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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질병, 그리고 역사2464

일본과 한국 근대화의 성패를 갈랐던 시대는 에도시대가 아니다. 에도시대에 일본과 조선이 엄청난 차이가 있는 줄 알고 이 시대를 엄청나게들 파는데. 실제로 양자간 결정적 차이가 발생한 시기는 메이지시대다. 한국사는 이 시대를 이미 "제국주의가 완성된" 일본이 조선을, 한국을 침략한 시대로만 생각하는데, 그게 아니고 이 시대 일본도 살아 남자고 죽도록 몸부림치는 시대였다는 말이다. 메이지시대, 우리로는 고종의 시대야말로 양자간 하나는 제국주의가 되고 하나는 식민지가 되는 결정적 시기였는데, 이 시기를 "일본 제국주의의 조선침략의 시기"로만 보다 보니 사실을 놓치는 면이 매우 많다. 에도시대? 조선이나 일본이나 거기가 거기다. 메이지시대. 매우 중요한 시대다. 한국학자들은 여기를 집중적으로 파야 한다. *** Editor's Note *** 조국근대화.. 2023. 4. 19.
진실로 미친 시대였던 17세기 도대체 어떻게 하자고 그렇게 죽도록 미치도록 성리학을 팠을까. 어떻게 하자고 그렇게 중국도 없어져버린 고례古禮를 여기다 구현한다고 남들 안보는 책을 죽도록 봤을까. 17세기란 시대는 진실로 미친, 제정신이 아닌 시대였는데, 한국이라는 나라가 수천년, 수만년 후 지구상에서 완전히 사라지는 날이 온다면 그 최후의 날까지도, 한국인들은 17세기를 두고두고 반성하면서 살아야 한다. 2023. 4. 18.
구리 공급지로서의 한반도 동남해안 삼국지를 보면, 변한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國出鐵, ··皆從取之. 諸市買皆用鐵, 如中國用錢, 又以供給二郡. 원삼국시대에 변한 지역에서 철이 났는데 이를 한과 예, 왜가 모두 가져다 썼다는 말이다. 심지어는 낙랑, 대방 2군도 이 철을 가져다 썼다고 한다. 그런데-. 한반도 광물지도를 보자. 정확히 변진 지역에 바글 바글 몰려 있는 구리 광산이 보이는지? 이 지역은 실제로 조선시대-일제시대 계속해서 우리나라에서 구리가 가장 많이 나던 지역이었다. 변진 지역이 철을 공급하기 이전부터 이 지역은 한반도 전역에 구리를 공급하던 지역이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금속 공급지로서 변진 지역 역사는 어쩌면 청동기시대까지도 거슬러 올라갈지도 모르고. 평양 일대 고조선도 여기서 구리를 대어 썼을지도 .. 2023. 4. 17.
한반도 금속광물 분포도 구리광산을 보면 흥미로운 부분이 많은데, 한반도 남해안에는 의외로 구리광산이 많다. 2023. 4. 17.
세형동검은 비파형동검을 녹여 만들지 않았을까? 한반도 비파형동검은 원래 숫자가 그 정도였던 것이 아니라 그걸 녹여 세형동검을 만드는 바람에 남아 있는 숫자가 적어지지 않았을까? 그러고 보면 세형동검도 놋으로 만드는 그 무엇인가 위세품이 하나 더 나왔다면 지금보다 적은 수가 남았을지도 모른다. 세형동검 뒤에는 동검 계보가 끊어진 덕에 세형동검은 상대적으로 많은 수가 남았을지도. 게다가 세형동검이 더 이상 쓰이지 않게 된 시기는 아직 놋그릇도 없고 불상도, 동종도 없던 시기다. 고물로도 쓰일 기회를 놓치고 무덤으로 들어간 것일지도. 2023. 4. 17.
지배 이데올로기에 따라 모습을 바꾸었을 구리 한반도에는 구리가 넉넉하지 않았을 만큼, 고물 청동은 녹여 다른 기물을 적극적으로 만들어 썼을 것이라는 점은 짐작이 가능하다. 그러다 보니 구리는 시대에 따라 다양한 모습으로 바꾸어 나타났을 가능성이 있다 하겠다. 청동기시대에는 위세품으로 동검이나 거울의 모습으로 이용되었겠지만, 불교의 시대가 열리자 이전의 위세품들은 고물로 취급되어 절의 불상이나 동종, 기물들로 모습을 바꾸었을 것이다. 조선시대가 되어 억불이 되자 이번에는 절의 기물들이 줄줄이 녹여져 놋그릇이 되거나, 화폐경제가 일어나기 시작하자 이번에는 상평통보로 모습을 바꾸었을 것이다. 조선시대에 통용한 상평통보에는 청동기시대에 동검이나 거울이었던 것이 불상이 되었다가 마침내 사람들이 쓰는 돈으로 모습을 바꾼 것도 상당히 있었을 것이다. 마지막 단.. 2023. 4.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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