. 백결은 신라 때 이름이 아닐 수도? 삼국사기 열전에는, 百結先生, 不知何許人, 居狼山下, 家極貧, 衣百結若懸鶉, 時人號爲東里百結先生백결百結 선생은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없다. 낭산狼山 아래 살았는데 집이 매우 가난해 옷을 백 번이나 기워 입어 마치 비둘기를 거꾸로 매단 것처럼 너덜너덜했다. 그래서 당시 사람들이 동리東里의 백결선생이라 불렀다. 이리 되어 있다.이 문장은 김부식의 오리지널 문장이 아니다. 소식의 시 중에 박박주薄薄酒라는 작품이 있는데, 고문진보에도 있을 만큼 명문이다. 薄薄酒勝茶湯 粗粗布布勝無裳醜妻惡妾勝空房五更待漏靴滿霜不如三伏日高睡足北窓涼 珠襦玉柙萬人相送歸北邙 不如懸鶉百結獨坐負朝陽 生前富貴死後文章 百年瞬息萬世忙 夷齊盜跖俱亡羊 不如眼前一醉是非憂樂兩都忘 묽고 묽은 술이라도 차보다는 낫고거칠고 거친.. 2024. 7. 29. 인문학은 민족과 항일 이상을 줄 수 있어야 민족과 항일은 대학에서 더 이상 연구할 만한 대상이 아니다. 내용이 빈약해도 민족과 항일 깃발만 꽂아도 졸지에 뜨는 연구도 많다. 우리나라 인문학은 이제는 민족하고 항일은 연구의 키워드에서 빼 내야 한다. 그 이상의 뭔가를 한국사회에 기여해야지 민족과 항일이란 건 더이상 대학에서 할 만한 연구 대상이 아니다. 특히 잘 보면 보인다던가 알면 보인다던가 하는 무속삘 나는 이야기는 더이상 인문학이라는 말로 포장하지 말기를. 도대체가 인문학이 다른 학문과 뭔가 다른 기준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고 근거도 없는 이야기에 면죄부를 남발하는 것 자체가 후진성 이외에 아무 것도 아니다. 2024. 7. 28. 될 만한 소리는 한 마디도 안 한 중농학파 우리나라 소위 실학은 여기 블로그에서도 몇 번 쓴 것 같지만 밑바닥부터 다시 감정해야 한다. 특히 실학 중에서도 중농학파. 이 사람들 주장을 보면 될 만한 소리는 하나도 없다. 토지개혁론이라고 한 소리를 보면완전히 중국 인민공사 내지는 북한의 집단농장 수준의 공상을 이야기 하고는 개혁론이라고 우겼고,멀쩡히 쓰던 돈을 사치 조장한다고 없애자고 한 인간이 있질 않나, 한 마디로 이 사람들 말 그대로 따라 했다간 조선이 더 일찍 망할 판이었다는 말이다. 냉정히 중농학파 실학자들 한 이야기를 원전 텍스트를 가지고 한 번 읽어보기 바란다. 그게 어디를 봐서 개혁론인가. *** previous article *** 쓰던 동전 다 없애자는 이익 2024. 7. 27. 쓰던 동전 다 없애자는 이익 앞에 사도광산과 국제무역 이야기를 했지만 이 광산이 일본사에서 중요한 이유는 에도시대 일본의 급증하는 화폐량을 여기서 제련해 내는 금과 은으로 충당하고 나아가서 서양과 무역을 할 때 결제수단으로도 이용하는 등일본근세사에서 매우 짭잘하게 잘 써먹었기 때문이다. 앞에서도 이야기했지만 일본 근세에서 서양과의 무역에 있어 결정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한 금과 은 제련, 그리고 도자기 제작 등에 있어조선은 기술적으로 대단한 기여를 했는데, 정작 자기 나라에서는 이 두 기술로 별로 재미를 못 보았다. 한국이 20세기 초 식민지로 전락한 이유 중에이 두 가지를 제대로 써먹지 못한 것도 들어가지 않는다고 장담 못한다. 한국에서 금과 은 제련술이 별로 빛을 못본 이유 중에는위정자들이 화폐경제에 대해 도대체 우호적이 아니었다.. 2024. 7. 27. 사도광산과 국제무역 사도광산이 한일간 이슈가 되어 이 부분은 워낙 많이 다루고들 있어 생략한다. 여기서는 사도광산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만 좀 써보겠다.사도광산은 탄광이 아니다. 금과 은을 캐던 광산으로 전성기는 에도시대이다. 이 사도광산은 일본사에서 매우 큰 의미가 있다. 에도시대 전기에 사도광산에서 나오는 금과 은으로일본은 국제무역에서 결재를 했다. 당시 일본도 어차피 서양과 무역에서는 팔 물건이 없었으므로 금과 은을 결제수단으로 하여 거래한 것이다. 사도광산이 없으면일본에는 난학이고 나발이고도 없었다고 할 수 있다. 서양 상인들이 가져갈 것이 없으니 무역하러 오지도 않았을 것이라는 말이다. 사도광산에서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은 일본은 원래 금과 은 제련기술이 없었다는 점이다. 여기에 16세기 경 조선에서 금과 은을 제련하는.. 2024. 7. 27. 이전 1 ··· 132 133 134 135 136 137 138 ··· 413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