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사람, 질병, 그리고 역사2464 예고: 대한민국의 50-70년대: 위대한 우골탑의 시대 해방 직후 하급 관리 양성소가 되어 있던 대학 시스템을 물려 받은 한국인들은 어떻게 해서 땡전 한푼 없이 50-70년대, 대학교육을 건설했을까? 이제 한국 역사상 가장 위대했던 "우골탑의 시대"가 열린다. 2023. 3. 21. 보유: 기본적으로 큰 오류가 없던 미군정-이승만 정권의 교육 정책 오늘 글의 보유를 쓴다. 앞에서 국대안 파동에 대한 이야기를 했는데. 본편에서도 썼지만, 필자의 이에 대한 입장은 분명하다. 국대안 파동으로 비록 얼룩졌지만, 국대안 자체는 문제가 없다는 말이다. 당시 신생독립국으로서 가용한 재원을 박박 긁어모아 제대로 된 학사위를 줄 수 있는 국립종합대를 하나 만들자는데 그걸 반대하면 다른 대안은 있는가? 결정 과정에서의 미군정의 독단. 이런 것은 부차적인 문제이며 정책 자체의 내용에 대한 부분이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국대안 파동 당시 소위 우리나라 "국립대학" 교수 중에 해방 전부터 그 대학 교수였던 사람은 거의 없다. 모두 해방 이전에는 일본인들 때문에 밀려 있다가 해방 이후 비로소 교수가 된 분이 대부분이었는데, 당시 우리나라 인재풀로서는 최선의 선택이었겠지.. 2023. 3. 21. 대한민국의 50-70년대 (6): 국대안 파동 (2) 국대안 파동이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에 대해서는 인터넷 서칭만 해도 다 나오기 때문에 많이 적지 않겠다. 여기서는 국대안 파동 진행과정에 대한 약간 언급과 함께 그 결과만 다루고자 한다. 1. 국대안파동은 미군정 당국의 목적도 그러했고 최종 결과물도 어디까지나 "미국식 교육제도에 입각한 종합대학" 건설이었다. 당시 경성제대와 국공립 전문학교는 전공별로 산재하였는데, 해방 이전에도 일본인 교수가 대부분이었고 한국인 교수들이 별로 없었기 때문에 해방 이후 긴급 충원된 조선인 교수로 급조한 전문학교가 전공별로 산재해서는 경쟁력을 확보하기 어렵다는 미군정 당국의 판단은 기본적으로 옳다. 특히 미군정의 최종 목표는 일제하 전형적인 식민지 교육 형태를 띤 조선 교육을 미국식 6-3-3-4제를 도입하고 최종학부인 대학.. 2023. 3. 21. 대한민국의 50-70년대 (5): 국대안 파동 (1) 국대안 파동이라는 것이 해방 직후에 있었는데 여기 관심 없는 분들은 잘 모를 것이다. 이 사건은 해방이후 남북분단, 좌우대립에 촉매제 역할을 한 사건인데, 대학교육 분야에 미친 영향도 매우 컸다. 요약하면 이렇다. 미군정은 1946년 7월, 종전의 한국 내 대학과 전문학교를 묶어 "국립서울대"를 만들겠다고 발표했다. 대학이라 해 봐야 해방 이전의 경성제대-해방이후 경성대 딱 하나였고, 나머지 국립 전문학교는 각 분야별로 있었는데 이를 모두 단과대학별로 해체모여 하여 "국립서울대"라는 단일 체제로 정리하겠다는 것이어었다. 이 국대안파동은 현재 사학계에서 내린 평가가 필자가 보는 한 별로 공정하지 않다. 일단 남북분단 책임을 미국에 있다고 보는 시각이 은연중 투영되어 있는 저작이 많고, 국대안 파동이 미군정.. 2023. 3. 20. 북한, 탈북자: 몇개의 단상 최근 북한과 탈북자를 보고 드는 생각을 써 본다. 1. 언젠가 북한의 역사를 유심히 보면 조선을 이해할 단초가 보인다는 이야기를 썼다. 북한에서 배급제가 무너지고 장마당 경제가 일어나는 과정은 아마도 조선 전기의 과전법 체제가 붕괴하고 시장경제의 맹아가 분출하기 시작하는 조선 후기의 상황을 그대로 따라가고 있을 것이다. 북한의 경우 조선 못지 않은 폐쇄 경제이므로 지금 북한이 도달한 장마당 경제 수준이 조선시대 시장경제 모습을 상당히 충실하게 반영하고 있을 것이라 본다. 농업에 기반하고 딱히 뭐 경쟁력 있는 산업이 없는 상태에서 바깥으로 문을 걸어 잠그고, 동맹 없이 고립되어 버리면 도달할 수 있는 "시장경제" 모습은 딱 지금 북한 정도가 최고점이라는 것이다. 조선후기에는 이 최고점에 거의 근사하게 도달.. 2023. 3. 20. 오늘 글의 보유: 해방직후 서울대의 상황 필자가 쓴 글을 보시면 알겠지만, 해방직후 서울대는 제대로 된 대학교육이 불가능한 상태였다고 할 수 있다. 흔히 서울대가 경성제대 후신이라고 주장하는 분들은 서울대에 경성제대의 교원과 연구, 교육전통이 해방이후 그대로 이어졌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실제로는 해방이후 경성제대는 완전히 빈집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빈집으로 이주해 들어간 조선인 교수들은 출신 배경도 다양했다. 이들이 당시 조선에서 모을 수 있는 최대한의 인적자원 이라는 것은 틀림없다. 하지만, 경성제대가 해방이후 문을 닫게 되었을 당시, 이 대학에는 불과 한달전에 조교수로 임명된 조선인 교수가 딱 한 명 있었다. 이 때문에 새로 서울대 교수로 들어간 분들은 출신 배경이 정말 다양해서, 의대의 경우에는 경성의전, 경성여의전, 세브란스의전, .. 2023. 3. 19. 이전 1 ··· 331 332 333 334 335 336 337 ··· 411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