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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 이모저모 2295

백제와 신라 동시대 무덤 모식 물론 시기를 확정해야 하니 왕릉급 기준으로 백제가 저런 식으로 변모한 것은 확실히 475년 웅진 천도 이후이며 망할 때까지 저 골간을 유지했다. 다시 말해 저 기간 동안 백제는 산 구릉에다 기본으로 묘광을 파고 들어가서 그 안에다가 시신을 매장했다. 이 경우 산 혹은 구릉 자체가 봉분이라 봉분을 크게 만들지는 않아 높이라 해 봐야 일미터 남짓하다. 동시대 신라는 왕청 나게 달라 지증왕 때까지는 평야에 쓰다가 법흥왕 이후는 경주 분지를 탈출하면서 입지조건은 백제랑 비슷해져 구릉으로 이동한다. 다만 외곽으로 가기는 해도 일부는 여전히 평지를 고수하기도 한다. 문제는 본능. 신라는 결코 기슭으로 가도 우람한 봉분을 포기하지 않았다. 여전히 산더미만한 봉분을 쌓아 이곳이 무덤임을 표식했다. 동시대 가야는 조금 .. 2024. 1. 17.
[대물大物 이야기] 거근巨根의 창시자 노애嫪毐 (2) 도로아미타불 될 뻔한 여불위 진秦 소왕昭王은 재위 50년에 왕기王齮라는 사람을 사령관으로 삼아 조趙나라 서울 한단邯鄲을 포위 공격했다. 이에 다급해진 조나라에서는 진나라 인질로 한단에서 생활하던 자조子楚를 죽여 복수하고자 했다. 더 다급해진 쪽은 여불위였다. 공들인 노력이 하루아침에 거품이 될 것을 우려한 그는 다시금 뇌물을 동원해서 조나라 관리들을 구워 삶아 겨우 자초를 탈출케 하고는 진나라로 도망치게 만들었다. 이 사건은 자초나 그의 후견인 여불위한테는 절호의 기회가 되었다. 특히 여불위의 경우는 하마터면 개털될 뻔한 투자를 톡톡히 본전 뽑는 일이 되었기 때문이다. 한단에 남은 자초의 처자식까지 안전을 보장케 하는 데 성공하고 자초와 함께 진나라로 들어간 여불위는 마침내 자초를 태자로 만드는 데 성공한다. 이 대목을 사기 여불위.. 2024. 1. 17.
을축년대홍수, 한국전쟁을 능가하는 참상 을축년 대홍수가 한국 근현대사에 미친 영향은 한국전쟁의 그것보다 크다. (2017. 1. 17) *** 이 을축년대홍수는 내가 그 심각성, 그리고 그것이 한국근현대사에서 막중한 위치를 계속 상기하거니와, 2025년 내년이 그 발발 100주년이라, 그 심각성은 한국전쟁의 그것을 버금하거니 뛰어넘는 대사건이다. 꼭 백주년이라 해서 대대적으로 기념 추념할 사안은 아니라 해도, 이때 아니면 또 언제 하겠는가? 저 일을 새기는 기획 혹은 전시 같은 것들을 관련 기관들에서는 1년 남았으니 제대로 준비해줬으면 하는 마음 간절해서 계속 상기한다. *** related articles *** 간략히 살피는 1925년 을축년대홍수 간략히 살피는 1925년 을축년대홍수 홍수라는 고고학자 앞에서 1997년 이후 풍납토성 일대.. 2024. 1. 17.
통념으로부터의 탈피, 새로운 통념의 주입 신라를 비롯한 고려 이전 고중세사를 접근하는 첩경은 한 여자가 두 남자 이상한테서 씨를 받을 수 있다는 통념의 주입이다. 왜 자꾸 여자는 한 남자만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고려 시대만 해도 이런 여자가 쌔고쌨다. 심지어 아버지 여자를 취한 아들도 흔해 빠졌다. 이것만 이해하면 미해결로 치부한 역사의 비밀 상당수를 파헤친다. 외려 이혼과 재혼이 흔한 지금이 바로 신라사를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시대다. (2017. 1. 16) *** 고대사를 공부하는 이유 중 하나가 현대의 상대화다. 절대적 가치 혹은 통념 혹은 상식의 파괴다. 현재를 상대화하고 객관화하는 일, 그것이 시급하다. 말로야 이리 떠드는데 하는 짓을 보면 당대에 사로잡혀 한 발짝 진전이 없다. 내가 역사를 볼수록 신이한 것은 그것이 끊임없.. 2024. 1. 16.
1915년 흑판승미 조선사적유물조사복명서 서문 서언 우리 상대에 일한 교섭이 빈번했다는 것은 우리 상대사를 연구할 때 우선 주의해야 한다고 하지만, 역사서에서 빠뜨리거나 오류가 있어 이것을 상세하게 할 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조선사에 그 자체에서도 아직 해결해야 할 것이 적지 않다. 이번 승미勝美의 출장 목적은 그 실지를 답사하여 고고학·역사지리학 등의 방면에서 그것을 관찰하고, 그럼으로써 상대사 연구에 보탬이 되고자 하는 데 있다. 그래서 남선南鮮에서 여행 대부분을 보냈는데, 신라·임나 땅인 경상남북 양도는 2~3개군을 제외하고 거의 답사했으며, 특히 낙동강 유역 섬진강 연안 및 진해만 부근을 정밀 조사하였고, 우리 상대上代 문명과 지대한 관계가 있는 백제 땅이 충청남북 전라남북 4개 도에 걸쳐 있었고, 또한 그 중요한 지점을 지나, 금강 유역 .. 2024. 1. 16.
[대물大物 이야기] 거근巨根의 창시자 노애嫪毐 (1) 장사꾼 여불위 중국이 기나긴 춘추전국시대를 지나 서쪽 변방 진秦이 통일왕조를 이룩하는 데 터전을 닦은 이는 소양왕昭襄王 혹은 약칭 소昭王으로 일컫는 군주라, 그가 닦은 터전을 토대로 시황제 시대에 이르러 마침내 분열한 중국 대륙을 하나로 통일했다. 소양왕은 무엇보다 재위기간이 길어 기원 306년에 보위를 이어 기원전 251년에 사망했으니, 반세기를 넘는 기간 안정된 국정을 운영했다고 평가된다. 한데 재위기간이 길어지면서 그에게도 고민이 있었으니 후계 문제였다. 태자가 있었지만 그의 재위 40년째에 그만 죽어버리니 그 다음 아들 안국군安國君을 태자로 봉했다. 이 안국군이 훗날 아버지 뒤를 이어 왕이 되니 효문왕孝文王이라 일컫는 이다. 이 안국군한테는 이미 아들이 스무 명이 넘게 있었다. 한 여자한테서 저리 많은 아들을 .. 2024. 1.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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