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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 이모저모 2295

왕건의 소폰서 황보씨皇甫씨 고려왕조를 개창한 태조 왕건은 삼한을 일통하는 과정에서 군사적 협박과 더불어 결혼을 고리로 지역 토호들을 포섭했으니, 이 과정에서 무수한 여인을 후실로 맞아들이게 되거니와, 개중 한 명이 훗날 죽은 뒤에 신정왕태후神靜王太后라는 이름을 얻은 황보씨皇甫氏다. 고려사 권 제88 열전 제1 후비后妃 전에 의하면 그는 지금의 황해도에 위치하는 황주黃州라는 고을 사람으로 훗날 고려 왕조 개창 이후 태위太尉라는 벼슬에다가 삼중대신三重大匡이라는 직책 혹은 직급으로 승진하고 죽어서는 충의공忠義公이라는 시호를 받은 황보제공皇甫悌恭이라는 사람 딸이다. 왕건은 남는 장사를 한 사람이라, 철저히 주고받기를 했으니, 황보제공이 정확히 저 결합 무렵에 어느 정도 위상을 지녔는지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떼부자였을 것이다. 왜? 통일에.. 2024. 1. 15.
[지증왕의 아버지를 찾아서] (1) 습보와 기보 : 두 아버지 신라 제22대 지증왕은 아버지가 두 명이다. 기보期寶와 습보習寶가 그들이다. 둘은 모두 신분 혹은 직위가 갈문왕葛文王이라 보인다. 하기야 이 시대 새로운 왕이 즉위하면, 그 아버지는 갈문왕이라 추봉하는 일이 상례이니, 이에 의하면 기보와 습보는 아들이 왕이 되면서 죽은 뒤에 이렇게 된 것이라 이해할 수 있다. 그러면서 지증왕은 어머니가 누구인지에 대해서는 공통이니 조생鳥生, 혹은 오생烏生이라 기록된 여인이다. 조생鳥生과 오생烏生은 글자 모양이 대단히 비슷한 데다 뜻까지 통하는 점이 있어 둘 중 어느 하나가 잘못 적혔을 뿐 같은 사람이다. 그렇다면 기보와 습보는 누구인가? 지증왕 아버지로 《삼국사기》와 《삼국유사》가 각각 내세운 사람들이다. 즉, 지증왕 아버지를 《삼국사기》가 갈문왕 습보를 거론한데 비해 .. 2024. 1. 15.
피임? 누구 맘대로? 왕건을 거역한 나주 촌딸 고려사 권 제88 열전 제1 후비后妃 장화왕후莊和王后 오씨吳氏는 나주羅州 사람이다. 조부는 오부돈吳富伅, 아버지는 오다련군吳多憐君이니 (이 집안은) 대대로 나주의 목포木浦에 살았다. 오다련군이 사간沙干 연위連位의 딸 덕교德交한테 장가들어 왕후를 낳았다. 왕후가 일찍이 나루터의 용이 뱃속으로 들어오는 꿈을 꾸었다. 놀라면서 깨어 부모한테 말하니 모두 기이하게 여겼다. 오래지 않아 태조太祖(왕건)가 수군장군水軍將軍으로 나주에 출진出鎭하여 목포에 정박하면서 강가를 바라보았더니 오색五色 구름 같은 기운이 서려 있었다. 그곳에 이르니 왕후가 빨래를 하고 있었는데, 태조가 불러 사랑을 나누었지만 측미側微(집구석이 볼품없음)하므로 임신해서는 안 된다 해서 잠자리에 깐 돗자리에 쏟았지만 왕후가 바로 이를 집어 넣어 결.. 2024. 1. 14.
오줌 싸서 고려 현종 낳은 경종비 청상과부 황보씨 (4) 왕실을 뒤흔든 불륜 스캔들 고려사절요 권 제2 성종문의대왕成宗文懿大王 11년(992) 7월, 개경을 뒤흔든 불륜 스캔들이 터진다. 저간의 사정이 어땠는지를 관련 기술을 보면서 추적한다. ○ 가을 7월. 왕욱王郁을 사수현泗水縣으로 유배보냈다. 왕욱은 태조의 8번째 아들로서 그의 집이 경종景宗비 황보씨皇甫氏 집과 서로 가까웠다. 경종이 훙서하자 그 비가 궁 밖으로 나와 머물렀는데, 일찍이 곡령鵠嶺에 올라가 오줌을 누었더니 오줌이 온 나라에 흘러 넘쳐 온통 은빛 바다로 변해버리는 꿈을 꾸었다. 꿈을 점 쳐보니 말하기를, “아들을 낳으면 곧 왕이 되어 온 나라를 다스릴 것이다.”라고 하였다. 비가 말하기를, “내가 이미 과부가 되었는데 어떻게 아들을 낳겠는가. ”라고 하였다. 후에 왕욱과 마침내 사통하여 임신을 하게 되었으나 사람들이 감.. 2024. 1. 14.
왜 왕은 자기 의견을 말하지 않는가? 토론의 전형 성종실록 163권, 성종 15년 2월 23일 경신庚辰 두 번째 기사 1484년 명 성화成化 20년에 성종은 승정원承政院을 통해 관리들한테 아래와 같이 전교한다. "대신大臣이 졸卒하여 거애擧哀함은 《대전大典》에 실렸으나, 이제 대비전大妃殿이 있는 까닭으로 행할 수가 없다. 내가 예문禮文을 상고하건대, 회장會葬하는 예禮가 있어 내가 행하려고 하니, 이제 《대전大典》을 수개讎改하여 첨가해서 기록함이 어떠하겠느냐?" 하니, 우승지右承旨 권건權健 등이 합사合辭하여 아뢰기를, "성상의 하교가 진실로 마땅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큰 일이니, 홍문관弘文館으로 하여금 고제古制를 상고하게 함이 어떻겠습니까?" 하고, 우부승지右副承旨 김종직金宗直이 아뢰기를, "예전에 위징魏徵이 졸卒하여 백관百官이 회장會葬하였으나, 이것은 특.. 2024. 1. 14.
조선 준왕이 도망쳐 웅거한 데는 섬! 앞서 신동훈 교수께서 삼국지와 그 배송지 주를 논하면서 개중 한 장면으로 위만의 쿠데타에 왕국을 통째로 강탈당한 조선 마지막 군주 준왕准이 그를 따르는 사람들과 더불어 바다로 도망가 한韓 땅에 정착하는 과정을 기술하는 구절이 있으니, 그것을 다시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먼저 진수의 삼국지 기술은 다음과 같다. 將其左右宮人走入海,居韓地,自號韓王。(그 좌위 궁인을 거느리고 바다로 들어가 한 땅에 살면서 한왕이라 칭했다) 이에서 우리가 무심히 넘겼지만 세심히 볼 대목이 있다. 좌우 궁인들을 데리고 바다로 들어가서[入海], 한韓 땅[韓地]을 점거하면서, 자칭 한왕韓王이라 했다는데, 이를 그간 많은 이가 준왕이 위만한테 넘어간 왕검성을 탈출해(탈출보다는 나는 위만과 준왕 사이에 협상이 있었다고 본다. 내가 조선을.. 2024. 1.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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